한 달 전부터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전염성 질병에 대한 속보를 따로 다루기 위해,
금주중 신설 편성된 채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나운서의 표정은 짐짓 심각합니다.
편성된 채널의 인트로격인 멘트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본격적인 보도가 시작됩니다.
그러고 보니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은데….
문득 TV의 볼륨을 낮춰두었던 것이 떠오릅니다.
행운 또는 관찰 판정
츠키나가 레오:
행운
기준치:
65/32/13
굴림:
5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소파 팔걸이 아래 나동그라져 있는 리모콘을 발견합니다.
츠키나가 레오:(손을 뻗어 리모콘을 가볍게 쥐고 볼륨을 키운다.)
소리를 높이자 그제야 뉴스의 내용이 명확히 귀에 들어옵니다.
뉴스 보도자료
정형화된 톤의 아나운서 멘트가 마무리되면 화면이 뒤바뀌며 블러처리된 대형 병원들의 외관이 연이어 흘러나옵니다.
이번 전염병에 감염되면 체중이 급격히 감소하고 피부가 트는 등 사람에 따라 각종 면역력 결핍 증상을 보이지만,
대표적인 증상은 서서히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하다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이라는 기자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지능 판정
츠키나가 레오: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1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전세계를 강타한 이번 유행성 전염병의 병명이 아직까지 공식 발표되지 않았음을 떠올립니다.
증상이라 부를 것도 각기 다 다른 것이어서,
그나마 공통적인 증세라고는 고열을 앓게된다는 점 말고는 밝혀지지 않았다니까요.
환자들은 해열제 섭취 시 효과를 보였지만 일시적인 호전세를 보인 뒤 다시 펄펄 끓는 열병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항간에서는 유행성 독감이라고도 부르는 것 같던데….
참 기묘한 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뉴스의 내용을 듣고 있다 보면 꽤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늦게 일어나긴 했어도 학교에는 가야겠지요?
츠키나가 레오:(무기질한 눈으로 뉴스를 훑어보다 이내 미적거리며 옷을 갈아입고 식탁에 올려진 빵을 한입 베어문 채로 느긋하게 집을 빠져나온다.)
밍기적거리며 준비를 하고 현관으로 향합니다.
신발끈을 묶고 거울을 확인하면 가슴팍에 간신히 달려 있는 교복 명찰에 눈이 갑니다.
곧 떨어질 것처럼 덜렁거리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대로 나갔다간 모르는 새 어딘가에 떨어뜨려 잃어버릴 것만 같아요.
츠키나가 레오:음~... (잠시 고민하다 명찰을 팍 뜯어내곤 주머니 속에 욱여넣는다.)
대충 명찰을 뜯어내 주머니에 쑤셔넣습니다.
레오는 무작정 학교로 향하기 위해 늦은 걸음을 내딛습니다.
걷다 보면, 늘 다니던 길목에서 화창하고 잔잔한 풍의 피아노 협주곡이 들려옵니다.
정신력 판정
츠키나가 레오:
정신
기준치:
65/32/13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맑은 하늘에 가벼운 공기.
여유로운 아침을 만끽하며 잠시나마 붕 떠있던 기분이 노골적으로 가라앉습니다.
왜일까요?
피아노를 그만둔 뒤로 건반에 더 손을 댄 적은 없어도 곡을 듣는 것까지 거북했던 적은 없는데…
SANc 0/1
츠키나가 레오: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이미 한 번 음악에 대한 의지를 저버린 탓인지 청각과 마음이 이전같지 않습니다.
방금 느꼈던 메스꺼움도 그만둬버린 음악에 대한 내면의 적개심일까요.
아니면 미련일까요.
넓지도 좁지도 않은 시멘트 길의 인도를 따라, 익숙한 학교 건물의 모습이 보입니다.
후텁지근한 공기가 씁쓸한 입맛을 돋굽니다.
여름이니까요.
-
정문을 향하면, 이 시간에 정문을 통과하는 학생은 레오뿐입니다.
그야 지금쯤이면 조례가 시작되었을 무렵인걸요.
레오는 3학년 B반의 학생으로,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서면 조례 직전 출석이 막 진행되려던 참입니다.
A반 선생님:허어? 너 지금 오는 거냐? 이 반은 정말 소문대로 지각쟁이가 많은 반이구만... 빨리빨리 앉아라.
A반 선생님의 불같은 호령이…
잠깐만, A반 선생님이요? 여긴 B반인데요?
그러고 보니 자리 배치도 어제와 묘하게 다른 것 같은 기분이?
레오가 허둥대고 있으면 선생님은 도끼눈을 뜹니다.
분필이 날아오기 전에 얼른 비어있는 자리에 앉는 것이 이롭겠습니다.
츠키나가 레오:(호다닥!)
관찰 판정
츠키나가 레오: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37
판정결과:
보통 성공
급한대로 빈 책상에 앉아 책가방을 내려둔 뒤 교실을 쭉 둘러봅니다.
레오는 한 달 전부터 시작된 유행성 질병으로 인해 텅텅 비어있던 열댓 개의 책걸상이...
모르는 아이들의 머리통으로 빼곡히 들어차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비어 있었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아이들은 분명 본 적 없거나…
아니면 복도에서 한 번쯤 보았던 얼굴입니다.
역시 반을 잘못 들어온 걸까요?
눈을 비비고 다시 살펴도 교탁 앞에 서있는 저 사람은...
평소에 벌점을 남용하기로 유명한 그 A반의 담임 선생님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B반 아이들의 모습 또한 가득 찬 교실 속 틈바구니에 끼어 있군요.
이게 무슨 일이지...
다시금 교탁으로 눈을 돌리면 출석 확인이 한창입니다.
B반 학생들도 분명히 보이고,
그 사이로 레오가 알고 지내던 A반 친구인 이즈미도 보입니다.
아무래도 A반과 B반 아이들이 한데 섞여 있는 모양인데, 어떡할까요?
츠키나가 레오:.....? (갸웃거리며 교실 안을 크게 둘러보다 세나를 쿡쿡 찌른다.) 세나가 왜 여기있어?
세나 이즈미:(쿡쿡 눌리자 짜증나는지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돌아본다.) 왕님? 더운데 쿡쿡 찌르기까지 하면 짜증나니까 하지 말지~? 하아, 정말... A반이랑 B반이랑 합반 하기로 했다나봐.
레오와 이즈미는 수군대며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조례 시간이죠... 선생님의 눈을 피할 수 있을까요?
은밀행동 또는 손놀림 판정
츠키나가 레오:
은밀행동
기준치:
65/32/13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자리가 가까운 덕분인지 어찌저찌 선생님의 눈에 띄지 않고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목소리는 낮춰야겠죠?
츠키나가 레오:(왕님이라는 말에 미간을 살풋 좁혔다가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빠르게 풀어내곤 말갛게 웃어보인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그보다 갑자기 합반?
세나 이즈미:... (구겨지는 너의 미간을 보고는 아차 싶었는 듯 작게 한숨을 쉬고는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래, 합반. 오늘 갑자기 통보해서 아침부터 책걸상 옮기고 난리였다고?
... 그것보다 레오군, 지금 시간이 몇시인데 지금 오는거? 제정신? 정말, 레오군이 앉아있는 그 책상이랑 의자 누가 옮겼다고 생각하는거야? 완전 짜증나!
츠키나가 레오:응? 누가 옮겼는데? 세나가 옮겼어? 와하핫, 고마워 세낫! 역시 말로는 싫다 싫다 투덜대면서 할건 다 한다니까? (세나의 등을 팡팡 두드린다.)
세나 이즈미:아, 아프다고! 그러니까, 아까도 더우니까 손 대지 말라고 했잖아? 사람 말을 뭐로 듣는거? (등을 팡팡 두드리는 너를 째려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아무튼, 요즘 병결하는 애들이 많은데다가 너네 담임 선생님도 병으로 쉬시는 것 같으니까. 겸사 겸사 합반 한 것 같은데. ... 수업 중에 말 걸지 말고 수업 들어 레오군. 알았어? (너에게 다짐을 받아내겠다는 듯 말한다.)
츠키나가 레오:아, 세나! 땀났어! (입매를 일그러트린 채 투덜거리며 조금 축축한 손바닥을 세나의 어깨 위에 슥슥 닦아낸다.) 응? 아아, 그 전염병 뭐시기 때문이던가? (관심없는듯 흘려들으며 방긋 웃어보인다.) 응, 알았어!
세나 이즈미:하아? 레오군 땀은 레오군 옷에 닦아!! (질색하는 표정으로 너를 본다.) 전염병 뭐시기는 또 뭐야... 아무튼, 이제 슬슬 졸업도 생각해야 하니까 수업도 들어. 참나... (조금도 관심이 없어보이는 너의 얼굴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츠키나가 레오:에엑... 이거 세나 등에서 나온건데?! (여전히 스윽스윽 문지르며 세나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러다 힐끔 시선을 돌린다.) ...알고 있어. 나도 이제 3학년이고, 입시는 제대로 치뤄야 하니까. 피아노도 그만뒀으니 다른 길도 찾아야하고. 그 정돈 생각하고 있으니까 걱정마.
세나 이즈미:웃기지마, 그거 레오군꺼 아니야?!? 아니, 그것보다 옷에 닦지 마! 휴지라던가 안 가지고 다니는거야? (휴지를 몇장 뽑아내고는 네 책상에 내려놓는다.) ... (시선을 돌린 너를 보며 뭐라 말하려다 그만두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 뭐, 그래. 레오군이 결정할 문제니까. 알면 됐어. (그러고는 선생님 말을 듣기로 한건지 몸을 돌려 칠판을 바라본다.)
이즈미는 성실히 대꾸해 주면서도 아침부터 있었던 책상과의 씨름으로 무척 고단한 참인지 하품을 합니다.
손으로 가리긴 했지만, 쩍 벌어지는 입 너머로 피로함이 다 느껴질 정돕니다.
적당히 대화가 끝나갈 무렵...
관찰 판정
츠키나가 레오: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2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어쩐지 아까부터 얼굴 언저리가 따갑습니다.
이건 마치, 누군가 이 자리를 쭉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
고개를 휙휙 돌려봐도 짚이는 구석이 없습니다.
다들 하품을 하고 있거나 꾸벅꾸벅 졸고 있거나…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수업 풍경이네요.
잠시 후 레오를 포함한 모든 학생의 출석체크가 끝납니다.
임시 통합 담임을 맡게 된 A반 선생님이 교탁 위로 출석부를 탕탕, 두어번 두드린 뒤 말합니다.
A반 선생님:아까도 말했지만, 뒤늦게 등교해 듣지 못한 사람이 있으니... (레오 힐끔 쳐다보곤) 다시 한 번 공지한다. 갑작스럽겠지만 오늘부터 결석생 수가 많은 반을 임의로 묶어 합반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A반 B반은 미술, 음악중에 음악 과목을 선택한 반이지? 비슷하게, 미술을 선택한 C반은 D반과 합반 수업을 진행한다는 소식이다.
B반 선생님이 유행성 질병으로 병가를 내게 되셔서, 오늘부터 내가 A반과 B반의 통합 임시 담임을 맡게 됐고. 참고로 우리 반은 지금부터 B-1반이다.
이상, 조례 끝. 다들 조용히 1교시 준비하도록!
성황리에 황당한 공지를 일단락한 임시 담임 선생님이 안내를 끝마친 직후 교실 앞문 너머로 사라집니다.
몇몇 아이들의 얼굴에 불만의 기색이 내비쳐지는 한편,
원래 알던 사이인지 옆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아이들도 눈에 띕니다.
바뀐 임시 시간표에 따르면 1교시는 수학이라고 하네요.
비어있던 자리가 레오의 책상이었던 모양인지,
책상 사물함에 손을 넣어보면 레오의 이름이 적힌 교과서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레오도 곧 이즈미를 비롯해 아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그 사이에 섞입니다.
그 후로 진행된 수업은 몇몇 아이들의 불안을 불식할 만큼 무난하게 흘러갑니다.
어느덧 점심 시간이 다가왔네요.
도시락을 놓고 와 버린... 레오는 매점에 가서 빵을 사 먹기로 합니다.
점심시간의 매점은 사람이 많지만 그래도 운 좋게 AP... 아니 야키소바 빵을 살 수 있었네요.
목이 말랐던 레오는 LP... 아니 이온음료 드링크도 한 병 사 들고 돌아옵니다.
교실로 돌아와 바뀐 시간표를 재차 확인하면, 5교시는 음악 수업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교실 칠판에 노란색 분필로 작성된 커다란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5교시 음악이래~! 교과서 챙겨서 음악실로 이동할 것!
하필이면 음악 수업이라니… 내키지 않지만 가긴 해야겠죠.
교과서를 챙기기 위해 책상 서랍 내부를 뒤적이면 쉽사리 음악책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어쩐지 사용감이 영 낯익지 못합니다.
관찰 판정
츠키나가 레오: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69
판정결과:
실패
교과서를 뒤집어 살핀 레오는 책 모서리에 적혀 있는 낯선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잉크가 번져있어 이름을 제외한 성씨만 제대로 보이네요.
'3학년 A반 스오우...'
스오우...? 대체 누구일까요. 알 턱이 없습니다.
명확한 정보라고는 교과서의 주인이 A반의 학생이라는 점 뿐이고요.
오늘부터 전체 합반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으니,
이 교과서의 주인도 5교시의 음악실에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따가 갖다 줘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츠키나가 레오:... (일단 교과서를 챙겨든다.) 세나는 대체 누구 책상을 들고 온 거야...?
스오우 츠카사:네? (허둥대며 책을 건네받는 너에게 확실히 책을 쥐여 주고선, 고개를 조금 갸웃하며 물었다.) 아, 네. 제 이름은 스오우 츠카사입니다. 제 이름은 어떻게...?
문득 상대의 가슴팍에 달려 있는 플라스틱 명찰에 시선이 붙었습니다.
광택 없이 매끈한 명찰 위로 새겨진 이름은 '스오우 츠카사'.
아까 보았던 이름의 주인이 맞나 보네요.
츠키나가 레오:아까 서랍에서 책을 하나 찾아서. (이내 정신을 차린듯 건네받은 책을 책상 위에 내려두곤 가져온 책을 넘겨주려다 잠시 멈칫하며 미심쩍은 눈으로 너를 살핀다.) ...근데 내가 츠키나가 레오인건 어떻게 알았어?
나 명찰은 아침에 떼고 왔는데.
스오우 츠카사:(네가 들고 있는 책을 유심히 보더니, 조금 표정이 밝아지는 듯 했다.) 앗, 제 책은 츠키나가 씨께 가 있었군요. 마침 찾고 있었는데 다행입니다. 책걸상을 옮길 때 내용물이 섞였는지, 제 서랍엔 츠키나가 씨의 책이 들어있더라고요.
문득 헛헛한 당신의 셔츠 옷감을 떠올립니다.
그래요.
당신은 오늘 아침 곧 떨어질 것처럼 달랑거리던 명찰을 발견해 주머니에 넣은 이래인지라,
하루종일 명찰을 착용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상대는 분명 오늘 처음 만나는 A반의 학생.
당신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요?
그런 의문에 휩싸여 있으면 츠카사는 곧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답합니다.
스오우 츠카사:아... 후후. 제법 날카로우시네요. ...사실 오래 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습니다.
츠키나가 레오:(쥐고 있는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전?
스오우 츠카사:(사뭇 느껴지는 어조의 변화에, 흘깃 너를 살피자 하얗게 힘이 들어간 주먹이 시야에 들어와서. 조금 멈칫했지만 이내 너를 다시 보았다.) ...네, 예전부터요.
츠키나가 레오:(네 시선에 금세 손을 풀어내고 계속 말해보라는 것처럼 너를 바라본다.)
그 순간 음악실의 출입구가 열리며 음악 선생님이 들어섭니다.
츠카사는 어느새 정자세로 몸을 돌리고 턱을 괸 채 칠판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의문만을 남긴채 대화는 결국 흐지부지 종결되고 맙니다.
음악 선생님:자, 오늘 78p 바로크 시대 작곡가 파트 진도 나갈 차례지? 내가 알기로 A반 B반 진도가 비슷했거든? 모두 책 펼치자.
유럽 문명사에서 지칭되는 바로크 시대란 보통 17세기를 가리킨다는 거, 저번 시간에 먼저 이야기 했었지? 17세기의 예술을 가리킨다고…
점심시간 종료 이후, 선생님이 음악실에 등판함과 동시에 수업이 시작됩니다.
점심 식사 직후인지라 어마어마한 식곤증이 밀려옵니다.
벌써부터 꾸벅꾸벅 조는 등 시동을 걸고 있는 아이들의 수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78p를 펼치기 위해 교과서 페이지를 넘기던 레오는…
어라?
60p쯤에서 전에 본 적 없던 작곡가의 이름을 발견합니다.
소제목은 'M에 대하여'.
원래 음악책에 이런 내용이 실려 있었던가요?
M이라는 작곡가가 존재했던가요?
과거에 나름 오래간 피아노를 전공했던 자신이 교과서에 실릴 만큼 이름난 작곡가를 모를 리 없는데…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듭니다.
SANc 0/1
츠키나가 레오: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4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손 놓고 지내는 동안 머리가 돌처럼 굳어버린 건가?
교과서를 자세히 읽을 수 있습니다.
츠키나가 레오:... (교과서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비교적 최근에 발견되었다는 M의 곡에 대한 기사 내용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M에 대하여
교과서를 읽은 레오, 관찰 또는 자료조사 판정
츠키나가 레오: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5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박스 하단에 작은 글씨로 새겨진 메모를 추가로 발견합니다.
실제로 <겨울이 흘린 눈물>의 원본을 보았다는 예술가의 증언에 따르면,
악보 <겨울이 흘린 눈물>에는 은은하게 빛나는 특이한 인장이 찍혀 있었다고 합니다.
형태가 무척 조악했으며 세월에 바래 누렇게 떠 있었다고요.
달리 흥미로운 내용은 아닙니다.
아마 작곡가 M의 자필 사인이었을 겁니다.
지능 판정
츠키나가 레오: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마침 몇 년 전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M에 대한 기사를 접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가 쓴 곡은 음악에 문외한인 인물도 단숨에 사로잡을 수 있을 만큼, 매혹적인 악보였다는 뜬소문이 내용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그런데 그게 도둑을 맞았었나 봅니다.
심지어 나머지 한 곡은 분실되었고요.
어쨌든 도둑 엔딩이라니 별 대단한 내용도 아닙니다.
악보 원본이 공개된 것도 아닌 모양인데 별 게 다 교과서에 실리는군요.
그 두 곡을 제외하곤 여지껏 악보랄게 발견되지도 않았던 무명 작곡가가 어떻게 교과서까지 신출귀몰 했는지 의문입니다.
츠키나가 레오:(갸웃거리며 흥미없이 페이지를 넘긴다.)
이후의 교과서는 별 특이한 점도 없군요.
문득 말랑한 츠카사의 목덜미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에 시선이 갔다가도, 쉬이 흩어집니다.
음악실의 에어컨이 고장난 걸까요… 너무나 덥습니다.
바깥에서는 매미가 울고 풀벌레가 나무를 깁니다.
방충망에 달라붙어 있던 나비 하나가 창틀을 타고 오르다 이내 나뭇잎 너머로 자취를 감춥니다.
여름이네요.
-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염증이 날 만큼 물러 터졌는데 시간은 너무나도 착실히 흐릅니다.
책가방을 싸거나 집에 갈 준비를 서두르며 종례를 맞이하고 있는데…
A반 선생님:츠키나가.
담임 선생님이 갑작스레 레오의 이름을 호명합니다.
각자 떠들던 아이들의 시선이 당신의 자리에 고였다가도 빠르게 흩어집니다.
A반 선생님:지금 보니까 우리 반 임시 출석부가 음악실에 있는 것 같네. 근데 A반도 B반도 반장들이 다 결석이라, 네가 음악실에서 출석부 찾아서 교무실에 갖다 주고 하교해라.
지각한 벌 심부름이다. 알았지?
츠키나가 레오:(늘어지는 목소리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네에-
왜 하필 전데요?
반문하고 싶지만 선생님은 레오의 책상 위에 음악실 열쇠를 내려두고 종례 선언을 끝마친 뒤 교무실로 사라집니다.
하는 수 없이 음악실에 들렀다 집으로 돌아가야겠네요.
마스터키를 들고 5층으로 발걸음하면...
음악실의 방음 문이 좁은 틈을 벌리고 열려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사이로 오후 다섯 시의 비산하는 빛줄기가 묘연히 바닥을 적시고 있고요.
누군가 음악실에 잔류해 있는 걸까요?
마지막으로 음악실을 사용했던 다른 반의 주번이 잠그는 일을 깜빡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저런 가능성을 유추하고 있노라면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작달만한 피아노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 곡은… 익히 들어왔기에 잘 알 수밖에 없는 곡입니다.
쇼팽 에뛰드 작품 25-5번, '추억'.
누구인지 모를 연주자의 손끝에 의거하여 피아노 독주가 막 시작되는 찰나입니다.
지능 판정
츠키나가 레오: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부유하던 먼지와 공기가 미세한 파동이 되어 호수 밑바닥까지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며칠 전부터였어요.
종례를 할 때면 계단은 한적했고,
꽤 아득히 느껴지는 상층에서는 늘 정체 모를 누군가의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려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상대는 어쩌면 오늘 음악 시간 시작 전에 문 너머에 있었던 그 사람일지도 모르죠.
츠키나가 레오:(한참을 머뭇거리던 끝에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고 천천히 문을 열어본다.)
늘 환청같은 피아노 곡소리를 들으며 계단을 내려가던 기분이 좋았는지 싫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문은 여전히 열려있고 연주는 거리낌이 없습니다.
한편으로 방과후에 마음대로 음악실을 사용해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할 테고요.
선생님께 하달받은 심부름도 있으니 레오는 음악실로 들어서기로 합니다.
문을 가르고 접어든 공간의 꼭 닫혀있던 커튼이 말갛게 걷힌 가운데,
잠시 눈앞이 하얗게 정전했습니다.
산발하는 태양빛은 이따금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 구석이 있습니다.
눈부신 빛에 적응한 시야 너머로 들어오는 것은 예의 그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
투명한 햇빛을 눈부시게 반사해 고아한 빛을 뿜는 악기 너머 건반을 다루고 있는 사람은…
놀랍게도 오늘 음악 시간에 함께 수업을 듣던 A반의 츠카사입니다.
막연히 듣기에도 굉장히 탁월한 실력입니다.
악보대로 건반을 짚어나가는 손의 움직임은 부드럽고 매끄러우면서도 성실합니다.
청명한 수풀이 푸르른 가운데 녹색으로 물든 빛이 그의 등 뒤를 적시고 있습니다.
순간 넋이 나갈 뻔했습니다.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문득 바라본 츠카사의 모습 너머로 스스로가 겹쳐 보였던 것도 같습니다.
아까 음악실에서 보았던 미소가 그의 입가를 아른하게 감싸고 있습니다.
그가 연주해내는 에뛰드는 저 너머 보이는 여름의 푸름과도 같이, 그저...
그저 찬란하게만 들립니다.
자연스레 생각해 버립니다.
레오 자신도 이런 음악을 연주한 적이 있던가요.
자신도 이렇게 즐거운 듯 피아노를 쳤던 적이 있었던가요.
츠키나가 레오:
안단테 Roll
기준치:
100/50/20
굴림:
3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옅어진 흉터가 남은 손바닥을 손끝으로 느릿하게 더듬는다. 속에서부터 울렁이는 묘한 감각에 억지로 침을 삼킨 입안이 쓰기만 하다. 즐겁게, 즐겁게 피아노를 쳤던 적이 있었나. 너무 어린 시절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즐겁게 피아노를 쳤던 순간, 그 순간... 나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더라...? 떨리는 손이 희게 질리도록 한번 말아쥐곤 교실 문을 몇번 두드린다.) ...저기.
어느덧 곡이 완주되고 마침내 손가락이 건반에서 떨어져 나옵니다.
츠카사는 그 옆에 세워두었던 녹음기의 정지 버튼을 누른 뒤 주머니에 집어넣고 레오에게 아는 척을 합니다.
스오우 츠카사:(녹음기를 주머니에 집어넣은 뒤, 음악의 선율 사이로 들어온 너의 목소리에 피아노 너머로 너를 바라보곤 나긋하게 웃었다.) ...언제부터 와 계셨던 건가요? 츠키나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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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츠키나가 레오:(알 수 없이 뒤틀리는 감각이 뱃속을 묵직하게 짓누른다. 슬쩍 좁혔던 미간을 보지 못하게 빠르게 지워낸 뒤 방긋 웃어보인다.) 얼마 안 됐어. 잘 치네? 꽤 오래 배운 것 같은데. 그나저나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여기서 혼자 뭐하는 거야?
스오우 츠카사:그랬습니까?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미숙한 부분도 많은걸요. (잘 친다는 너의 말에 조금 멋쩍은 듯, 그러나 확연히 기쁜 내색을 비치고 미소지었다.) 으음, 그렇게 보이나요? 꽤 어렸을 적부터 piano를 시작한 건 맞습니다만. 보시다시피 피아노 연습입니다, 며칠 뒤에 콩쿨이 있어서요. 츠키나가 씨는 여긴 어쩐 일이신가요?
츠키나가 레오:...그렇구나. (기쁘게 웃어보이는 너를 향했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가 금세 돌아간다.) 오늘 지각해서, 출석부 담당. 합반이니까 너도 들었을텐데? (문득 든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몸을 돌려 교실을 두리번 거린다.) 여기서 출석부 못 봤어? 아무튼 연습도 좋지만 더 늦었다간 집 가기 힘들어질걸. 적당히 하고 들어가~
스오우 츠카사:네. 이맘때쯤 정기적으로 콩쿨이 열리곤 하니까요. ...츠키나가 씨라면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나지막이 그렇게 말하고는, 두리번거리는 너를 따라 음악실 안을 휘 둘러보았다.) 출석부라면... 저기, 칠판에 있는 저거 말인가요? 후후, 신경 써 주시는 건가요.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아직 해도 완전히 지지 않았는걸요. 여름이잖아요.
츠키나가 레오:(작게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지 못한 척 칠판 쪽으로 다가간다.) 뭐어, 그렇다면 마음대로 해. 어차피 네가 하는 거니까? 너무 무리하다 쓰러져도 난 몰라. 컨디션 조절, 관리도 실력이니까- 라고 세나가 말하려나.
스오우 츠카사:... (제 말을 가볍게 흘려보내는 너를 보고 어쩔 수 없단 듯, 가볍게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러나 평소처럼 다시 부드러워 보이는 표정으로 돌아가는 데엔 얼마 걸리지 않아서.) 츠키나가 씨도, 피아노... 치시죠? 중요한 콩쿨을 앞두고 무리해서 condition을 악화시킬 만큼 안일하진 않으니, 걱정 마세요. 츠키나가 씨는 꽤 상냥하시네요. (작게 고개를 끄덕이다) 아... 저희 반의 세나 씨 말이신가요? 대화를 나눠본 적은 별로 없지만, 확실히 그렇게 말하실 것 같네요.
츠키나가 레오:난, 피아노, 싫어해. (피아노 치시죠? 라는 네 물음에 조금 커진 눈이 곧 빠르게 너와 마주한다. 휙,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고개를 돌린 채 짓씹듯 꾹꾹 힘을 주어 한자씩 뱉어낸다.) ...미안. (뒤늦게 표정을 갈무리하고 작게 한숨을 내쉰다.) 아무튼 그런거 안 치니까.
스오우 츠카사:(피아노, 싫어해. 또박또박 곱씹듯 뱉어낸 그 말들이 너무도 무겁게 들려온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것이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쓴웃음일지언정 얼굴에서 미소를 거두는 일은 없었고.) ...그렇군요. 최근에 피아노를 치지 않으신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 ...왜 싫어하게 되셨나요? (악의는 없었지만, 다소 조심스러운 듯한 시선이 네 주위를 부드럽게 맴돌았다.)
츠키나가 레오:(무언가 알고 있다는 것처럼,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모습에 무언가 버튼이 눌린 것처럼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다.) 그게 왜 궁금한데? (조금 서늘함이 감도는 눈이 너를 내려본다.) ...너, 나 알아? 대체 날 언제 어디서 만났길래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그런냥 구는 거야? 우리가 개인 사정을 말해줄 수 있는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괜시리 꽉 쥐여진 손에, 흐릿해진 흉터 위로 손톱이 파고든다.)
스오우 츠카사:... (어딘가 매서운 감정에 겨운 너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여전히 피아노 의자에 앉은 채로, 한동안 너의 눈을 피하지도 않고 들여다보다 곧이어 천천히 제 앞의 건반으로 시선을 내린다. 퍽 쓸쓸한 듯한, 그렇지만 여전히 유한 눈빛은 꺼지지 않은 채.) ...다는 아니지만, 알고는 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피아니스트니까요. ...저희 또래 피아니스트들 중에, 츠키나가 씨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느릿하게 그렇게 말하곤, 다시 시선을 끌어올려 주먹을 쥐는 너의 손을 바라보았다.) ...정말, 피아노를 싫어하시나요?
츠키나가 레오:(제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하는 모습에 주춤, 자세가 흐트러진다. 맥이 풀리기라도 한 것처럼 너무나 쉽게 잔뜩 힘이 들어간 몸으 풀어진다.) ...미안, 내가 좀 예민했네. (우습게도 네 시선 한번에 느슨해진 주먹이 곧 힘없이 아래로 떨어진다. 정말 피아노를 싫어하냐, 그 물음에 무슨 표정을 지었던가. 조금 흐려진 시야에 정확히 피아노가 들어찬다. 희미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곧 아래로 내려간다. 어딘가 씁쓸해보이는 눈이 익숙하게 건반 위를 훑는다. 음을 찾아가는 것처럼 더듬던 시선이 곧 무언가에 놀란듯 빠르게 떨어진다.) ...응, 싫어해. 엄청. 피아노따위, 이제 꼴도 보기 싫어.
스오우 츠카사:(다소 느슨해진 목소리가 힘없이 사과해 오는 것을 듣고, 너와 반대로 시선을 끌어올려 너를 멀거니 바라본다. 피아노를 쫓는 당신. 피아노를 싫어한다는 당신. 그 먹먹한 눈길까지도.) 아닙니다, 츠키나가 씨가 사과하실 필요는 없는걸요. ...그럼, 피아노 연주를 듣는 건 아직 할 수 있으신가요?
츠키나가 레오:
안단테 Roll
기준치:
100/50/20
굴림:
1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내 연주가 듣고 싶은 거야? (그런 말은 꼭 처음 듣는 사람처럼 동그랗게 떠진 눈으로 너를 바라본다. 날카롭게 치켜올라갔던 것이 언제였냐는 것처럼 유하게 풀어진다.) ...미안해서 어쩌지~ 나, 손을 다쳐버려서. 더이상 연주는 못할것 같아. (작게 웃으며 흉터가 남아있는 손바닥을 펴 네 눈앞에 흔들어 보인다. 손이 조금 떨리는 것 같이 경련한다.) 의사선생 말로는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예술쪽 같은 섬세한 활동은 힘들거 같다고 하더라구~
스오우 츠카사:(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냐고. 그 말을 건네면서는 내심, 지금까지보다 더 날이 선 말들도 감내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마는. 도리어 어딘가 애처롭게, 혹은 허탈하다는 듯 유해진 말을 건네오는 너를 제법 놀란 듯 바라보았다. 마주친 시선이 깜빡, 깜빡. 너의 손에 남은 선명한 흉터를 멀거니 바라본다.) ...그랬군요. 부상이... (무언가 납득한 듯한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 깨물다, 천천히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나 너의 앞에 다가가 섰다.) ...컨디션 조절도 실력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쉬셔야 한다면, 저도 억지로 연주를 듣고 싶은 건 아닙니다. 대신... 내일 조례 전 아침에, 이곳 음악실로 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콩쿨이 얼마 남지 않아서, 제 연주를 듣고 feedback을 해 주셨으면 해서요. ...역시 무리일까요? (옅은 미소를 머금은, 그러나 퍽 간절해 보이는 표정이 너를 향했다.)
츠키나가 레오:(하얀 이에 물려 새하얗게 질리는 입술에 시선이 머문다. 조금씩 밀려오는 감각을 모른척, 억누르며 몇 번 입술을 달싹이다 꾹 다문다.) ... (어째서 자신을 이리도 신경쓰는 걸까, 애처로이 보일만치 간절한 표정에 고민할 틈도 없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버린다.) 아, 뭐, 피드백 정도야... 조금 엄할텐데 괜찮겠어? 스오. (입술을 말아 오므리며 조그맣게 단어를 입에 담아본다. 부드럽게 입안에서 굴러가는 음이 묘하게 마음에 들어 저절로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스오우 츠카사:(잠시 고이기 시작하는 정적, 그리고 그 끝에 들려오는 나지막한 수긍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 ...네, 바라는 바입니다. feedback은 원래 실력 향상을 위해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오전 7시에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뒤이어 처음으로 네 입에 담긴 제 이름. 그것을 듣고 확연히 밝아진 표정으로 푸스스 미소지었다.) 그리고 저는 '스오' 가 아니라 스오우 츠카사입니다.
츠키나가 레오:흐응, 그 생각은 마음에 드네. 다들 조금도 못 버텨서 떨어져나가기 일수니까? 다들 정말 끈기가 부족해. (손을 휘적휘적 흔들며 출석부를 챙겨 교실을 빠져나온다.) 응응, 알고 있어. 스오~ 그럼 내일 아침 7시에 봐~
스오우 츠카사:(너의 말에 으음, 하며 고개를 비스듬히 끄덕였다가.) 객관적이고 정확한 지적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 자세야말로 저희 집안에서 중요히 여기는 것이니까요. (살풋 웃어보이다, 출석부를 챙겨 교실을 나가는 네 뒷모습을 엉거주춤 바라보았다.) 아, 저, ...호칭을 고쳐주실 생각은 없으신 것 같군요. (그래도, 일단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그렇게 잠시 생각을 미뤄둔 채로.)
출석부를 교무실에 가져다 두고 1층 현관으로 나오면 어느덧 해가 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가 진다고는 해도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아직 주홍빛 노을이 한창 저물고 있을 뿐입니다.
곧장 교문으로 향하면, 아까 음악실에서 금방 나왔던 건지...
츠카사도 교문을 향해 걸어오고 있습니다.
헤어진 지 얼마 안 되어 마주치는 것만큼 어색한 일이 또 없죠.
그저 말없이 손인사, 혹은 눈짓으로만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려던 당신을 츠카사가 불러세웁니다.
앞뒤 사정 설명은 간결히 생략해 버린 하나의 물음으로요.
스오우 츠카사:(교문 바로 앞에서, 너와 조금 거리를 두고 멈춰서는 발걸음 소리가 조용하다. 뒤이어 조곤조곤 앞만을 응시한 채 네게 말했고.) ...부상 때문인가요? 피아노를 그만둔 이유가.
츠키나가 레오:...그게 궁금해? (고개를 돌려 정면을 응시하는 너를 가만히 바라보다 이제는 거의 희미하게 보이는 흉터를 습관처럼 더듬어 문지른다. 꼭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아니. (기어들어가듯 작게 읊조린 말과 함께 걸음을 재촉한다.)
스오우 츠카사:(그게 궁금하냐고. 그런 너의 물음에 네 쪽으로 시선을 돌려, 차마 아무런 말도 몸짓도 하지 못한 채. 짐짓 네가 흉터를 매만지는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실례될 걸 알고 드린 질문에 답해주셔서 감사해요. 아까도... 여러 모로 죄송했습니다. (네가 걸음을 재촉하기 직전, 그렇게 꾸벅 작은 목례를 한 채 저도 뒤돌아 교문에서 멀어져 갔다.)
츠키나가 레오:
안단테 Roll
기준치:
100/50/20
굴림:
82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멀어지는 네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기만 하다 해가 저물어갈 즈음에야 정신을 차린듯 다시 걸음을 옮긴다.)
무더운 온도를 그대로 색으로 바꿔 입혀놓은 듯, 노을이 점차 새빨갛게 저물어 갑니다.
여름의 낮은 길지만 그럼에도 레오는 등을 돌려 교문에서 멀어져 갑니다.
그야 현재에는 끊임없이 시간이 흐르니까요.
-
레오는 오전 7시에 음악실에서 만나자는 약속에 따라 제법 이른 시간 등교하게 됩니다.
나뭇잎 사이를 걸러 들어온 햇빛이 묘하게 어슴푸레하게 느껴지는 오전.
공기는 제법 서늘하고 묶어놓지 않은 커튼을 바람이 나부낍니다.
암막 커튼과 그 위에 이중으로 쳐놓은 쉬폰 커튼이 펄럭일 때마다.
텅 빈 사각형의 교실 위로 유령의 몸짓같은 그림자가 일렁이길 반복합니다.
오늘은 내가 가장 빨리 등교한 건가?
그런 생각과 함께 책가방을 내려놓고 교실을 둘러보면…
텅 빈 서른 대여섯 개의 책상 중 유일하게 책가방이 올라와 있는 책상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책상을 살피면 책가방이 올라와 있으며, 나무로 만들어진 책걸상 모서리에 임시 시간표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왼쪽 상단에는 반과 번호를 묶어놓은 학번과 자리 주인의 이름이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군요.
이름을 확인하면 스오우 츠카사, 이름 세 글자가 적혀 있습니다.
어렵지 않게 츠카사의 자리임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츠키나가 레오:(고개를 갸웃거리며 가방을 살펴본다.) 가방만 놓고 바로 음악실로 갔나? ...열심히 하네, 엄청. (마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그 모습에 조금 미묘한 웃음을 띄운다.)
책가방을 내려놓은 직후 이곳에서 무언가를 꺼내 갔는지 가방 지퍼가 살짝 열려 있습니다.
가볍게 살피기만 하면 눈에 띄는 것들은 죄 평범합니다.
네다섯권 정도의 얇은 악보집들과 필기 노트, 교과서 몇 권, 필통 따위의 학용품들.
그리고 간식으로 먹으려고 했던 건지 막과자 몇 봉지가 들어있습니다.
츠키나가 레오:...막과자라니, 정통있는 부잣집 도련님처럼 생겨선 의외로 애기 입맛이네. (힐끔 막과자 더미를 바라보곤 조금 망설이다 천천히 악보집을 집어들어 펼쳐본다.)
관찰 판정
츠키나가 레오: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3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켜켜이 쌓여 있는 악보집들 사이로 표지가 누렇게 떠 있는 악보집 하나를 발견합니다.
다른 악보집들은 거진 새로 구매한 듯 기스 하나 없는 클리어화일에 분철되어 있는 반면,
저 혼자서 세월의 흐름을 증언하듯 표지 색이 바래있습니다.
감정 판정
츠키나가 레오:
감정
기준치:
55/27/11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적어도 300년은 더 되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츠키나가 레오:....?
...정말 부잣집 도련님인가.
(관심없는 척하며 힐끔 악보를 훑어본다.)
악보를 아예 펼쳐보면... 음표가 수놓인 모양을 미루어 생초면의 작품입니다.
츠카사는 작곡도 겸하고 있는 걸까요?
아울러 1p 상단에 뉴스 헤드라인처럼 자필로 작성되어 있는 곡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적혀 있습니다.
외국어(이탈리아) 판정 혹은 어려운 난이도의 교육 판정을 합니다.
츠키나가 레오:
교육
기준치:
55/27/11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곡명은 <여름의 유령>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지능 판정
츠키나가 레오: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7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첫 마디만을 살펴도 꽤나 매혹적인 곡입니다.
불현듯 어제 5교시에 음악 교과서에서 발견했던 'M에 대하여' 대목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었어요.
M은 16세기의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로,
<겨울이 흘린 눈물>과 곡명이 알려지지 않은 의문의 계절 환상곡을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다… 고 했던가?
도둑맞아 곡명은 미궁 속에 숨어 있다던 계절 환상곡이 마음에 걸립니다.
만약 <여름의 유령>이 정말 300년 이상 된 곡이라면...
<겨울이 흘린 눈물>과의 작곡 시기가 얼추 맞물린다는 사실을 눈치챕니다.
SANc 0/1
츠키나가 레오: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38
판정결과:
보통 성공
...뭐, 아니겠지. 설마 그런게 여기 있겠어?
이어서 정신력 판정
츠키나가 레오:
정신
기준치:
65/32/13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그런데, 어라?
단언할 수 없으나 이 장면은 분명 언젠가 본 적이 있습니다.
혹은 경험했거나요.
데자뷰란 본디 뜬금없는 현상이긴 합니다만,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불쾌하다기보다는, 지금 이 장소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존재하는 듯한 느낌.
SANc 0/1
츠키나가 레오: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그 순간 교실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7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립니다.
시계를 확인하면 시침과 분침은 7시를 가리키고 있고 초침은 막 숫자 5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약속 시간인 오전 7시입니다.
찜찜하다기보단 의뭉스러운 상태가 이어집니다.
약속을 어길 것이 아니라면 더 늦기 전에 음악실로 올라가는 편이 낫겠습니다.
츠키나가 레오:(악보뭉치를 다시 가방 안에 넣어두고 급하게 음악실로 달려간다.)
마치 그 누구도 손대지 않은 것처럼 음악실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귀를 기울여 보지만 오늘은 이 너머에서 달리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지는 않는군요.
문고리를 잡아 돌리면 부드럽게 돌아갑니다.
열려 있으므로 어렵지 않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네요.
음악실로 들어서면 어제와 같이 환하고 눈부신 여름의 햇살이 레오의 전신을 덮칩니다.
이름난 과거 음악가들의 초상화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방음벽 어귀에 붙어 있고,
교탁 너머의 칠판에는 분필 가루가 얕게 묻어나긴 했으나 그 나름대로 깨끗하고 푸르기만 합니다.
오래된 악기만이 머금은 특유의 냄새는 익숙한 종류여서,
늘 이 냄새를 기억하고 있던 심장만이 조용히 두방망이질 칩니다.
창틀 너머로 풀잎의 싱그럽고도 비릿한 향기를 머금은 바람이 콧잔등을 건드리면 그제야 정신이 드는 것입니다.
그 단정하고 고요한 음악실 가운데 그랜드 피아노 앞에는 약속처럼 츠카사가 앉아 있습니다.
츠카사는 뚜껑이 닫힌 피아노에 팔꿈치를 기댄 채 눈가를 짚고 있습니다.
레오가 들어온 인기척을 눈치채지 못한 상태로,
어딘가 몸이 좋지 않은 듯 안색이 창백합니다.
비단 오전의 하얀 백색광선 탓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스오우 츠카사:
(To GM)rolling 1d100<55
(
16
)
=
1 Success
스오우 츠카사:(피아노에 체중을 싣고 얼마쯤 가만히 있었을까, 어느 순간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손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네가 온 것을, 약속을 지켜준 것을 깨닫고 미소가 두둥실 떠오른다.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너를 바라보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츠키나가 씨. 와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츠키나가 레오:... (미간을 일그러트리며 급하게 네 쪽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무슨 일이야, 어디 아파? 역시 그동안 무리했던 거지. 연습은 나중에 하고, 일단 병원부터 가.
스오우 츠카사:네...? (인사를 하자마자 대뜸 저에게 급하게 다가오는 너를 보고 퍽 놀라 멀거니 너를 보고만 있다가, 이내 작게 웃어보였다.) 으음, 제가 몸이 안 좋아 보였나요? 괜찮습니다, 콩쿨을 앞두고 무리할 만큼 바보는 아니니에요. 조금, 더워서 그런 거니까요.
츠키나가 레오:바보야. 바보 맞잖아. (뺨을 덥석 움켜쥐곤 꾸욱 눌러 이리저리 안색을 살핀다.) 고집불통에 말도 안 듣고. ...이런 것까지 닮을 필요는 없잖아. (이마를 걷어 열이 있는지 가늠해본다.)
이마를 짚어보면, 평균 체온이라기엔 조금 뜨겁습니다.
스오우 츠카사:우웁?! 저, 저는 바보가 아닙니다만...! (뺨을 덥석 움켜쥐어오는 것에 당황해 허둥대고 있으면, 제 이마에 얹어지는 서늘한 감각에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닮았다니, 무슨...? ...그, 그렇지만 정말 괜찮은걸요. 더위에 약한 체질이라 그렇습니다. 아픈 데는 없어요.
츠키나가 레오:그런 것치고는 체온이 꽤 높네, 스오우 츠카사 씨. (엄한 표정으로 다그치듯 너와 눈을 맞춘다.) 좋은 연주는 좋은 컨디션으로부터 나오는거야. 일단 몸이 개운하고 머리가 맑아야 연주도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거지. 아파서 인상 팍 쓰고 연주해봤자 마음은 전해지지 않아. 차라리 지금처럼 초기일 때 잡아야지. 너, 오늘 바빠? 안 바쁘면 나랑 병원 가자.
스오우 츠카사:앗, 이것도 더위에 약해서... (무언가 말을 하려다, 너의 엄한 표정에 가로막히곤 혼나는 아이처럼 입을 꾹 다물고 그저 너의 말을 듣고만 있다가.) ...그렇네요. 즐겁지 않은 마음으로 연주하면, 즐거운 마음은 전해지지 않겠죠. 그렇지만... 전 정말 괜찮습니다. 병원엔 안 가도 돼요. 이 정도는 심한 것도 아니니까 수업하는 사이에 아마 나아져 있을 겁니다. ...절 믿어주시겠어요? (널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츠키나가 레오:(혼이 난 아이처럼 시무룩해진 모습에 느리게 두어번 머리를 쓰다듬는다.) 괜찮아. 어차피 병문안도, (아차 싶은 얼굴로 입술을 꾹 오므렸다가 금세 언제 당황했냐는 것처럼 슬쩍 몸을 떨어트린다.) ...가야하고. 가는 길이니까 너 하나쯤은 같이 가도 상관없어. (완고하게 너를 병원에 데려가겠다는 듯 말하던 것도 결국 믿어달라, 는 너의 말에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뭐... 스오가 정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대신 더 심해지면 정말 혼낼거야.
스오우 츠카사:(예상 밖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얼떨떨한 눈으로 너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거리가 가깝다는 사실이 훅 실감나서. 그러다 문득 예사롭지 않은 말이 귓가에 번진 것에 눈을 동그랗게 떴고.) ...아는 분이 아프신 겁니까?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너에게 잔잔히 웃어보였고.) ...후후,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이른 시간부터 학교에 나와주십사 부탁드렸으니, 제가 유익한 시간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겠죠. 그를 위해서라도 몸 관리는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츠키나가 레오:...그냥 장염이야, 신경쓰지 마. (슬쩍 네 시선을 피하며 조용히 중얼거린다. 습관적으로 손바닥을 쓸다 손을 꽉 쥐어 감춘다.) 내일은 괜찮아져서 오는 거지? 아무튼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어서 연주 해봐. 피드백, 해줄테니까.
스오우 츠카사:...그런가요? (손을 꽉 쥐는 것 같은 너의 움직임을 바라보다, 무언가를 가만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요. 알겠습니다. 과제곡은... 저번에 잠깐 들어보셨던가요? La Campanella로 하기로 했습니다. 어제 연습한 후 악보는 여기에 두고 갔으니, 저기에 있을 거예요. (자리에서 움직여 피아노 뒤편의 간이 책상을 향했다.)
츠카사가 간이 책상에 다다른 그 때.
덜컹!
책상을 잘못 건드렸는지 요란한 소리가 납니다.
일말의 소음과 함께 간이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악보집들이 바닥에 우수수 쏟아져 섞입니다.
츠키나가 레오:...! 괜찮아?! (큰 소리에 놀라서 급하게 네 쪽으로 달려간다.) 다친데는? ...조심하고. 오늘 정말 몸 상태 안 좋은거 아니지? (일단 몸 상태부터 살핀 뒤 작게 한숨을 내쉬곤 조심스럽게 악보를 모은다.)
스오우 츠카사:으앗?! (저도 꽤 놀랐는지 바닥에 산만하게 흩어진 악보를 바라보고 있으면, 제 쪽으로 달려오는 네가 어쩐지 더 놀란 듯 보여서.) 앗, 저는 괜찮습니다. 책상을 잘못 건드린 것 같아요. Elegant하지 못한 실수를 해 버렸군요... 몸은 걱정 마세요. 정말 괜찮으니까요. (너에게 살풋 웃어준 후, 호다닥 쪼그려 앉아 저도 악보를 같이 정리하기 시작한다.)
레오와 츠카사는 흩어진 악보집들을 주섬주섬 줍기 시작합니다.
낱장의 악보가 발치에 채입니다.
바닥에 엉망으로 흩어진 내용물들을 살피니 그 수가 꽤 많았네요.
훑어보면 츠카사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도 눈에 들어오지만,
구매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포장조차 뜯지 않은 악보집도 더러 보입니다.
관찰 판정
츠키나가 레오: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1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틈에 거꾸로 뒤집혀 있던 낡은 악보집 한 권입니다.
뒤집혀 있던 탓에 곡명을 읽지는 못했지만…
레오는 악보집의 어귀에 자리하고 있던 어떤 인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찰나였지만 은은하게 빛나던 모양새가 아주 특이한 문양이었습니다.
일견 누군가의 자필 사인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네요.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곧 츠카사가 얼른 그것을 주워 정리를 마무리합니다.
스오우 츠카사:
(To GM)rolling 1d3
(
1
)
=
1
스오우 츠카사:휴우. (정리한 악보집들을 한데 모아 책상에 탁탁 하고 쳐서 모양을 맞춘다.) 덕분에 생각보단 빨리 정리했네요.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생긋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그 사이에서 원래 제가 찾으려던 과제곡의 악보를 찾기 시작한다. 손으로 악보를 넘기며, 문득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고.) ...그런데 병원에는 누가 입원하신 건가요?
츠키나가 레오:... (다시 피아노 쪽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잠시 멈춘다. 잠시 망설인듯 어색한 침묵 끝에 조그맣게 숨을 뱉어낸다.) 내 동생. (얼른 오라는 것처럼 고개를 돌려 너에게 손짓한다.) 뭐해? 시간은 계속 가고 있어. 빨리 안 하면 못 봐준다?
스오우 츠카사:...! (멈칫한 끝에 작게 속삭인 대답. 그 대답을 듣고서는 퍽 놀란 얼굴이 되어 제게 손짓하는 너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조금 생각해 봤습니다만, 역시 과제곡보다는 이 곡이 좋겠습니다. (악보집에서 찾던 악보를 꺼냈지만, 제가 본래 갖고 왔던 악보집에서 다른 악보를 꺼내어 받침대에 올려놓았다.) ...feedback은, 저의 연주 스타일이나 자세 교정에 대해서 봐 주셔도 좋으니까요. 우선... 연주할 테니, 들어주세요. (피아노 의자 앞으로 다가가 앉아,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츠카사는 아까 정리했던 뒤집혀 있던 악보집을 포함한 악보들을 피아노 의자 아래 수납공간에 넣습니다.
자세를 고쳐 앉고, 연주를 하기 직전 이전처럼 녹음기를 꺼내 녹음 시작 버튼을 누릅니다.
어쩐지 비장한 표정으로 츠카사의 연주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 표정은 연주가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부드럽게 풀어집니다.
집에서도 늘 실력 향상을 위한 연습을 하고 있는 걸까요.
연주하는 곡이 달라져도 선율은 여전히 감미롭고, 손가락의 움직임도 깔끔합니다.
섬세하게 건반을 누르는 츠카사의 눈이 부드럽게 휘며 웃음을 머금습니다.
그 모습에는 왠지 모를 진중함까지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연주를 들으며 레오는 어떤 피드백을 해 줄지를 생각할지도 모르고,
지난 날 자신이 해 왔던 피아노 연주에 대해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츠키나가 레오:
안단테 Roll
기준치:
100/50/20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자신만의 연주에 푹 잠겨 주변의 시선을 모두 던져버린 너를 한참이고 바라보기만 한다.) 아... (건반 위에 닿았던 손이 불에 데인 것처럼 빠르게 떨어져나온다. 바짝 마르는 입술을 혀가 느리게 훑고 지나가고, 몇 번을 달싹이다 떨어진 입술이 조용히 소리를 낸다.)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어. 그렇게 힘주면 후반에 갈수록 무리온다?
스오우 츠카사:(건반을 천천히 부드럽게 쓸어간다. 소리를 제일 예쁘게 낼 수 있는 셈여림을 조절하기란, 피아노를 제법 오래 쳐 온 저에게도 여전히 새삼스레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연주를 해 나간다. 갑자기 바꿔버린 선곡. 당신은 어떨까. 당황하셨으려나, 이 아이는 뭐냐며 이상한 눈으로 보고 계시려나. 그럼에도 지금은, 오로지 전하고 싶은 마음을 모두 손끝에 실어서 연주할 수밖에는 없으니까. 그게 제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전부였으니까. 한창 몰입한 채 연주를 이어나가다, 연주가 끝난 후에야 고개를 든다. 몽롱한 시선이 너의 시선과 맞닿았다.)
...아. (이내 녹음기의 종료 버튼을 누른 채 녹음기를 도로 주머니로 돌려놓고, 멋쩍은 듯 웃었다.) 그랬나요? 어떻게든 좋은 연주를 들려드리고 싶어서 그만... 방심했네요. 그래도, 꼭 이런 부드러운 곡을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마에 밴 식은땀을 훔치며, 너를 바라보며 눈을 접어 헤실 웃었다.)
(To GM)rolling 1d20+10
(
16
)
+10
=
26
츠키나가 레오:
안단테 Roll
기준치:
100/50/20
굴림:
1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아, (어쩐지 심장이 쿵, 가라앉기라도 한 것처럼 아래로 떨어졌다가 불규칙적으로 뛰기 시작한다. 무언가에 놀란 사람처럼 저도 모르게 몇 발자국 물러난 채로 급하게 손등으로 입가를 누른다. 뭐지...? 한여름의 아지랑이처럼 아찔하리만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에 제대로 된 사고가 힘들다. 눈에 띄게 붉어진 귓가가 머리카락에 가려져 다행이어라. 대체 너는, 너는 어째서,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나에게 무조건적인 호의를 보내는 거야? 차마 뱉어내지 못한 질문을 입안으로 삼켜낸다. 어차피 너도...) ...일부러 그 곡으로 한거야? 갑자기 무리해서 바꾸기까지 하고.
(복잡한 눈으로 흰 건반 위를 더듬어 내려본다. 마치 연주했을 때처럼, 시선이 부드럽게 건반 위를 훑는다.) 역시 고집불통에 자기주장 강하네, 스오는... 그렇게 봐달라고 강하게 어필하는데 어느 누가 시선을 뗄 수 있겠어. (작게 입꼬리가 말려올라간다.) 그렇게나 '날 봐주세요~' 하고 외쳐대는데 말이야. 콩쿨도 문제 없겠네.
스오우 츠카사:...츠, 츠키나가 씨? 왜 그러신가요? (파드득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뒤로 물러나는 너를 짐짓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제 연주가 어딘가 이상했나. 당신을 놀라게 할 만한 일을 했던가? 그런 고민이 빙글빙글 도는 것도 잠시,) 아... 네. 선곡을 바꾼 건, 일부러였습니다. (눈을 도륵 굴리다가, 결국 느릿하게 운을 떼었고.) ...저는 몰랐으니까요. 츠키나가 씨의 여동생분이 입원 중이시라는 걸요. 그저 지인도 아니고 가족이 입원했다면 신경 쓰실 것도, 할 일도 많으셨겠죠. 그런 와중에 저는, 이른 시간부터 음악실에 당신이 싫어하시는 피아노의 연주를 들어달라며 오시라고 했으니까... (어쩐지 조금 쓴웃음을 지으며, 눈앞의 악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당신은 거기에 응해 주셨죠. ...어떤 생각을 한들 이미 당신은 여기까지 와 주셨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뭔가, 츠키나가 씨에게 이 시간이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그런 피아노를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너의 말에 풋, 작게 웃음을 터뜨려 보이곤.) ...그래 보이나요? 가끔 비슷한 말을 듣습니다. 고집도 세고, 자기주장도 강하다고. 츠키나가 씨에게 그렇게 들으니까 왠지, 그것도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너에게 시선을 올려 잔잔히 미소지으며 물었다.) ...즐거우셨나요?
츠키나가 레오:...맞아, 나 피아노 싫어해. (네 말에 조금 씁쓸하게 웃으며 피아노 위를 손으로 느릿하게 더듬어본다. 잔 떨림도 없이.) 그런데, 이상하네... (울것처럼 일그러진 얼굴을 숨기지 못한 채로 너에게로 행한다.) 이상해. 네 연주는 싫어할 수 없어... 왜일까? 분명, 피아노 같은건 싫다고- 소리도 싫고, 보는 것도 싫다고 생각했는데.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표정을 추스리곤 다시 힘겹게 입꼬리를 끌어당긴다.) 미안, 얼마 보지도 못한 사이인데 이런 소리나 하고. 아무튼 전혀 실례가 아니었으니까 괜찮아. ...나, 피아노 치는 건 여전히 싫어. 아마. 그래도... (습관처럼 흐릿한 흉터를 문지른다.) 네 연주는 계속, 들으러 와도 될까?
스오우 츠카사:... ...츠키나가 씨. (피아노를 손으로 쓸어보기 시작하면서부터, 숨길 수 없이 떨리는 것만 같은 너의 시선을 바라보고, 목소리를 들었다. 네가 끌어안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깊고 까마득한지, 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이후 찬란할 수 있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아니요. 말하자면 사과는 제 쪽에서 드려야지요. 피곤하셨을 텐데 아침부터 불러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해요. (살풋, 아릿한 미소를 지으며 피아노를 쓸던 너의 손 위에 조심히 제 손을 감싸안듯 겹쳐 보았다. 제 열기가 가닿고 있다는 것은 잊어버린 것처럼, 잠시 그렇게 있다가 손을 천천히 떼어서는 너를 보며 다시 말갛게 웃었고.) ...물론입니다. 원하신다면, 언제든 피아노를 들려드릴 테니까요.
(뒤이어 벽에 걸린 시계를 흘깃 올려다보곤.) ...그럼, 이제 그만 교실로 내려갈까요? 슬슬 조례 시간이 가까워지는 것 같네요.
츠키나가 레오:응, 그렇네. 얼른 가자. (어디서 나온 힘인지 잡아채듯 손을 꽉 쥐고는 빠르게 음악실을 빠져나온다.) 그 선생, 지각하면 또 벌같은걸 줄 테니까- 늦지 않게 어서 가자.
스오우 츠카사:우왓, 츠키나가 씨. 잠시만요...! 갑자기 끌고 가지 말아주세요! (잠시 더운 숨을 길게 내쉬며 악보를 정리해 쥐다가, 너의 손에 이끌려 급하게 음악실의 커튼을 쳐 정리하곤 따라 나간다.)
음악실에서 나가기 전 츠카사는 활짝 열린 커튼을 어떻게든 친 뒤, 바깥으로 나가며 이런 말을 합니다.
스오우 츠카사:...으음, 혹시나 싶어서 말해드리는 겁니다만. 해가 진 뒤에는 학교의 음악실에 들어오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츠키나가 레오:...? 어째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렇게 말하면 더 들어가보고 싶은게 사람 심리 아니야?
스오우 츠카사:후후, 그럴까요. 요즘 음악실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잖아요. 그게 정말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혹여 마주치면 큰일이 날지도 모르니까요. (제법 무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다가, 마지막 말이 끝나고서 작게 미소지었다.)
물리 선생님:거시 세계를 다루는 이론을 뭐라고 한다? 시간의 상대성 이론이라고 한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관찰자나 광원의 속도에 관계 없이 진행중인 빛의 속도는 일정하다고 설명해 줬었지? 따라서 시간과 공간은 속도에 따라 상대적이라고. 어허, 왜 다들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하고 있어?
적어도 강한 중력이 시공간을 휘게 한다는 이야기는 기억하고 있겠지? 내가 그렇게 강조했는데. 블랙홀은 시공간에 구멍을 뚫는다고 별표까지 달아줬을 거야. 교과서 확인해 봐.
도무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말들만을 늘어놓던 물리 선생님은,
졸음에 지친 기색인 학생들을 쭉 둘러보다 목소리의 톤을 바꾸십니다.
물리 선생님:다들 졸고 있는 것 같으니 잠깐 재미있는 이야기 좀 해볼까? 다들 어렸을 적에 시간 여행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 있지? 실제로 과거로의 시간여행의 경우 광속에 가까워질수록 시간이 느려지니까, 빛보다 빨리 나아가면 시간이 거꾸로 흐를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해.
하지만 빛보다 빠른 물질이 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지? 2011년에 유럽 입자물리 연구소 CERN에서 초광속입자 해프닝이 있기도 했는데, 궁금한 녀석은 학교 끝나고 찾아보도록 해라.
공부를 제대로 한 녀석들은 눈치를 챘겠지만, 시간과 공간이 속도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빛보다 빠르게 나아갈 경우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게 아니라 허수의 방향으로 흘러가버린다. 즉, 과거로 가는 시간 여행을 위해선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소리지. 우주 끈이나 웜홀을 사용한다거나. 하지만 웜홀이 그저 가상의 이론 상태일 뿐인 지금, 시간여행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지? 어딘가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미지의 구멍이 생겨나지 않는 이상 말이야.
자, 과연 미래에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가능할까? 혹여나 그렇게 미래에서 건너온 사람은 과거의 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
선생님은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는 것을 끝으로 샛길로 빠졌던 수업을 재개합니다.
물리 선생님:자 그럼... 다음 시간까지 시간여행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해 제출하도록. 숙제다!
...뒤늦게 파격적인 숙제의 내용을 공개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꾸벅꾸벅 졸던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나 한껏 야유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재개된 5교시 수업은 다시 본래의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레오는... 자지 않고 잘 듣고 있을까요?
정신력 판정 (^^)
츠키나가 레오:
정신
기준치:
65/32/13
굴림:
6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요 며칠 지각을 너무 자주 한 탓에 안 그래도 지적을 산처럼 받고 있는 레오입니다.
이젠 슬슬 지적도 지겨워질 무렵인지라 졸리지만 눈을 부릅뜨고 수업을 들어보기로 합니다.
간신히 눈을 뜨고, 졸지 않고 혼을 거의 빼고 있는 아이들을 쭉 둘러보던 차에...
무언가 열심히 적고 있는 츠카사가 눈에 들어옵니다.
열은 조금 내린 걸까요?
얼마 있지 않아 활짝 펼쳐진 교과서 위에 뜯어진 메모지 조각이 올라옵니다.
대각선 두 칸 앞에 앉아있는 츠카사가 건네준 것 같습니다.
손에서 손으로 레오에게 전달해 온 것이겠네요.
그래서인지 딱지 모양으로 접혀 있습니다.
츠키나가 레오:...접는 것도 생긴 것처럼 반듯하게 접네... (작게 웅얼거리며 쪽지를 펴본다.)
쪽지의 내용을 확인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 방과 후에 시간 괜찮으신가요? 저와 시내에 잠시 나가시지 않겠습니까? ...바쁘시면 거절하셔도 괜찮아요. -스오우 츠카사
관찰 판정
츠키나가 레오: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쪽지의 귀퉁이가 엉성하게 찢겨져 나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께 들킬까 봐 어지간히도 급했던 모양이죠.
다행히 선생님은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하신 것 같지만요.
츠키나가 레오:(열심히 쪽지를 접어서 츠카사에게 전달한다.)
[안 바빠 괜찮아.- 레오]
스오우 츠카사:(손으로 전해져 온 쪽지를 펼쳐, 승낙의 답을 보고 기쁜 듯 옅게 웃으며 답장을 써 도로 네 자리를 보낸다.)
[괜찮으시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수업 마치면 바로 출발할까요?]
다시 돌아온 쪽지를 펼치기 전, 레오는 겉에 적힌 웬 낯선 필체의 글씨를 읽고 흠칫할지도 모릅니다.
도중에 손에서 손으로 쪽지를 전해주던 친구의 필체인 것 같은데요.
얼씨구? 연애질은 학교 끝나고 나서나 해라~
...그런 글씨가 적혀있네요.
츠키나가 레오:[그래, 고맙다~]
[응, 좋을대로 해. 난 상관없어.]
스오우 츠카사:(다시 돌아온 쪽지를 받고, 낯선 필체와 그 밑에 달린 당신의 답을 보고 눈이 튀어나올 듯 커져서는.) 정말, 왜 이런 말에 굳이 답을 다시는 겁니까...! (너를 힐끗 뒤돌아 보며 중얼거리다 문득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쪽지를 집어넣는다. 괜히 민망해지는 기분에 한숨을 폭 쉬고 펜을 다시 들었다. 과연 집중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츠키나가 레오:(허둥거리는 모습이 귀여워 작게 웃음을 흘린다. 괜시리 교과서 위에 자그마한 찌그러진 하트를 하나 그려보고 히히덕거리다 이내 무료한 표정으로 턱을 괸 채 칠판으로 시선을 고정한다.)
수업이 모두 마치면 약속대로 두 사람은 함께 하굣길에 접어듭니다.
해 지는 속도가 느린 여름인지라 오후 다섯 시가 넘어가는 이릇임에도 쨍한 햇빛이 어깨를 데웁니다.
후끈하게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로 배경을 일렁이는 아지랑이가 연기처럼 자리합니다.
학교 근처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한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 근처에 위치한 상가 거리에 들어섭니다.
상가 거리는 이 근방에서 가장 훌륭한 발전이 이루어진 곳으로,
특히 인근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습니다.
몇 달 전에 비해 돌아다니는 유동객의 수는 눈에 띌 만큼 줄었지만, 그런대로 여전히 붐비는 장소네요.
사거리에 접어들자 때마침 초록불이 점등합니다.
간만에 나온 거리의 풍경이지만 무언가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흐릿하나마 기억을 되살려 근처 상점가별 위치를 도식화 시켜봅니다.
왼쪽 인도로 접어들면 뭐가 있더라…
(GM):[ 식당 / 카페 / 영화관 / 백화점 / 서점 ] !
츠키나가 레오:어디가 가고 싶었어?
(힐끔 너를 바라본다.)
스오우 츠카사:(저를 바라보며 그렇게 묻는 시선에 푸슬 웃었다.) 으음, 가려고 했던 곳이 몇 군데 있기는 합니다만... 츠키나가 씨가 가고 싶으신 곳은 없나요? 제가 같이 와 달라고 부탁드렸으니, 츠키나가 씨가 원하시는 곳도 들렀으면 합니다만.
그렇게 말씀하시니 우선은 서점에 갈까요? 사고 싶은 책이 있었거든요.
츠키나가 레오:음~ 일단 보고? 스오가 먼저 신청한 데이트니까. 뭔가 가고 싶었던 곳이 있었던 거 아닌가 싶어서~ (해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응, 갈까? 서점 먼저.
스오우 츠카사:D, Date...? (너의 말에 당황한 듯 아주아주 작게 데이트라는 말을 입 안에서 중얼거려 본다. 아까의 쪽지가 다시 생각나버려 조금 민망한 낯으로, 괜히 걸음을 빨리 하며 서점으로 향했다.) 네, 네! 가요.
여름의 열기를 뚫고 서점으로 들어섭니다.
자동문 너머로 들어서니 새 책들이 모이고 고여 있는 장소 특유의 결 좋은 나무 냄새와,
약간의 곰팡내가 섞인 에어컨 냄새가 느껴집니다.
햇빛에 푹 절어 있던 몸이 조금은 되살아 나는 기분이네요.
츠카사는 무더위에 조금 지친 기색을 하고서 서점에 들어서더니 악보집 코너 내지는 문제집 코너 근처를 서성입니다.
미리 찾아두었던 책이 있는지 검색대를 이용하는가 하면,
비슷한 출판사의 책 두어 권을 뽑아 펼쳐보기도 하며 개인적인 시간을 가집니다.
모처럼 온 서점이니 각자 읽고 싶었던 책을 찾아 둘러봐도 좋을 것 같네요.
츠키나가 레오:(조금 지루한 표정으로 서점 안을 휘휘 둘러보다 잠깐 머뭇거리며 악보집 코너 쪽으로 다가가본다.)
잠시 다른 서가에 시선을 빼앗기다 보면,
레오는 어느새 츠카사를 시야에서 놓쳐 버렸다는 것을 꺠닫습니다.
서점이 꽤 넓은 탓이네요.
츠키나가 레오:...스오? (불안함이 담긴 얼굴로 빠르게 주변을 둘러본다.)
마치 운동장처럼 펼쳐진 서점을 휘 둘러보면,
서로 다른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가지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는 출입객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그 사이엔 책 정리로 분주한 직원들 또한 섞여있고요.
츠카사가 있을만한 코너를 유추해 봅니다.
역시 [음악 코너]? 아니면 [문제집 코너]?
오늘 새로 생긴 과학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 코너]에 들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츠키나가 레오:(음악 코너에 있었던 레오...)
빠르게 자신이 있는 음악 코너부터 살펴봅니다.
음악 코너에서는 자연한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어쩌면 과거 피아노를 연주하던 시절의 레오에게는 익숙한 장소가 될 수도 있겠네요.
음악 코너를 살피던 당신은 다른 악보집이나 책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사이즈의 책 한 권을 발견합니다.
스오우 츠카사:아, 저는 악보랑 문제집을 좀 사러 갔었습니다. 간 김에 물리 숙제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다른 곳도 좀 둘러봤고요... 서점에서 길을 잃지는 않습니다만. (입술을 비죽이는 너를 보며 고개를 기울인다.) 혹시 절 찾으셨나요?
츠키나가 레오:(비죽 내밀어졌던 입술을 다시 집어넣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응. 볼일은 다 봤어? 시간 아직 많으면 나랑 영화보러 가자.
스오우 츠카사:(입술을 집어넣고 고개를 끄덕이는 널 보고 푸슬 웃다가.) 이런, 괜히 번거롭게 해 드렸네요. 멋대로 없어져서 죄송합니다... 물리 숙제를 고민하느라 잠시 생각이 많아져서요. 츠키나가 씨는 물리 숙제,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셨나요? (너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곧 눈을 반짝이며 미소짓곤 고개를 끄덕였다.) movie인가요? 저는 좋습니다, 마침 영화를 본 지도 꽤 오래 됐거든요.
츠키나가 레오:(힐끔 시선을 피한다.) 응, 어떻게든 하면 되겠지? 정 힘들면 세나한테 도와달라고 매달리면 되니까. 그 녀석, 싫다고 엄청 화내고 잔소리 하겠지만 결국 도와줄테니까~ ... 응, 가자. (자연스럽게 손을 잡아 느슨하게 깍지를 끼곤 영화관 쪽으로 향한다.)
스오우 츠카사:(너의 말에 어쩔 수 없단 듯 웃다가도, 반쯤 장난스러운 톤으로.) 정말이지, 숙제는 스스로 해야죠. 세나 씨에게도 민폐라구요? ...그리고 숙제는 미래에서 온 사람이 과거를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한 츠키나가 씨의 생각을 묻는 거였잖습니까. 본인의 생각을 써야 의미가 있죠. (조곤조곤 잔소리를 하다, 너의 손에 이끌려 결국 영화관을 향한다. 깍지를 껴 오는 너의 손길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제게 스며드는 것 같아, 몽글몽글한 기분에 너와 시선을 잠시 맞추지 못한 채로.) ...정말, 어쩔 수 없네요. 네, 가요.
영화관은 대형 상가건물 5층에 입점해 있습니다.
인테리어 리뉴얼이 진행되며 한동안 영업을 하지 않던 곳인데 때마침 저번 주에 정상 개관되었다고 합니다.
엘리베이터가 공사중이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동해야 합니다.
네온 조명이 은은하게 유리바닥을 적시는 5층에 발을 디디면 가장 먼저 달콤하고 짭쪼름한 팝콘 냄새가 풍깁니다.
티켓을 소지한 사람들이 비어 있는 테이블에 앉아 영화 입장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카운터 직원에게 문의하거나 자동 발권 기계를 이용해 티켓을 발권할 수 있습니다.
상영표를 확인하면…
여름 특집 테마의 납량 괴담 공포물과 로맨스 코미디,
평론가의 리뷰가 후하다는 액션 영화나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SF풍 판타지 영화도 눈에 띄네요.
동심이 필요한 어른들을 겨냥한 3D 애니메이션 영화 포스터도 붙어 있습니다.
스오우 츠카사:영화 종류가 꽤 많네요. ...핫, 뭔가 달콤한 냄새도 나는 것 같고... (팝콘을 파는 스낵바를 홀린 듯 쳐다보았다가, 이내 핫 하고 정신을 차리고선.) 어떤 영화가 좋으신가요, 츠키나가 씨?
츠키나가 레오:음~ 나는 이거? (애니메이션과 판타지 영화 중에서 고민하다 판타지 영화를 손으로 가리킨다.) 먹고 싶으면 팝콘 같은 것도 살까?
스오우 츠카사:SF풍 영화 말이신가요? 호오, 꽤 흥미로워 보이는군요. 좋습니다, 저걸로 해요. (영화의 포스터를 확인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 팝콘을 이야기하는 너의 말에 아까 대놓고 스낵바를 쳐다보던 게 들킨 것 같아 어쩐지 민망한 얼굴...이 된다...) ...그, 그럴까요? 저는 좋습니다. drink도 필요할 것 같고 말이에요. ...음, 우선 티켓부터 발권하러 가 볼까요?
직원:어머~ 혹시 고등학생 커플이신가요? 저희 SR시네마에서는 리뉴얼 개관을 기념하며 학생 커플 할인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혹시 커플이시면 할인 적용 받아보시는 거, 어떠세요? (생글생글 웃으며 말한다.)
할인율을 듣자하니 무려... 65% 라는군요!
스오우 츠카사:엣, 그, 저기...? (그저 생글생글 웃는 직원 앞에서, 괜히 귀까지 빨개지는 기분이라 아무 말도 못하고 눈만 도륵 굴리다 너를 힐끔 보았다.)
츠키나가 레오:(말갛게 웃으며 꽉 잡은 손을 보여주듯 앞으로 내민다.) 네, 커플이에요. 잘 어울리나요? (눈에 띄게 붉어진 귓가를 보며 몰래 웃음을 흘리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살살 정리해 넘겨준다.) 뭐 먹고 싶은거 없어?
스오우 츠카사:앗, 츠키나가 씨...! (차마 크게 소리치진 못하고 작게 책망하듯 부른 이름도, 이내 부끄러운 기분에 작게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는 손길에는, 정말 민망했지만 그렇다고 또 싫은 건 아니라서. 부끄러운 와중에도 작게 웃음지었다.) 음... 아까 snack bar에서 맛있는 걸 이것저것 파는 것 같았습니다. 가서 구경해 볼까요...?
직원:꺄아~ 그럼 그렇지, 역시 커플이시죠? 제 촉은 틀린 적이 없다니까요~ 너무 잘 어울리신다! (할인 적용을 시킨 티켓 두 장을 뽑아준다.) 네, 여기 할인 적용해 드렸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다른 곳으로 휙 사라진다.)
츠키나가 레오:사람들 많아 부끄러워서 그래? 레오 씨라고 부르라니까. (사르륵 눈매를 접어 살살 눈웃음치며 말랑한 뺨을 달래듯 살살 어루만진다.) 응, 그럼 일단 보고 이것저것 시켜보자. (직원에게 작게 인사를 하며 표를 받아들고 스낵바 쪽으로 간다.)
스오우 츠카사:에, 엑...? (돌연 녹아버릴 듯 부드러워진 너의 언행에, 어쩔 줄 몰라하다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너를 따라 총총 스낵바로 간다...)
영화는 역시 뭔가를 먹으면서 봐 줘야 하는 법이죠.
갖가지 간식을 팔고 있는 스낵바입니다.
오리지널, 카라멜, 갈릭, 치즈... 팝콘 맛 종류도 다양한데,
츄러스에 프렛젤, 오징어 버터구이에 감자튀김까지 다른 간식도 많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도 커플 세트라는 이름을 달고 2인용 간식 세트가 판매되는 중입니다.
팝콘 라지 사이즈에 음료 두 잔의 구성이네요.
스오우 츠카사:(정신이 혼미한 듯 메뉴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곧 정신이 든 듯 눈을 빛내며 메뉴판을 보더니 너를 바라보았다.) Marvelous...♪ 맛있어 보이는 snack이 무척 많군요. 츠키나가... (아까 네가 한 말을 얼결에 곱씹지만, 그건 그저 연기였을 거라며 제 자신을 다잡아 보았다...) 씨도 뭔가 드시겠어요?
츠키나가 레오:(저를 부르는 호칭에 아쉬움을 뒤로한 채 메뉴판을 한번 쭈욱 둘러본다.) 난 아메리카노면 돼. (어버버한 반응이 귀여워 좀 더 놀리고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여전히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로 다정하게 너를 바라보며 고개를 기울인다.) 먹고 싶은게 많으면 종류별로 하나씩 시켜볼래? 츠카사.
스오우 츠카사:엣, 그걸로 충분하신가요? 나중에 배가 고플지도 모릅니다. (네가 고른 메뉴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렇게 말하다, 이어지는 말에 파드득 귓가가 붉어져선 너를 당황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아, 그... 그럴까요...? (지금 저를 이름으로 부른 게 맞나? 잘못 들은 거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손은 침착하게 움직여 카드를 꺼냈다.) ...그, 그럼 우선 제가 계산하고 오겠습니다! Americano는... 오늘 절 따라와 주신 데에 대한 답례라고 생각해 주세요. (그 말을 하면서는 살풋 웃다가, 이내 어지간히도 부끄러웠는지 계산대로 쪼르르 달려간다.)
츠키나가 레오:음~ 스오가 시킨거 조금씩 뺏어먹으면 괜찮지 않을까? (장난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응? 어딜 가려는 거야? 계산은 바로 여기서 하면 되는데.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너를 부드럽게 끌어당긴 채 모른척 샐쭉 웃어보인다.) 긴장했어? 영화가 많이 재밌어 보이긴 하는데, 그렇게 좋아하는지는 몰랐네.
스오우 츠카사:...엑, 그런 생각이셨나요? 확실히 종류별로 다 시키면 조금은 남을 것 같긴 하네요. 츠키나가 씨도 도와주시지 않으면. (푸슬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가, 곧 너에게 부드럽게 끌어당겨져 잔뜩 얼굴이 빨개진다... 부끄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기, 긴장 같은 건 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공부라든지, 집안에서의 교육을 받느라 이렇게 영화관에 놀러 나온 지 오래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긴장까지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 (괜히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너의 시선을 피했다.) ...그럼 주문하겠습니다?
민망한 기색이 목소리에 묻어있지만 츠카사는 꿋꿋하게 메뉴를 주문합니다.
쉴 새 없이 주문 메뉴가 이어지자 직원은 퍽 당황한 얼굴로 급하게 포스기를 찍습니다.
얼마쯤 기다리고 나면 직원이 팝콘과 콜라, 아메리카노, 프렛젤과 츄러스 등등...
온갖 간식이 모두 나옵니다.
간식을 받고 시간을 보니 대략 20분 정도의 시간이 남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던 두 사람은 영화관 게임 코너 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스티커 사진 기계를 발견합니다.
기계에 백 엔 짜리 세 개를 투입하면 사진 세 장이 찍히는 시스템이네요.
츠키나가 레오:스오, 저거 한번 찍어볼래? (영화가 시작하기 전 시간 때우기 좋아 보여 너를 콕콕 찔러본다.) 도련님이라 이런거 해본적 없으려나? 이런 것도 추억이니까- 한 번 찍어볼래?
스오우 츠카사:(어떻게 하면 모든 간식을 편하게 들고 다닐까 고민하던 차에, 네가 콕콕 찌르는 걸 느끼곤 돌아본다.) 으음, 이건 뭔가요? Sticker photo...? 사진이 sticker로 나오는 겁니까? (금세 흥미롭다는 듯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걸 해 본적 없는지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말씀대로 처음 보는 거네요. ...흥미로워 보이는데, 찍어보죠♪
츠키나가 레오:(잠시 간식을 내려두곤 너를 데리고 쪼르르 기계 안으로 들어간다.) 루카땅이 이런걸 좋아해서 가끔 같이 찍기도, (밝게 조잘거리던 얼굴이 금세 굳어진다.) ...했었거든. 그래서 조작법은 대충 알고 있어. (다시 표정을 갈무리하곤 부드럽게 웃어보인다.) 자, 여기 이 버튼을 누르면 5초 동안 여기 이 부분을 바라보고 있으면 돼.
스오우 츠카사:(너에게 이끌려 사진 부스 안으로 들어가선 주변을 신기하단 듯 휘 둘러보았다.) 내부는 이렇게 생겼군요. 뭔가 신선하네요...♪ (그대로 너의 설명을 듣다가, 루카라는 이름이 나오자 흠칫 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랬군요. 좋은 추억이었겠네요. (나지막이 그렇게 말하곤, 네 미소에 저도 다시 움직여 어색하게 카메라를 바라보고 섰다.) 이, 이렇게 서면 되는 겁니까?
츠키나가 레오:응, 그렇게! 잘하고 있네, 스오~ (어색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에 비죽 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삼키곤 동전을 넣고 카메라를 가리킨다.) 여기 잘 보고? 5, 4, 3, 2-
행운 또는 외모 판정 (^^)
츠키나가 레오:
외모
기준치:
90/45/18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스오우 츠카사:
외모
기준치:
70/35/14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찰칵! 기분 좋은 셔터 소리가 울립니다.
두 사람 다 흔들리지 않고 잘 나왔네요.
츠카사는 얼굴이 빨개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귀엽게 나왔습니다!
스오우 츠카사:자, 잠깐만요 츠키나가 씨?!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당신과 사진을 한참 번갈아 보았다...)
스오우 츠카사:츠, 츠카사는 Tomato가 아닙니다...! 그야 츠키나가 씨가 갑자기 멋대로 K, Kiss 같은 걸 하시니까 그런 게 아닙니까...! (억울하단 듯 뺨을 찌르는 손길을 받고 있다가, 이번엔 제가 먼저 타이머를 실행시켜 버린다.) 어, 어서 다음 사진을 찍죠! (3, 2, 1. 타이머의 숫자가 줄어들자 브이 포즈를 잡았다.)
츠키나가 레오:응...? 키스...?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한 사람처럼 덜그럭거린다.) 미안, 스오... (이렇게 순진한 애한테 내가 무슨... 떨떠름하게 너를 바라보다 급하게 자세를 잡는다.)
외모 판정 한번 더!
츠키나가 레오:
외모
기준치:
90/45/18
굴림:
8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스오우 츠카사:
외모
기준치:
70/35/14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브이! 아까보다는 평범한 포즈지만, 두 사람 다 잘 나왔습니다.
츠카사는 유독 훤칠하게 잘 나온 것 같아요.
츠키나가 레오:...이거 나 가져도 돼?
스오우 츠카사:네, 네? 저, 상관은 없습니다만 원래 sticker 사진은 한 사람밖에 못 갖는 건가요...? (뜬금없는 너의 말에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며 물었다.)
스오우 츠카사:아, 그... (네가 사진 속 제 얼굴을 엄지로 쓰는 모습에 다시금 정신이 혼미해진다. 이 사람은 정말...!) ...네, 마음에 드신다면... 가져가 주세요. (모기만한 소리로 그렇게 말하곤, 이번에도 저가 먼저 타이머를 꾹꾹 누른다.) 그럼... 이제 마지막이네요. 가겠습니다? (포즈 준비!)
츠키나가 레오:? (어딘가 떨떠름해 보이는 네 반응에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만 갸웃거린다.) 응? 어... 스오도 갖고 싶은거면 그냥 가져가도 괜찮은데... (미련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힐끔거리며 사진을 본다.) 아, 마지막. (무슨 포즈를 취해야할까 고민하다 그냥 정면을 향해 웃어보인다.)
스오우 츠카사:앗, 아뇨. 그게 아니라... (차마 민망해서 그렇다고는 말하지 못한 채, 미련이 뚝뚝 묻어나는 네 얼굴을 흘깃 바라보다가.) ...아뇨, 츠키나가 씨가 가져가 주세요. 마음에 드는 추억인 거잖아요. (웃으며, 이번엔 분명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타이머가 시작되자 이번엔 제 쪽에서 네게 팔짱 끼듯 붙어 브이를 한다.)
외모 판정 마지막!
츠키나가 레오:
외모
기준치:
90/45/18
굴림:
2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스오우 츠카사:
외모
기준치:
70/35/14
굴림:
99
판정결과:
실패
마지막 사진은... 언뜻 보기에는 잘 나온 것 같은데요.
그러나 자세히 보면 츠카사는 좀 흔들렸네요.
속도감이 굉장합니다.
츠키나가 레오: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찍힐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해본다.)
스오우 츠카사:Jesus Christ...! (망연자실한 얼굴이 되어서 사진 노려본다...) 크윽, 증명사진이나 가족사진을 찍을 때도 이런 일은 없었는데...! 억울합니다!
스오우 츠카사:이건... decoration인가요? (바뀐 화면을 보다, 너의 장식에 곧 푸슬 웃고 저도 펜을 집어든다.) 앗, 저는 토끼입니까? 그럼... (너에게 사자 귀와 꼬리를 달아준다!) 츠키나가 씨는 Lion이네요. '레오' 니까요. (그렇게 말하곤 웃으며 별이나 음표 모양 스티커를 구석구석 붙이기 시작한다.) 후후, 예쁜 것들이 많군요♪
츠키나가 레오:신기해? (딱 봐도 들뜬 것이 확연히 느껴지는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어린 아이처럼 소소한것 하나에도 즐거워하는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동생에게 종종 그러했던 것처럼 조금 익숙한 손길로 살며시 머리를 쓰담아준다.)
스오우 츠카사:네, 처음 해 보는 데다 흥미로운 것들이 가득해서요. 오늘 나오길 정말 잘한 것 같습니다. (상당히 즐거워 보이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다, 문득 너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지자 다시금 간질간질한 기분이 되어서. 민망했지만 이내 배시시 웃어보이고.)
앗, 슬슬 decoration 시간이 끝나는 것 같네요. 이대로 뽑을까요?
츠키나가 레오:(그런 네 모습이 누군가와 겹쳐보여 조금 흐리게 웃으며 천천히 손을 떼어낸다.) 응, 난 이대로 좋은 것 같아. 뽑고 얼른 갈까?
스오우 츠카사:(손을 천천히 떼어내는 너의 시선을 가만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웃어보이며 사진 출력 버튼을 누른다.) 네, perfect네요♪ 사진이 나오면 바로 영화관으로 가요.
우려와 달리 사진은 세 장면 묶음으로 두 장 출력됩니다.
두 사람 다 모든 사진을 가질 수 있겠네요.
레오와 츠카사는 곧 영화 시작 시간에 딱 맞추어 상영관을 찾아 들어갑니다.
CG와 연출이 상당히 좋은 SF 판타지 영화네요.
영화가 끝나면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갔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만족스럽게 영화의 관람을 마쳤습니다.
이성 1d3 회복
츠키나가 레오:
rolling 1d3
(
3
)
=
3
스오우 츠카사:흥미로운 영화였네요...♪ SF 판타지는 매력적인 장르였군요. 물리 숙제를 할 때에도 참고가 될 것 같아요.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며 들뜬 얼굴로 그렇게 말하다, 문득 제 손목시계를 슬 들여다본다.) 음... 츠키나가 씨, 혹시 괜찮으시다면 한 군데 더 들르고 싶은 곳이 있는데. 가 주시겠습니까?
츠키나가 레오: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도련님들은 이런거 안 좋아할까봐 걱정했거든. (네 말에 잠시 고민하듯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응, 괜찮아.
스오우 츠카사:도련님, 인가요... 뭐어, 세간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봤을 때는 그렇게 보인다는 소리도 종종 들었습니다. (끙 소리를 내다가, 그러나 이내 납득했단 표정으로 가볍게 웃어보인다.) 그래도 덕분에 재밌는 걸 접했습니다. 감사해요. (눈을 살풋 접으며 웃다가, 생각에 잠기는 너를 바라보았다. 혹여 제가 네게 무리를 시키는 것은 아닐지. 그렇지만 이런 말도 이미 부탁을 해 버린 뒤인 지금은 아무런 쓸모도 없을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혹시 일이 생기거나, 시간이 지체되면 먼저 돌아가 주셔도 괜찮으니까요.
츠키나가 레오:...응, 재밌었다니 다행이네.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 이해한다는 것처럼 저를 바라보는 너를 모른척 시선을 돌렸다. 만난지 얼마 안 된 녀석에게 섣불리 말을 꺼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문득 고개를 들다가도 그저 고개를 저어버린다. 아직 말한 것은 없다. 저 아이는 그저 루카가 장염때문에 입원해 있는 것으로 알고 있겠지. 쓴웃음을 삼키며 평소와 같이 장난스럽게 웃어보인다.) 누가보면 큰 일이라도 난줄 알겠어~ 걱정마. 하루 빼먹는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우리 루카땅은 천사라서~ 뭐든, 이해주거든... (마른 손으로 흉터 위를 습관적으로 쓸어내린다.) ...착하지, 우리 애.
스오우 츠카사:(시선이 제게서 빗겨가고, 어딘가 자신이 모르는 깊은 곳을 응시하는 것 같은 표정이 된 너. 그런 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당신이 어디를 보든, 저는 당신을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을 테니까. 줄곧, 그렇게 해 왔으니까.) ...그런가요? 그래도... (흉터를 쓸어내리며 하는 너의 말에 말끝이 흐려지고, 결국 저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어찌 됐든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어서 가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다 살며시 네게 손을 내밀었고.)
츠키나가 레오:아, (제 앞에 내밀어진 손에 조금 놀란듯 크게 떠진 눈을 몇 번 깜빡인다. 머뭇거리던 손이 조심스럽게 뻗어진다. 떨림 하나 없는 손이 네 손 위에 겹쳐진다.) 응, 어서 가자. (덮혀 가려진 흉터가 조금 간지럽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힘을 주어 단단히 마주 잡는다.)
뜨거운 츠카사의 체온을 느끼며 영화관을 벗어나 여름의 거리로 걸음을 내딛습니다.
츠카사의 안내에 따라 두 사람은 어느 외진 골목길에 접어듭니다.
주변을 살피면 양옆으로 붉은 벽돌이 고루 쌓여 있고,
그 표면을 담쟁이 넝쿨과 장미꽃이 똬리 틀고 있습니다.
레오로 말할 것 같으면 요 근처에 이런 길이 있었는지… 금시초문입니다.
이곳은 하루가 다르게 바삐 변화하는 도시입니다.
도로 위에는 어제 보지 못했던 차량이 오늘의 배기음을 터뜨리며 지나다니고,
몇 달 새에 하늘을 찌를듯 드높게 건축된 신설 빌딩이 세워지는 것이 예사인 곳.
으레 생기는 변화를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여야만 내일에 적응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이니까요.
번화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장소 하나가 고스란히 남겨진 듯한 풍경은 꽤 낯설지도 모릅니다.
점점 더 좁아지는 골목을 나아가다 보면 머지 않아 그 끝에 당도합니다.
두 사람의 발걸음은 귀퉁이에 세워진 다 낡은 악기상 앞에 머무릅니다.
쿰쿰한 나무 썩은내, 비릿한 풀냄새와 한층 짙어진 여름의 오존 냄새가 머리맡을 맴돕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흰 울타리가 빙 둘러쳐진 악기상.
기스 투성이 전면 유리창 너머로 갖가지 악기들이 모습을 뽐내고 있습니다.
레오가 무어라고 입을 열 새도 없이 츠카사는 악기상의 출입구 문을 열고 들어섭니다.
딸랑.
계절의 구색을 맞추듯 청명한 현관 벨소리가 귓전을 때립니다.
빛이 바랜 [카운터] 좌석에 앉아 있던 악기상의 주인은 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흘끗 확인하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합니다.
교복 차림새의 학생 두 명이 무언가를 살 것 처럼 보이지는 않았나 봐요.
목재 구조의 악기상 내부는 흐릿하나마 찝찔한 먼지 냄새가 납니다.
살피기에는 벽면 가득 들어찬 거대한 [책장]이 인상적이고,
악기상의 메인이라 할 수 있는 갖가지 [악기들]은 진열대 위에 놓여 있거나, 벽에 걸려있거나 합니다.
악기만큼은 애지중지 관리했는지 하나같이 먼지가 쌓이지 않은데다 광택이 돕니다.
츠카사는 무언가를 찾고 있는 눈치입니다.
악기들 사이를 서성이고 있습니다.
츠키나가 레오:...뭐 찾는 거라도 있어?
(힐끔 악기들을 살펴본다.)
스오우 츠카사:아, 네. 어떤 악기를 조금... (너에게 살며시 웃어보이곤.) 츠키나가 씨는 잠시 둘러보고 계시겠어요? 금방 찾아보겠습니다.
현악기, 금관악기, 목관악기, 타악기… 타현악기인 피아노까지.
이 허름한 악기상에 어울리지 않을만큼 아름답고 반짝이는 악기들이 그 종류를 가리지 않고 자리합니다.
창측 한 켠에는 들여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진열된 다른 악기들보다도 아름답고 깨끗한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습니다.
츠키나가 레오:
안단테 Roll
기준치:
100/50/20
굴림:
8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응, 그럼 나도... (멈춰선 것처럼 피아노를 잠시간 바라보다 몸을 돌려 책장 쪽으로 다가간다.)
셀 수 없이 많은 악보집들이 책장 가득 어깨과 어깨를 맞댄 채 꽂혀 있습니다.
어느 한 권 빠짐 없이 세월의 흔적이 누렇게 껴 있습니다.
걷어내지 못한 먼지가 얕게 쌓여 있기도 하고,
모서리가 찢어진 악보집이 보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종이는 관리하기 힘드니까요.
츠키나가 레오:
안단테 Roll
기준치:
100/50/20
굴림:
1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조금 그리움이 묻어날 정도로 천천히 악보집을 손끝으로 훑어보다 멈칫, 손을 아래로 떨어트린다.) 아... (파드득 놀라 카운터 쪽으로 다가간다.) 그냥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야겠네.
팔꿈치를 올린채 턱을 괴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악기상 주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카운터 위에는 낡아빠진 [아날로그 시계]와 [라디오]가 올라와 있고,
그 옆에 읽다만 [신문]이 놓여 있네요.
츠키나가 레오:(아날로그 시계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요즘도 이런 시계를 쓰는 사람이 있구나.
골동품 가게에서 주워올 법한 연식의 오래된 아날로그 시계입니다.
시계약은 꼬박꼬박 잘 갈아주고 있는 모양인지,
세 개의 침은 별 무리없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츠키나가 레오:(곧 흥미를 잃고 라디오를 툭툭 건드려본다.)
척 보기에도 만들어진지 기십 년은 되어 보이는 오래된 라디오입니다.
노이즈 낀 저음질의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츠키나가 레오:
안단테 Roll
기준치:
100/50/20
굴림:
84
판정결과:
보통 성공
(투둑, 툭, 토독, 저도 모르게 그 음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다 손을 꽉 말아쥔다.) ...난 피아노 싫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되뇌이듯 한번 속삭이곤 신문을 힐끔 쳐다본다.)
잘 알려진 신문사의 주간 신문입니다만,
…자세히 살펴보면 최신호가 아니라 몇 주 전에 발행된 신문입니다.
악기상의 신문 기사
신문을 읽은 레오, 지능 판정
츠키나가 레오: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기사 날짜를 재차 살피니 이 신문은 3주 전에 인쇄된 호입니다.
'지난주'가 덧붙어 있는 것을 미루어 유추하건대...
그 매혹적이라는 B씨의 연주는 대략 한 달 전에 콘서트로 진행되었던 모양이에요.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듭니다.
혹은 위화감이거나 어떤 감이 작용하며 드는 느낌일지도 모르고요.
한 달 전이라면…
지금 유행 중인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최초로 전파되었던 시기와 맞아 떨어집니다.
게다가 콘서트가 있었던 예술의 전당 위치가 야마모리 시라고요?
야마모리 시라면 분명…
츠키나가 레오:...전염병이 시작된 곳, 아니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당신이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즈음 츠카사가 곁으로 다가옵니다.
무언가 석연찮은 듯, 혹은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입니다.
스오우 츠카사:이제 돌아갈까요? 츠키나가 씨. (네 곁에 다가선다.) 으음... 아무래도 제가 찾던 악기가 지금은 없는 것 같군요. 팔리지는 않았을 텐데, 이상하네요... 나중에 다시 와서 봐야겠습니다.
츠키나가 레오:딱 원해서 구하는 거라도 있는 거야? 흠, 뭐 상관없지만. 그럼 나중에 다시 오는걸로 하고, 가자.
스오우 츠카사:으음, 네. 그렇지만 오늘은 없으니, 나중에 다시 와서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고개를 끄덕이곤 악기상을 나선다.)
악기상 문을 열고 나오니 어느덧 땅거미가 지고 있는 시간입니다.
짙은 땅거미가 아스팔트와 돌바닥을 기기 시작한 저녁과 밤,
그 사이의 애매한 시간.
소등되어 있던 가로등의 불빛이 하나씩 점등하며 온전히 어두워지진 않은 길을 비춥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창궐하기 시작한 이후 도시는 저녁시간대 특유의 활기를 잃은지 오랩니다.
악기상에서 나온 두 사람은 귀갓길에 광장에 놓인 낡은 피아노 한 대를 발견하게 됩니다.
츠카사는 마치 홀린 사람처럼 피아노를 향해 다가섭니다.
낡디 낡아 의자에 앉는 사람도, 건반에 손을 대는 사람도,
하다못해 눈길을 주는 사람도 없이 분수대 맞은 편에 그저 장식물처럼 배치되어 있는 나무 피아노입니다.
츠카사는 손끝으로 건반을 쓸어내리며 말합니다.
스오우 츠카사:(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고, 외딴 섬에 홀로 서 있는 듯한 피아노. 조용한 저녁의 공기 사이로 그 옆에 다가가 건반을 매만졌다. 아릿한 미소를 입에 머금고.) ...이 피아노가 여기 있었군요.
정신력 판정
츠키나가 레오:
정신
기준치:
65/32/13
굴림:
3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세상의 오류와 같은 현상.
다시 한 번 어쩐지 모를 데자뷰 현상에 사로잡힙니다.
이 장면, 어디선가 분명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꿈에서일까요?
SANc 0/1
츠키나가 레오:
SAN Roll
기준치:
66/33/13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스오우 츠카사:(어렴풋이 미소지으며 피아노를 몇 번 쓸어보다, 문득 자연스럽게 피아노 앞의 의자에 앉았다.) 저, 여기서 한 곡만 연주하고 가도 괜찮을까요? ...이 피아노거든요, 제가 찾던 악기가.
츠키나가 레오:...그렇구나. (낡아보이는 피아노를 가만히 내려보다 느리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래서 그렇게 확신했던 거야? 누가 사갔을 리는 없다고. (작게 웃으며 건반 위에 올려진 손을 가만히 바라본다.)
스오우 츠카사:네. (고개를 끄덕이는 너를, 피아노 의자에 앉은 채 바라보곤.) 후후, 아니요. 실은 저도 이런 데에 있을 줄은 몰랐지만... 그 악기상에 오랫동안 진열되어 있는 걸 봤거든요. 최근에 시에서 대여라도 해 간 모양입니다. (눈을 도륵 굴리며 그렇게 말했다가,) ...그럼, 한 곡 들어주시겠어요? 아까는 조금 힘이 들어가 버렸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해 보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널 향해 마주웃는다.)
츠키나가 레오:(네 웃음에 따라 입꼬리가 말려올라간다.) ...응, 얼마든지.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옆자리에 걸터앉아 가만히 눈을 감는다.)
스오우 츠카사:(옆자리에 걸터앉는 너를 힐끗 보고 작게 웃은 후,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내 녹음 버튼을 누르고는 피아노 위에 올려두었다. 부드럽게 피아노 위에 손을 얹고, 악보도 보지 않고 손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츠카사가 연주를 시작하면 잰걸음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사람들의 이목이 광장의 피아노와 츠카사에게 집중됩니다.
휴대폰을 들어 그가 연주하는 것을 촬영하거나 동영상으로 남기는 행인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보입니다.
그런 츠카사의 연주를 바라보는 레오의 심정은 어떤가요?
레오도 언젠가 박수 갈채를 받으며 무대에 올랐던 적이 있을 터입니다.
해가 온전히 졌는데도 목구멍은 뜨겁고 살갗은 익어버릴 듯 따갑습니다.
가로등의 적적한 불빛이 마치 스포트라이트처럼 광장을 밝힙니다.
그제야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허름하고 볼품 없던 낡아 빠진 피아노일지라도 그 정도의 연약한 빛을 반사할 수는 있는 모양입니다…
스오우 츠카사:(제법 빠르게, 그렇지만 부드럽게. 혹은 제법 강하게 음을 짚어가는 손길은 가볍다. 여름의 탓일까, 어쩐지 조금 달뜬 기분이 되어 건반을 눌러가고. 그 선율 사이로 문득, 제 곁에 걸터앉아 있을 당신에게로 잠시 시선을 던졌다. 피아노가 싫다던 당신. 자신의 연주를 미워할 수 없다던 당신. 자신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던 당신. 다시 건반으로 옮겨간 시선에는 아득한 미소가 서려 있다. 그런 당신에게 전해줄 수 있는 것이 음악뿐이라는 사실이, 다행이 될 수 있기를. 그렇게 생각하며, 그저 너의 마음에 다가앉기 위한 연주를. 언젠가 그 등을 쫓던 시절이 제게도 있었으니까... 이제는 자신이, 자신의 피아노로.)
츠키나가 레오:
안단테 Roll
기준치:
100/50/20
굴림:
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복잡한 표정으로 가만히 피아노를 내려본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즐겁게 피아노를 칠 수 있는 거야? 입 밖으로 새어나오려는 말을 꾸역꾸역 삼켜낸다. 그러는 난? 나는, 난 어떻게 피아노를 쳤더라? 의문만을 가득 떠안는다. 분명 즐겁게 피아노를 쳤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였지? 피아노가 즐겁지 않아진건. 자조적으로 웃으며 건반 위를 살살 보듬어본다. 익숙한 감각. 많이 쉬었음에도 기이할 정도로 익숙한... 건반 위에 올려졌던 손이 차마 힘주어 누르지 못하고, 얼굴이 일그러진다. 루카... 미안해. 괴로운 표정을 숨기려 얼굴을 감싸쥔다.)
곡을 완주한 츠카사는 녹음 종료 버튼을 누르곤 녹음기를 도로 주머니에 넣습니다.
그리고 곁에 앉아있는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스오우 츠카사:...츠키나가 씨.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있는 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짐작할 수 없는 슬픔을 매만지는 것처럼, 너의 손 위에 제 한쪽 손을 가만히 포개어 보았고.) 아직도, 피아노는 치고 싶지 않으신가요?
(To GM)rolling 1d20+10
(
15
)
+10
=
25
츠키나가 레오:난, 난... (사정없이 흔들리는 눈이 올곧은 보랏빛 눈동자를 마주한다.) 피아노가, 싫어... 정말, 정말 싫어... (아이처럼 그저 같은 말만 반복하던 입술이 딱 다물려진다. 나는... 제 손 위에 겹쳐진 손의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어째서인지 눈물이 핑 돌만큼 따뜻하다.) 피아노가...... 싫어야, 하는데... (이제는 흐릿해진 흉터가 타는 것처럼 욱신거리다가도 어쩐지 간지럽기도 하다.) 싫어해야 하는데...
스오우 츠카사:(얼굴을 가리다가 이내 허벅지 위로 스르르 내려간 너의 손을 따라가서, 제 손의 온기를 그대로 줄곧 전하듯 손을 겹치고 있었다.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여름밤의 공기. 그 속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마주앉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닿을 것 같은 틈을 사이에 두고. 너의 말을 듣고 눈앞의 피아노로 시선을 옮겨, 아스라이 미소지으며 이전의 그 질문을 다시금.) ...왜, 피아노를 싫어하시나요?
츠키나가 레오:루카땅이 그렇게 된건 피아노,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 때문이니까... (버거운듯 막혀오는 숨을 겨우 삼키고 괴로운 얼굴로 미간을 좁힌다.) 바보의 바보같은 이야기야. 조금... 지루할 수도 있어. 그래도 듣고 싶은 거야? (희미하게 웃으며 너를 바라본다. 체념일지도 모를 감정들이 얼굴에 덕지덕지 묻어난다.)
스오우 츠카사:... (너의 말을 숨죽여 듣고 있다가, 저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곤 고개를 돌린다. 맞닿은 시선, 그 사이로 흐르는 실바람.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이고, 여전히 여느 때와 같은 미소로.) 네. 어떤 바보 같은 이야기라도 좋습니다.
츠키나가 레오:...너는 참, 이상하네. (울것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힘겹게 웃어보인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듯.) 스오, 너랑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져. 내가 피아노를 싫어했던 것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져... 만난지도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이런 이야기까지 하게 되어버리다니. (늘 그랬듯이 장난스럽게, 해사하게 웃어보인다.) 좋아, 듣고 도망치거나 하지나 마.
안단테 Roll
기준치:
100/50/20
굴림:
4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스오우 츠카사:그럴 리가요. ...도망치지 않습니다. (그 정도의 각오가 없었다면, ...일그러진 얼굴로 힘겹게 웃어보이는 너에게 마주웃곤, 네 손에 포갠 제 손에 가볍게 힘을 실었다.)
츠키나가 레오:난...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가 정말 좋았어. 사실 이건 좀 자랑이지만, 웬만한 악기같은건 곧잘 연주할 수 있어서 천재라고 불려왔었거든. 천재, 천재. (입안에 굴려보듯 몇번 작게 발음해본다.) 난 이 말이 칭찬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었어. 정말 어리석었지? 천재... 그 말에 담겨있는 악의는 상당하더라. 어째서인지 모르겠어... 난 그저, 피아노가 좋았을 뿐인데. 피아노를 치고 있으면 아무 걱정거리도 들지 않거든.
(헤프게 웃어보인다.) 주변에 친구들이 많은줄 알고 있었지. 아닌데... 천재는 외톨이라던 말을 코웃음쳤는데, 그 녀석들은 날 비웃었었겠지? 천재라는 이름의, 하늘의 재앙이었으니까. 어째서였을까... 나도 남들만큼 열심히 피아노를 쳤는데... 하루종일 피아노를 붙들고 살았거든. 그런데 남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봐. 내가 그저 천재니까, 별다른 노력 없이도 잘하는듯 보였나봐. 그게 아니꼬왔던 거겠지.
함께 치는 피아노는 즐거웠어. 그게 아니게 되었더라도 날 응원해주는 루카땅이 있으니까... 즐겁다고 착각해버렸어. 매일매일 피아노에 빠져서, 우리 루카가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 몰랐고, 신경써주지도 못했으니까. 난 정말, 나쁜 오빠야...
그 녀석들한테 나는 아니꼬왔을지 몰라도, 어쨌든 난 천재니까. 학교의 인재니까. 미래 피아노계의 유망주였고... 그런 나를 직접 건드리기엔 겁이 났던 거였지. 바보같은 놈들. 그래서 눈에 들어왔던게 만만했던 루카였나봐.
(최대한 담담한 말투를 가장하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보지만 목소리가 크게 떨려온다.) 피아노에 미쳐있는 오빠 탓에 괴롭힘 당하고 있다고, 말도 못하고, 그렇게, 혼자서 끙끙 앓다가...
어느날, 루카가...... 칼을 들고 자살시도를 하려던걸, 내가 하교하고 집에 돌아온 뒤에 발견했어.
스오우 츠카사:...! (가만히 귀를 기울여 이야기를 듣고 있다, 들려오는 심상치 않은 말에 퍼뜩 고개를 들어 너를 바라보았다.)
츠키나가 레오:급하게 말려보려고 맨몸으로 가까이 다가갔거든. 그 과정에서 작게 몸부림이 있었고, (흐릿한 흉터가 남은 손바닥을 펴서 네 눈앞에 보여준다.) 이렇게.
사실 나... 손 멀쩡해. (어색하게 웃어보인다.) 그 와중에도 난, 피아노가 소중했었나봐. 나도 모르게 자기보호를 한걸까, 아슬아슬하게 신경을 비켜가서 다행히도 피아노는 계속 칠 수 있었어. 루카는 바로... 병원으로 입원했고. 출혈이 심했다나, 좀 더 늦었으면 큰일날뻔 했대.
(손이 건반 위를 유려하게 움직인다. 조금 쉬었던 탓에 삐그덕거리면서도 익숙하게 건반을 눌러 음을 내어본다.) 그런데 다음날 학교에 가보니 다들 그러더라고 '재수없었는데 잘됐다, 이참에 피아노 그만 안 두나?' 머릿속이 하얘졌어. 우리가, 내가 대체 뭘 했다고...
이렇게 미움받으면서까지 피아노를 칠 이유가 있을까? 소중한 루카를 그렇게 만든 피아노를... 계속 쳐야할까. 사실 좀 외로웠던 걸지도 몰라. (힘겹게 입꼬리를 끌어 웃으며) 그래도 조금쯤은 남아있었을지도 몰라. 피아노를 치고 싶은 마음...
하지만 루카가 그러더라. 피아노, 그만두지 말라고. 그 말을 듣자마자 내가 너무 혐오스러워졌어. 이렇게 착한 우리 루카를... (입술을 꾹 눌러 닫는다.) 난, 피아노를 싫어해야 해.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는거 있지. (씁쓸하게 웃어보인다.) 겨우 마음 접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스오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아무런 고민 없이 즐겁게 피아노를 치던 때가 떠올라서... 스오와 함께 돌아다니고 있으면, 그리운 기억들도 가끔 떠올라서.
츠키나가 레오:(순수한 기쁨만이 남은 얼굴로 해사하게 웃는다.) ...고마워. 이렇게라도 떠오르게 해줘서. 그동안 잊고 살고 있었어. 피아노를 치는게 얼마나 즐거웠는지 말이야.
정말 고마워, 츠카사.
안단테 Roll
기준치:
100/50/20
굴림:
1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스오우 츠카사:... ... (너의 말을 끝까지 듣는 동안, 어쩐지 눈앞이 아득해지는 기분에 몇 번이나 입술을 잘근 깨물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라는 말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걸까. 고맙다고 말하는 당신은 지금 어떤 각오를 다진 걸까. 온갖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에 섞였지만, 시선은 똑바로 눈앞의 건반을 응시하곤.)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으신가요? 피아노.
츠키나가 레오:...아니, 이제 그만 둘거야. 미련없이 후련해졌거든. (미련이 남은 눈길로 건반 위를 조심스럽게 새어본다.)
스오우 츠카사:...거짓말쟁이. (힐끗 너에게 시선을 돌려, 그렇게 말하며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가볍게 웃었다.) 그거 아시나요? 츠키나가 씨. ...당신이 제게 이야기하시는 동안, 피아노를 싫어한다는 말은 단 한 번도 하신 적이 없다는 거. 싫어해야 한다고 하셨지, 싫어한다고 말하신 적은 없다는 거. (다시 눈앞의 피아노를 나란히 응시했다.) 있죠. 이건 어쩌면 주제넘은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루카 씨는, 아마 츠키나가 씨가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시길 바라고 있을 거예요. (조금 망설였지만, 그럼에도 제법 확신에 찬 말을 기꺼이 뱉었다.) 소중한 오라버니인 당신의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즐겁게 피아노를 치는 당신의 그 모습을 지키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니까, 깨어나서도 그렇게 말하셨던 게 아닐까요. 그야 당신의 연주는, 듣는 사람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는걸요. ...그걸,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미소를 머금은 채 잠시 눈을 감아보았다.) 천재가 받는 시선이라는 건, 미숙한 저로서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감히 당신의 심정을 이해한다고도 말씀드릴 수 없지만. ... (다른 쪽 손을 말아 주먹을 꾹 쥐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연주가잖아요, 츠키나가 씨. 자신의 연주를 바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기꺼이 그 바람에 보답할 수 있는 연주를 들려줄 운명을 가진... 당신은, 그렇게 이 현재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이 아닙니까. (어쩐지 저릿한 미소를 짓고, 천천히 당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누구에게나, 행복해질 수 있는 권리는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슬퍼도, 괴롭더라도. 마음이 무너질 것 같더라도... 이를 악물고 피아노를 쳐 주세요. 당신이 사랑하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지, 전하고 싶은 마음이 무엇인지를 잊지 말아주세요. 그것이 설령 흉하게 일그러진 욕망일지라도, 다시 행복해져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까. 그런 발버둥이라도 찬란하다고 말해줄 사람이, 아직 있으니까. (어딘가 일렁이는 시선으로, 너를 잔잔히 마주보았다.) ...그리고 음악은 그런 마음을 전해줄 수 있는 언어니까요. 츠키나가 씨도 잘 아시듯이.
츠키나가 레오:
안단테 Roll
기준치:
100/50/20
굴림:
1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있을까? 단 한명이라도... 내 연주를, 내가 연주하길 바라는 사람... (자신없는 표정으로 건반 위를 가만히 내려본다. 늘 가깝게만 느껴졌던 거리가 한참이나 멀게 느껴진다.) ...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피아노를,
칠 수 있을까?
(얼마나 바보같은 질문인지 알면서도, 무언가를 확인해보고 싶은 듯 끊임없이, 너에게 물음을 던진다. 간절함을 담아.)
...내가 다시 피아노를 칠 수 있을까?
스오우 츠카사:... (어딘가 위축된 듯 건반을 내려다보는 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전에 네가 그랬던 것처럼. 아릿한 미소를 머금고 천천히 손을 들어 네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마치 피아노의 건반을 매만지듯이. 더없이 소중한 것을 바라보는 그 무언가의 시선으로.) 그럼요. 분명 있습니다, 당신의 연주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고개를 작게 까딱이며, 말갛게 빛나는 눈동자로.) 물론이죠. 피아노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당신은 언제든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연주가니까요.
츠키나가 레오:...스오는 정말 신기하네. 너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해버려서, 어째서인지 전부 맞는 말 같다고 생각하게 되어버려. (조금 후련한 얼굴로 편안하게, 다정하게 웃어보인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스오 말대로 난 연주가니까. 예술가는 관객이 하나 뿐이어도 최선을 다해야하는 법.
스오우 츠카사:...후후, 그런가요? 당치도 않습니다. 그렇다 해도 저는 아직 미숙한 인간일 뿐인걸요. (후련해진 듯한 너의 얼굴을, 조금 안도한 듯 잔잔한 미소로 마주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감사해요. (스스로를 다시 연주가라고 칭하기 시작한 너의 말에 눈을 접으며, 기쁜 듯 미소지으며 의자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슬슬 돌아갈까요?
츠키나가 레오:응, 어서 가자.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더 있다간 정말 어두워질테고. 해가 지면 집 돌아가기 더 힘들어지잖아?
스오우 츠카사:네, 츠키나가 씨도 바쁘실 테니까요. (피아노 앞을 벗어나 걸음을 옮기다, 문득 뒤돌아서 가자는 듯 손을 내밀고.) ...오늘, 즐거웠습니다.
츠키나가 레오:...나도. (손을 마주 겹쳐 세게 잡는다.) 즐거웠어.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습니다.
여름밤의 바람이 묘하게 미적지근한 탓이었을까요.
입 안이 달큰하게 말라갑니다.
갈증이 나는 것만 같아요.
그저 목마름에, 아니면 타들어가는 듯한 또 다른 무언가에...
스오우 츠카사:...그럼, 내일 학교에서 봬요. 츠키나가 씨.
갈림길에 다다르면 츠카사는 인사를 잊지 않습니다.
-
그로부터 며칠 뒤 아침입니다.
숨통을 불사르는 듯한 무더위와 함께 잠에서 깨어나면 휴대폰에 맞춰두었던 알람이 레오를 보채고 있습니다.
삐비비빅. 삐비비빅. 삐비비빅.
정신 사나운 벨소리는 한참이고 이어집니다.
오전 댓바람부터 머리가 띵한 것이…
밤새 열대야에 시달렸는지도 모릅니다.
등교 준비를 끝마치고 집 바깥으로 나서기 직전,
레오는 끄지 않은 채로 잊고 있었던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소리를 듣게 됩니다.
퍽 익숙한 아나운서의 목소리네요.
정체불명의 전염성 질병에 대한 속보를 다루기 위해 신설 편성되었다던 그 코너임이 분명합니다.
듣기 판정
츠키나가 레오: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2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나운서의 말이 선명히 귀에 들어옵니다.
아나운서:…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정체불명의 전염성 열병에 감염된 환자의 수가 전세계 인구의 25%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시민들의 불안감은 날로 달로 급증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최근 전세계 곳곳에서 공통적인 기현상이 발생, 목격되고 있습니다.
증언은 일체 미열에 시달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비롯되었는데요, 환자들은 하나같이 여름철의 짙은 오존 냄새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밤 하늘에 별들이 수도 없이 많이 떠있는 것이 기이하다.'는 말을 되풀이 하고 있다고 합니다.
모 대학병원 의료진은 질병 감염에 따른 환각 증세의 가능성을… 다음 속보입니다…
어딘가 심상치 않은 속보 보도가 끝나면 레오도 천천히 학교로 향합니다.
학교로 향하면 츠카사의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늘 레오보다 일찍 등교하던 츠카사였는데 말이죠.
어딘가 의아합니다.
오늘은 조금 여유롭게 등교하려나?
안일하게 앉아있어 보지만…
조례 시간이 끝날 때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조금 부자연스럽지 않나요?
츠키나가 레오:(조금 불안한 얼굴로 급하게 몸을 일으켜 음악실 쪽으로 가본다.)
한달음에 5층의 음악실로 올라옵니다.
늘 조금의 틈을 남기고 열려 있던 음악실 문은 굳게 잠겨 있습니다.
안에서도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군요.
츠키나가 레오:(잠겨있는 문을 몇 번 흔들어보다 작게 한숨을 쉰다.) 그냥 늦잠 잔거려나... 여기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면 오겠지.
서늘한 복도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기다려 보지만...
등교한 학생들이 왁자지껄한 소리를 내며 대부분 교실 안에 들어갈 때까지도 츠카사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는 수 없이 교실로 돌아가 보면, 담임 선생님이 또 지각이냐며 금방이라도 호통칠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미리 책상에 두고 간 레오의 가방을 보고서야 지각이 아닌 것을 믿어주는 눈치입니다.
A반 선생님:크흠, 그럼 조례 시작한다. 먼저, 학교 끝나면 괜한 데 싸돌아다니지 말고 바로 집 들어가는 거 알고 있지? 스오우도 오늘 전염성 열병으로 병결이다. 다들 조심들 해.
츠키나가 레오:...
그러고 보니 두 반이 묶인 뒤로부터 서넛의 아이들이 병결 처리 되었습니다.
메꿔두었던 책상은 다시금 주인을 잃고 방치되길 반복합니다.
선생님께 츠카사의 병결 이유를 듣게 된 레오는 자꾸만 신경이 쓰이고 가슴이 조일 듯 답답해집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지난 며칠간 당신과 츠카사는 질릴만치 붙어 다니며 시간을 공유했습니다.
그래서일지도 몰라요.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설명할 거예요?
...
하교를 알리는 묵직한 종례음과 함께,
번쩍!
마치 스위치를 올리듯 분산되어 있던 정신이 한 자리에서 맞붙었습니다.
뒤늦게 주변을 둘러보면 책가방을 싼 아이들이 교실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느 틈에 종례가 이루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루종일 좀처럼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혹은 다른 생각을 했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거나요.
학교가 파했으니 집으로 귀가해야겠죠.
늑장을 부리고 있노라면,
"빨리 나가, 문 잠글 거야!"
오늘의 주번인 동급생이 톡 쏘아붙입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레오는 교실 바깥으로 나가기 직전,
어쩐지 모를 기묘한 이끌림에 힘입어 츠카사의 책상 쪽으로 시선을 기울입니다.
때마침 덜 닫힌 창문 가장자리에 불어온 오후의 설익은 바람에 가슴이 뻐근해졌습니다.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은 건조한 1인용의 책걸상.
비어 있는 가방 걸이, 사물함 아래 가지런히 모여있는 교과서…
가장자리에 [A반, 스오우 츠카사]라고 적혀있는 코팅된 시간표까지.
기스 하나 남아 있지 않은 책상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전에 없던 기이한 감각마저 솟아나는 것입니다.
어제는 분명 이 자리에 책상 주인이 앉아 있었는데, 오늘은 하루종일 비어 있었습니다.
그 덧없는 사실이 어쩐지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지던 그 때.
관찰 판정
츠키나가 레오: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31
판정결과:
보통 성공
널빤지처럼 납작하고 어두운 책상 사물함 속,
켜켜이 정돈된 교과서 사이로부터 빼꼼 튀어나와 있는 찢어진 작은 종잇조각을 발견합니다.
지능 판정
츠키나가 레오: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6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며칠 전 물리 시간에 교과서 위에 올라왔던 츠카사의 쪽지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엉성하게 찢겨져 나가 있었던 그 쪽지를 말이죠.
어쩌면 종잇조각도 그와 비슷한 게 아닐까요?
잘 닦인 도자기처럼 맨질거리는 종이를 손에 쥔 레오는 전에 없던 확신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이 종이는 마치 단서처럼,
단조롭고 평화롭기 짝이 없는 교실의 풍경 속 우뚝 솟아난 돌부리처럼 당신의 눈에 걸리고 말았으니까.
마치 결국에는 이 쪽지를 발견할 줄 알았다는 것처럼 그 자리에 놓여 있었으니까.
그래서 당신은 기꺼이 걸려 넘어져 버리고 말았으니까.
츠키나가 레오:(급하게 종이를 빼서 펼쳐본다.)
어떤 위치를 가리키는 주소입니다.
눈에 익은 글씨체만으로도 머리통에 자연스레 그려지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이 장소는 의심할 여지 없이 며칠 전 츠카사와 함께 방문했던 그 악기상이 틀림 없습니다.
츠키나가 레오:(주소를 다시 한번 살피려 종이를 본다.)
쪽지의 귀퉁이를 살펴보자 추가적인 메모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P.S.
츠키나가 레오:(잠시 고민하다 주머니를 한번 꽉 쥐곤 다시 뛰쳐나간다!)
끊임없이 기억을 더듬거나 헤매다보면 레오는 일전에 함께 방문했던 악기상 앞에 도달합니다.
악기상 출입구에는 희끄무레하게 바래어 페인트칠이 벗겨진 '임시 휴업' 팻말이 걸려 있습니다.
레오는 새파란 싹이 이름 모를 들꽃이나 잡초들과 뒤섞여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울타리 근처를 서성입니다.
관찰 판정
츠키나가 레오: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미련을 떨치지 못한 당신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악기상 바깥쪽의 자그맣게 무너진 울타리입니다.
그 사이로 어떤 계절의 매미 우는 소리가 이어집니다.
좁다란 공간은 마치 언젠가의 비밀스러운 길이 닦였다가 무산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비밀의 장소로 인도하는 양 샛길을 타고 악기상 건물 외벽의 바깥 쪽을 타고 둘러 이동하다 보면,
레오는 나무가 부자연스럽게 우거진 공터를 발견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풀벌레 우는 소리만 선명합니다.
이곳에 사람의 흔적은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만… 메마른 흙바닥의 정가운데 뻥 뚫린 싱크홀이 나 있는 것만큼은 예삿일이 아닌 것 같군요.
츠키나가 레오:스오, 어딨는 거야... 환자면 환자답게 병원이나 집에 있어야지. (만나면 잔뜩 혼내주겠단 생각을 하며 주변을 더 둘러본다.)
주변에는 달리 눈에 띄는 게 없지만,
구멍의 가장자리는 마치 녹은 것처럼 보이며, 비정상적으로 일렁이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존재하는 웜홀이라는 미지의 공간이 발치 아래 투영된 듯 합니다.
SANc 1/1d3
츠키나가 레오:
SAN Roll
기준치:
66/33/13
굴림:
69
판정결과:
실패
rolling 1d3
(
3
)
=
3
38도를 웃도는 축축한 여름임에도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레오는 유사 이전의 세상에 인간이 최초로 빚어졌을 당시 하나의 재료처럼,
장기 곳곳에 새겨져 있었던 본능으로 말미암아 어떤 메시지를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구멍에 뛰어들어야 해!
당신은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어쩌면 결국 이곳에 다다르기 위해 스스로 모르는 사이 오래도록 방황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구덩이를 살피면 마치 하늘을 반사한 물이라도 투영하듯 희미한 빛이 텅 빈 공간을 떠돌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깊어 보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근방에선 강렬한 여름의 오존 냄새가 풍깁니다.
비릿하기도 하면서 싱그럽기도 한 특유의…
츠키나가 레오:...응, 이런거 안 무서워. (자신에게 말하듯 작게 중얼거린 뒤 주머니에 있던 명찰을 꺼내 놓치지 않게 꽉 쥔 채로 입술을 꽉 짓씹는다.) 스오에겐 정말, 들을 말이 많네. (바람빠지듯 웃으며 곧장 구멍으로 뛰어든다.)
모든 준비를 끝마친 레오가 구멍 속으로 몸을 내던집니다.
찰나에 당신은 온 몸을 거스를듯 피부를 긁어대는 어떤 비인간적인 손길을 느낍니다.
전에 느껴본 적 없던 외계의 에너지가 강압적으로 몸을 잡아 당기는 듯한 감각이었습니다.
...
…깜빡.
깜빡, 깜빡.
소용돌이치는 왜곡 속을 맨발로 건너온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맞게 도착한 걸까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면 당신은 꽤 깊은 구덩이 안에 있습니다.
깊은 구멍 안에 머물고 있는 탓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꼭 천장같은 푸른 색의 하늘이 원형으로 오려져 있습니다.
구멍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오르기 판정, 또는 어려운 난이도의 근력 롤을 굴립니다.
츠키나가 레오:
근력
기준치:
80/40/16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레오는 사방이 꽉 막혀있던 구멍을 아래에서 위로 기어 빠져나오는데 성공합니다.
근처를 살피면 구덩이에 뛰어들기 전에 보았던 그 공터입니다.
장소는 그대로인데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사뭇 다릅니다.
이리저리 우거져있던 나무가 바싹 말라 타고 남은 잿더미처럼 바닥을 장악하고 있고,
맞은 편에 보이는 악기상의 벽면은 부식되어 이질적인 감상을 더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전혀 관리되지 않은 것 처럼 보이는군요.
공터에서 빠져나오면 악기상 입구에 다다릅니다.
길게 뻗은 아스팔트 도로나 굴곡진 모퉁이를 돌아보아도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발견할 수 없습니다.
공간 자체가 마치 노이즈 낀 흑백 필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길로, 어떤 장소로 향하든 일말의 생명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저 전깃줄 위에 앉아 지저귀는 새들의 목소리나,
나무에 달라붙어 노래하는 매미의 우짖음만이 공허한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츠키나가 레오:...여긴 대체 어디지? (낯선 풍경에 잠시 멈칫 하다가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본다.)
주변을 둘러보면 눈앞에 있는 건 악기상의 입구입니다.
녹슨 초인종이 달린 문은 걸쇠가 고장나 살짝 열려 있습니다.
직전에 보았던 '임시 휴업' 팻말은 문간에 그대로 걸려 있습니다.
'임시', '휴업', 하고 반으로 쪼개져 덜렁거리는 탓에 다소 음산한 기운을 더하고 있습니다.
닦지 않아 희뿌연 통유리 너머로 진열된 악기는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다 낡아가는 [피아노] 한 대만이 전시되어 있을 따름입니다.
츠키나가 레오:... (머뭇거리며 피아노 쪽으로 다가간다.)
지능 또는 관찰 판정
츠키나가 레오:
관찰력
기준치:
60/30/12
굴림:
1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어쩐지 눈에 익은 피아노에 마음을 사로잡혔습니다.
자세히 살피지 않아도 '아' 싶은 구석이 있는 모양새인 겁니다.
이 피아노는…
며칠 전 츠카사와 함께 광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보았던 예의 그 피아노입니다.
다 낡아 볼품 없어진 악기에 싸구려 페인트 칠을 해 디스플레이용 구색만을 갖추고 있었던 그 피아노요.
레오가 알기로 이 피아노는 분명 광장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 악기상이 출처였던 모양입니다.
츠키나가 레오:이게 왜, 여기...? (아직 작동하는지 건반을 눌러본다.)
건반을 눌러보면 조율한 지 아주 오래된 듯한 희미하고 탁한 소리가 새어나옵니다.
겨우 소리를 내고 있지만 제대로 된 연주는 어렵겠네요.
츠키나가 레오:아, 이런걸 보고 있을 때가 아니라 스오! 스오... (주변을 둘러본다.) 어딨는 거야...? 이런데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이후 길거리를 재차 둘러보지만 역시나 사람은커녕 개미 한마리 보이지 않는 공간입니다.
악기상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츠키나가 레오:(입술을 꾹꾹 눌렀다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본다.)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는 [카운터] 입니다.
좌석에 앉아 악기상을 지키고 있던 가게 주인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목재 구조의 악기상 내부는 텁텁하고 간지러운 먼지 냄새가 납니다.
어디에서도 악기는 찾아볼 수 없지만 벽면 가득 들어찬 거대한 [책장] 은 그대로네요.
츠키나가 레오:(카운터 쪽으로 다가가 가볍게 두드려본다.) 저기- 아무도 없어?
쓸쓸한 카운터 위에는 다소 눈에 익은 물건들이 주인을 잃고 방치되어 있습니다.
[아날로그 시계] 와 [라디오] 에 먼지가 그득 쌓여 있습니다.
츠키나가 레오:(갸웃거리며 아날로그 시계를 본다.)
먼지 쌓인 아날로그 시계를 들여다봅니다.
약이 거의 다 되어가는 모양인지 세 개의 침이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을 그러모아 간신히 뜀박질하고 있습니다.
하나 부자연스러운 점은 바늘들이 하나같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본래 공전해야 할 궤도를 떠나지 못한 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일련의 반복된 패턴에 기이한 느낌이 들어 SANc 0/1
츠키나가 레오:
SAN Roll
기준치:
63/31/12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고장인가? (빤히 들여다보다 옆에 있던 라디오를 툭툭 두드린다.)
치직… 치지지직…
완전히 고장나 버렸는지 탁한 백색소음을 흩뿌리고 있습니다.
주파를 맞춰보고 툭툭 두드려도 보지만 고쳐질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기계수리 판정
츠키나가 레오:
기계수리
기준치:
55/27/11
굴림:
1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라디오에서 눈을 돌리면 그제야 희미한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진행자:… … 괴 전염병으로 인한 고열에 시달리다 사망한 인구가 전체 인류의 70%에 육박했습니다.
사회는 완전히 마비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미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대로 인류는 역사에서 잊혀지게 될 것입니다.
한편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오컬트 학자들이 내놓은 새로운 가설이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전염병이 어떤 경로로 감염되어 인체에 해를 끼치는지, 보편적이지 않은 경로로 추적을 이어오던 그들은 전 지구를 장악한 미지의 전염병이 사실은 어떤 저주이며, 감염 경로가 특이하게도 음악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어떤 저주받은 곡으로 인하여 전염병이 창궐하였다면, 이 광기어린 저주를 세상에 퍼뜨린 원인이 되는 곡의 악보를 태우는 방법만이 존속과 멸망을 결정지을 유일한 수단이라고… …
츠키나가 레오:... (입을 꾸욱 다물었다가 몸을 돌려 책장 쪽으로 다가간다.) ...음악 때문이라면.
도둑맞았는지 듬성듬성 비어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셀 수 없이 많은 악보집들이 책장 가득 꽂혀 있습니다.
걷어내지 못한 먼지는 더욱 무거워졌고,
제대로 자리잡지 못해 절반쯤 튀어나와 있는 책자도 여럿 보입니다.
불현듯 떠올립니다.
피아노를 그만둔 뒤 악보를 어떻게 관리해왔더라, 하고.
그래서 더 살필 만한 건 없나? 싶던 차에,
책장 모서리에 전에 보지 못했던 [달력] 하나가 박힌 못 위로 장식물처럼 걸려 있음을 발견합니다.
츠키나가 레오:(달력을 살펴본다.)
달력은 7월에 펼쳐져 있습니다.
덩그러니 매달려 있는 몸통만한 달력을 쳐다보던 당신은 달력 어귀에 적혀있던 올해의 년도를 발견합니다.
그곳에는 큼지막한 네 개의 숫자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2023년.
지능 판정
츠키나가 레오: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세상의 오류를 알리듯 거꾸로 돌아가는 아날로그 시계와,
당신이 살던 현재로부터 조금 동떨어진 세월의 흐름을 가리키는 달력.
길거리에는 사람 하나 오가지 않고 시야는 마치 흑백필름을 끼워 넣은 것처럼 생기 없었습니다.
스오우 츠카사:...저, 있죠. 역시 과거로 가서 당신을 만나고 오겠습니다. 생각해 봤습니다만, 문제는 없을 것 같아요. 당신이 정말 피아노 치는 것을 싫어했더라면... 이 악기상에 찾아오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그런 혼잣말을 덧붙입니다.
츠카사의 품에는 악보가 들려 있습니다.
이른 아침의 교실, 책상 위에 올라와있던 츠카사의 가방 사이에서 보았던 그 악보집이 틀림 없습니다.
츠키나가 레오:... (이제서야 조금 이해가 가기 시작한 네 행동에 눈물마저 날것 같다. 결심이 굳어진 얼굴로 올곧게 저를 응시하는 보랏빛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다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담아준다.) ...과거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스오우 츠카사:...! (당신을 지나치려던 걸음이 멈추고, 부드러운 쓰다듬을 받아 놀란 눈으로 널 응시하던 것도 잠시. 이내 눈을 살풋 접어 웃으며, 머리를 쓰담아주는 네 손을 한 번 꼭 잡은 후 놓는다.) ...네. 분명 괜찮을 겁니다. 저는 당신을... 그리고 음악을 믿고 있으니까요. 너무 무리하지 말고 계세요. ...다녀오겠습니다.
그 말을 남긴 츠카사는 마치 모든 결정과 준비를 끝마친 사람처럼,
미련 없이 레오를 지나쳐 악보를 들고 깊고 커다란 구멍에 뛰어듭니다.
...
레오가 다시 정신을 차리면 2023년에 묶여있던 몸은 다시금 2020년의 악기상 앞에 서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츠카사는 보이지 않고,
한가로운 골목길을 누비는 어린 아이들이 종종 눈에 들어옵니다.
구멍에 뛰어들기 전 소지하고 있던 플라스틱 명찰을 살펴보면 한 구석에 작은 금이 가 있습니다.
악기상 유리창 너머의 아날로그 시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정갈하게 돌아갑니다.
꿈이라도 꾼 걸까요?
단지 꿈이라는 한 단어로 축약하기에 보고 듣고 겪었던 모든 것들이 지나치게 현실적이었습니다.
우물에서 올라오는 듯한 인광의 기둥은 평범한 사람의 의식이 상상할 수 있는 어떠한 영상도 초월하는 재앙과 비정상의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단지 빛은 이제 새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쏟아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감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색깔의 형체 없는 흐름은 구덩이에서 곧장 천장을 향해 솟구쳐 올라가는 듯합니다.
순수한 색채의 형태로 나타난 이계의 지성체,
세상에 알려진 어떤 스펙트럼과도 닮지 않은 희미한 색을 내는 비실체.
우주에서 온 색채입니다!
SANc 0/1d4
츠키나가 레오:
SAN Roll
기준치:
59/29/11
굴림:
74
판정결과:
실패
rolling 1d4
(
3
)
=
3
아, 역시 라이터를 챙겨들고 다녀야 했는데... 현대인의 필수품.
아른거리던 색채는 곧 작은 개미지옥을 만들어낼듯 당신의 육신을 에워쌉니다.
순간, 머리가 반으로 쪼개질 듯한 역겨운 오존 냄새를 맡았습니다.
올 여름 내내 맡아왔던 비리고도 싱그러운 냄새입니다.
우주에서 온 색채는 가까이에 있는 지성체의 마음을 약화시킵니다.
색채의 정신공격이 이어집니다.
지능 대항입니다.
츠키나가 레오: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2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우주에서 온 색채: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27
판정결과:
보통 성공
끈적하고 불쾌한 비실체가 몸 곳곳에 들러붙는 감각을 뿌리치고 가까스로 정신을 다잡습니다.
음악실 바깥으로 대피하거나 음악실의 전등을 켜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츠키나가 레오:.....음~ 여기서 죽더라도 뭐, 스오가 묻어주긴 하겠지. (잠시 어색하게 웃으며 한숨을 내쉬다 옆에 놓여진 책상을 던지고 빠르게 뛰어 음악실 밖으로 뛰쳐나온다.)
책상이 던져지는 우당탕 소리와 함께 빠르게 뛰어 음악실 밖으로 뛰쳐나가려던 그 때.
동시에 강한 힘이 레오의 팔을 잡아당겨 음악실 바깥으로 끌어냅니다.
스오우 츠카사:제가 해가 진 후의 음악실에는 오지 말라고, 분명 말씀드렸는데...!
얼굴을 확인하면 아니나 다를까 결석했던 츠카사입니다.
매서운 불호령이 떨어집니다만,
그조차도 레오가 들고 있는 악보집을 확인하거든 빠르게 누그러듭니다.
얼굴에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붙잡힌 통에 팔 전체에 전해지는 체온이 36.5 ℃를 훌쩍 넘어섰음을 눈치채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츠카사의 몸은 불 위에 올려둔 물처럼 펄펄 끓고 있습니다.
이 상태로 쭉 당신을 찾아 헤매고 있던 걸까요?
츠키나가 레오:...! 그건 내가 할 소리야! 너, 지금 이런 몸상태로 여기까지 온 거야? (어깨를 단단히 감싸쥐고 당겼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 그대로 번쩍 들어올린다.) 일단 화내는건 다음에 하고... 가자. 어디있어, 악보?
스오우 츠카사:...그야, 당신이 신경 쓰였으니까요. (제 열기를 눈치챈 너에게 그렇게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입술을 깨물다가.) ...?! 뭐, 뭐하시는 건가요, 츠키나가 씨...! 내려놔 주세요, 걸을 수 있습니다...!
츠키나가 레오:... (그 말에 잠시 멈칫했다가 따라서 버럭 화를 낸다.) 그렇게 고열이면서! 안 돼! 못 내려놔! (잠시 머뭇거리다 슬금슬금 내려준다.)
스오우 츠카사:읏... (연달아 이어지는 너의 호통에 혼나는 아이 같은 표정이 되었던 것도 잠시, 다시 땅에 발을 딛는다.) ...많이 화나셨나요? (악보라고 했었지. 그 말을 떠올리며, 힘에 부쳤는지 어딘가 스러질 듯한 미소를 짓고는.) 이럴 때에, 좀 뜬금없는 이야기입니다만. 전에 물리 선생님이 내 주신 숙제 말입니다. 선생님은 미래에서 건너온 사람이, 과거의 역사를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해 물으셨죠. ...저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만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은 없어요.
그렇게 속삭이는 츠카사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습니다.
꼭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것이 아닌, 세상의 진리를 설파하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한참을 침묵하던 츠카사가 다시 한 번 입을 엽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스오우 츠카사:...아직, 피아노 연주는 하고 싶지 않으신가요? (너의 손에 살포시 제 뜨거운 체온을 겹친 채, 어렴풋이 웃으며 속삭이듯 말한다.)
츠키나가 레오:... (바람 빠지듯 작게 웃음이 새어나온다. 이미 대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부러 물어오는 모습이 조금 짓궂기도 하다. 내내 아련한 미소만 지어대더니, 못 이기는 척 네 손을 한번 힘주어 잡는다.)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잖아. 나, (꽃이 피어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모든 근심을 털어낸 얼굴로, 뺨을 발갛게 붉히며 눈을 접어 웃어보인다.) 피아노 정말 좋아해.
스오우 츠카사:...! (제 손에 마주 실리는, 어쩐지 믿음직한 힘. 그리고 비로소 모든 것을 털어낸 듯이. 겨우내 잠들었던 꽃망울이 터지듯 해사하게 피어난 너의 미소를 잠시 멀거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어지는 말에는 저도, 발갛게 달뜬 얼굴로 저도 헤실 웃어보였고.) ...그렇습니까. 다행이에요.
츠카사는 레오에게 악보집 하나를 건네줍니다.
낡고, 오래 되었고, 허름하며, 손때 묻었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을 건네받는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츠카사는 곧 쓰러질 것 같은 창백한 안색을 하고서 끊길 것 같은 목소리를 쥐어짜내 한 가지 부탁을 남깁니다.
그 모습이 마치 한계에 다다른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스오우 츠카사:(네 손에 제 손과 맞바꾸듯 악보집을 쥐어주고는, 흐르는 식은땀을 훔치지도 못하고 더운 숨을 쉬었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오후 6시에 피아노가 놓여 있는 그 광장에서, 그 악보를 연주해 주세요. 꼭 그 광장이어야 합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을 시간에... 반드시 이 곡을 연주해 주세요. (말을 마치고는 어딘가 홀가분한 표정이 되어, 숨을 조금 몰아쉬고는 열기에 몰려 아득한 시선으로 너를 바라보았다.) 꼭... 부탁드립니다. 피아니스트 츠키나가 레오 씨.
그 말을 남긴 츠카사는 등을 돌려 사라집니다.
사라지는 츠카사를 잡아 세울 수 없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겠지만 비유하자면 그런 것입니다.
무지개를 손으로 잡을 수 없고 햇빛의 뜨거움을 유리병 속에 담지는 못하는 것과 같은...
츠키나가 레오:... (그럼 너는? 나오지 못한 소리가 입안으로 흩어진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아스러지는 네 모습을 보며 또 한번 결심을 굳힌다. 입술을 꽉 깨문 채로 위태로운 네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빠르게 소각장으로 달려간다.)
소각장에 도착하면 아직 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츠키나가 레오:(악보 조각을 꽉 쥐고 그대로 소각장에 던져넣는다. 저 무력하게 흩날리는 것들이 인류의 절반 이상을 앗아갈 만큼 위험한 물건이라는 것을, 누가 믿어주기나 할까. 네가 건네준 악보를 소중히 품에 안고 타들어가는 종이 조각들을 가만히 내려본다.)
악보는 순조롭게 타들어갑니다.
정체 모를 문양은 불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조악하지만 미약한 반짝임을 내뿜습니다.
끈적거리는 여름밤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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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퍼부을 듯 빽빽한 수증기가 마른 길바닥을 차지하고 있는 시간입니다.
날씨 탓일까요?
오늘의 해는 일찍이 시들 요량인가 봅니다.
하늘을 켜켜이 감싼 먹구름이 기묘하게 반짝이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평소보다 적은 수이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이 광장은 요 근방에서 유동객이 많은 장소로 손꼽히는 장소입니다.
중앙에 마련된 분수대 앞에 놓여 있는 낡아빠진 피아노가 눈에 들어옵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페인트칠을 해 두었지만,
좀처럼 눈길을 사로잡지는 못하는 낡고 오래된 악기가 꼭 고물처럼 보입니다.
점점 더 무채색해지며, 점점 더 다채로워지는 모순적인 세계에 도태되어 있습니다.
그 허름한 피아노에 다가서는 것은 오로지 레오, 당신 뿐이겠죠.
츠키나가 레오:...스오. (악보를 부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소중하게 품에 그려쥔 채 눈을 가만히 감고 크게 숨을 들이켜 호흡을 가다듬는다. 다시 피아노를 쳐보게 된게 얼마만이지? 이러다 심장이 내려앉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하게 뛰어오는 심장이 제 존재감을 알려온다. 다시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됐다는 기쁨? 오랜만에 건반을 눌러 본다는 기대감? 아니, 긴장감일까. 음악은 그런 마음을 전해줄 수 있는 언어니까요. 불현듯 들려오는 네 목소리가 머릿속을 간지럽힌다. 어째서인지,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걸쳐진다.) 들어줘. (제 연주를 기다리고 있을 단 한 사람을 생각하니 이상하게도 떨림이 가라앉는다. 망설임 없는 발걸음으로 빠르게 피아노 앞까지 다가간다. 약간의 설렘을 담아.) ...너를 위해 치는 곡이니까.
이제 피아노 의자에 앉을 차례입니다.
주변을 둘러보지만 츠카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시간은 점점 6시에 가까워지는 이릇입니다.
당신은 시간의 풍파를 고스란히 간직한 악보대 위에 셀 수 없이 많은 나이를 먹고 자란 곡을 올려둡니다.
음표를 빼곡히 채워 넣은 악보는 종이가 어찌나 얇고 덧없는지 바람 한 점에도 부서질 것처럼 가녀립니다.
이 악보의 어느 구석이 그렇게나 특별한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츠카사는 당신에게 간곡히 부탁했었죠.
언젠가 당신이 최초로 건반에 손을 올려놓았을 때처럼 어깨 끝을 살짝 떨면서.
차가운 공기 한 품 찾아볼 수 없는 습하고 무더운 여름의 정가운데서 마침내 건반에 손을 올려둡니다.
잊고 살던 서늘한 냉기가 백건과 흑건 위에 자리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깨를 익힐 듯 강렬하던 더위가 한풀 꺾입니다.
추억으로 남길 뻔했던 감각들이 되살아남을 느낀 것은 그 때였습니다.
하지만 이대로도 괜찮나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 번 연주를 그만 두었던 당신이 과연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모든 의지를 잃고 주저앉아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도망치듯 반대로 뛰어 가능한 먼 곳으로 숨었던 당신은...
굳어버린 손가락으로 다시 누군가의 발걸음을 멈춰 세울만한 연주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요?
(GM):피아노 연주에는 <피아노> 다이스 롤이 필요합니다. 레오의 <피아노> 기능치는 최초 30이었으며, 지금까지 츠카사의 완곡 연주를 한 번 들을 때마다 기능치가 성장하여 현재의 기능치는 99입니다!
시트에 다이스를 추가해 주세요.
츠키나가 레오:... (역시 보이지 않는 네 모습에 슬쩍 고개를 드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조금 씁쓸하게 웃음을 흘린다.) 그래도, 약속한 거니까... (막상 의자에 앉아 마주하니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을까, 흉터 위를 손으로 느리게 쓸고 한번 세게 쥐어본다.) 루카, 오빠 열심히 해볼게요. (작게 심호흡을 하고 악보를 올려둔 뒤 바르게 자세를 잡는다. 손을 올리고. 천천히. 건반을 누른다.)
이어나갈 수 있을까요?
그럼요.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세상에 절망과 꺾인 의지만이 잔재한다면,
한 번 좌절했던 당신이 이렇게 무사히 피아노 앞에 앉게 될 수 있었을 리 만무합니다.
눈 앞에 놓인 골목의 폭이 서로 다를 뿐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주어져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언젠가 좌절하지 않는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선택을 번복하고 버텨내는 겁니다!
<피아노> 판정
츠키나가 레오:
피아노 Roll
기준치:
99/49/19
굴림:
67
판정결과:
보통 성공
건반 위에 손가락을 올리면, 그 후의 움직임은 물 흐르듯 진행됩니다.
연주가 시작되면 바쁘게 거리를 활보하고,
때로는 흐릿한 풍경에서 벗어날 듯 지나치던 사람들의 시선이 점차 광장에 모이기 시작합니다.
기이하게 물들었던 별빛 하늘이 풍향을 따라 꽃가루처럼 걷히고,
가슴 위에 얹힌 듯 반죽되어 있던 아픔과 좌절이 단 하나의 점이 되어 흔적을 달리합니다.
츠키나가 레오:(그렇게 걱정했으면서 그걸 마치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몸은, 손가락 끝 감각은, 여전히 남아있던 것인지 우려와 달리 매끄럽게도 움직인다. 가늘고 단단한 손가락이 경쾌하게 건반을 누르며 지나가자 곧 듣기 좋은 음이 손끝에 감겨 기분 좋게 매달려온다. 저절로 입가에 번지는 미소가, 처음 피아노를 쳤던 때처럼 간지럽게 심장을 눌러오는 즐거움이, 이 마음이 확실하게 전해질 수 있도록. 이 곡을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해지도록. 그래, 음악은 세계 공통어라 누군가 말했던가. 누군가, 음악은 또 다른 언어라 하였던가. 느긋하던 동작이 빨라져 끝에서 끝으로 바삐 움직이며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 ...응, 역시 난 피아노가 정말 좋아. 이렇게 예쁜 소리를 내는... 왜 잊어버렸을까.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가슴이 떨리게 즐거운데. 점점 끝으로 향해가는 연주에 손도 덩달아 느려지기 시작한다. 점차 줄어드는 음이 슬슬 사라져갈 즈음에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연주해본다.)
곡이 끝맺음과 동시에 건반에서 손가락이 떨어지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날립니다.
뉘엿뉘엿 져 가던 하늘에 수놓였던 수억 개의 별들이,
세계를 숙주삼아 성장하던 색채의 무리가 모두 걷혔음을 깨닫습니다.
모든 인파가 흩어지고 나서야 주위를 둘러보지만 그 어느 구석에서도 츠카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같은 자리에 앉아 기다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
츠카사의 전학 소식을 듣게 된 것은 돌아온 월요일의 아침에서였습니다.
레오는 어쩌면 묘연히 사라져버린 츠카사를 수소문 했을 수도 있고,
츠카사를 만나기 전의 평범했던 하루처럼 모든 사건을 잊은 채 나날을 이어나가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을 괴롭히던 고열의 전염병 사태가 완전히 종식되고,
혼란했던 세계는 평화를 되찾습니다.
고열에 시달려 병결했던 아이들도 모두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울다 지친 매미가 늦여름의 끝에서 기나긴 생의 종지부를 찍습니다.
시간은 부지런히 흐르고 계절이 순환합니다.
10대의 끝,
졸업식을 하루 앞둔 당신은 책상 사물함 깊숙한 곳에서 반과 반으로 접힌 쪽지 하나를 발견합니다.
눈에 익은 글씨를 확인하면 틀림없이 츠카사의 글씨체입니다.
접힌 자국만이 선명하고 흐릿하게 번진 연필 자국은…
[ 2023년, 여름의 악기상에서 다시 만나요. ]
반짝, 하고.
마치 빛을 받은 유령의 신호처럼.
END 1. Da capo! ㅡ처음으로 돌아가.
현재를 살아가던 레오의 개입과 선택으로 인해 모든 미래가 바뀌었습니다.
츠카사와의 두 번째 첫 만남이 2023년에 이루어집니다.
손실되었던 모든 이성치와 체력을 회복합니다.
...
...
장마전선 소식이 들려오던 여느 2023년의 여름.
세간에 알려진 '정체불명의 전염병' 사태가 종식된 날로부터 약 3년이 흘렀습니다.
좁디 좁은 골목을 돌아 울타리 어귀에 멈춰선 당신은 영업 종료 팻말이 걸려 있는 악기상 건물을 바라봅니다.
관리 되지 않아 썩어가는 나무벽은 꼭 악기상이 아닌 잊혀진 어딘가의 골동품 가게를 연상케 합니다.
그나마 빨갛게 돋아난 덩쿨장미가 건물 외벽을 타고 자라난 풍경만이 음산함을 닦아낼 뿐입니다.
레오는 걸쇠가 앞길을 가로막은 악기상 처마 아래서 낡아빠진 [피아노] 한 대를 발견합니다.
3년 전의 그 피아노임은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간 이미 여러 차례 이 악기상을 방문했던 레오라면,
전에는 이 피아노가 이 자리에 위치해 있지 않았음을 떠올릴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그날 이후로 행방이 묘연했던 피아노의 재등장입니다.
칠이 더욱 벗겨진 피아노를 살필 수 있습니다.
츠키나가 레오:(피아노를 툭툭 건드려본다.)
아직 쓸 수 있나?
피아노의 음색은 희미하고 낡아 있지만, 조율을 하면 어느 정도는 연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악보대 위에는 반듯하게 펼쳐진 [악보] 하나와 더불어 사용감이 남아 있는 [녹음기] 하나가 있습니다.
녹음기는 피아노만큼이나 눈에 익는 종류입니다.
...3년 전의 츠카사가 늘 가지고 다니던 그 녹음기니까요.
츠키나가 레오:... (놀라 조금 커진 눈으로 급하게 악보를 잡아 살핀다.)
악보를 확인하면 낯익은 피아노 곡이 담겨 있습니다.
클로드 드뷔시 작곡, Clair de Lune.
이 곡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츠키나가 레오:...바보야. 이런건 직접 줘야 더 기쁘다고. (작게 한숨을 내쉬곤 흐리게 웃으며 녹음기를 눌러본다.)
녹음기 전원 버튼을 누르면 화면이 들어옵니다.
텅 비어있는 폴더 속에서 음성메시지 한 건과,
세 개의 피아노 연주 녹음 파일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츠키나가 레오:...? (음성메시지를 틀어본다.)
음성메시지를 재생하면 3년 전에 녹음된 파일로,
다소 음질이 좋지 않습니다.
노이즈 낀 음질 틈을 파고든 츠카사의 목소리가 새파란 여름의 골목길에 흩뿌려집니다.
.. .. .
스오우 츠카사:안녕하세요, 츠키나가 씨. ...아니, 이제는 레오 씨라고 부르기로 할까요.
부탁드린 피아노, 연주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연주 잘 들었습니다.
이미 눈치 채셨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3년 후의 미래에서 온 사람이에요.
그래서 저는 지금 제가 살던 미래로 돌아갑니다.
혹시라도 과거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마지막 인사를 하지 않고 홀연히 떠날 마음을 먹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세요. 대신 이 음성 message를 남깁니다.
스오우 츠카사:어젯밤 레오 씨의 말을 듣고서야 깨달은 거지만, 저는 이미 한 번 당신을 만난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과거로 향하는 구멍에 뛰어들기 직전에 악기상 앞에서 레오 씨를 마주쳤던 일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실은 당신이었던 거죠? 제가 찾아 헤매길 자처했던 3년 전의 당신…
신기하지 않나요? 제가 헤매기도 전에 당신이 먼저 저를 만나러 와 주셨다는 게 말입니다.
...아니. 또 달리 생각하면 그게 오히려 당신다운 행동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설명드릴 수 없어서 죄송했습니다.
스오우 츠카사: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알고는 있었고, 또 레오 씨가 해 주셨으면 하는 일들도 많았어요.
그렇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만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제가 말씀드렸던 거 기억하시나요?
말 그대로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정체 모를 어떠한 힘에 의거해, 레오 씨가 계시는 현재를 잠시 다녀갈 뿐인 미래인이었으니까요.
그런 사람이 앞으로 일어날 일에 손을 대서는 안 됩니다.
사실 정말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많이 있었어요. 그래도 제가 섣불리 무언가에 간섭해 영향을 끼쳐 버리면, 레오 씨가 모처럼 해 주실 피아노 연주를 망쳐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오우 츠카사:...그게 가장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 마치 음악실의 유령처럼... 어떤 기척도 내지 않고 숨죽인 채, 레오 씨가 이곳에 이끌려 스스로 찾아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유령처럼... 질량도 형체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형태로 무덥고 침침하던 과거의 여름 속에서.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당신을 홀려낼 생각 뿐이었던 음악실의 유령처럼요.
그런 제게 레오 씨가 스스로 걸음해 주신 겁니다. 저는 운명론을 맹신하진 않지만... 그렇지만 꼭,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는 것처럼 말이에요.
제가 동경하는 레오 씨.
앞으로 당신이 바꿔나갈 미래에서, 당신은 다시 피아노를 치고 계실까요?
스오우 츠카사:아주 어렸을 때, 제가 엄격하신 부모님께 떼를 쓰면서까지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해 준 계기는... 츠키나가 레오 씨. 바로 당신이었어요.
미래의 저는 또 그때처럼, 당신의 등을 뒤쫓을 수 있게 되었을까요?
레오 씨는 제게 감사하다고 해 주셨지만... 사실 감사를 말해야 할 사람은 레오 씨가 아니라 저였습니다.
듣는 사람의 기분이 즐거워지는 피아노를 연주해야겠다고 마음먹게 해 주신 것도, 음악이 가진 힘을 믿을 수 있게 해 주신 것도.
제가 피아노를 치며 행복한 풍경을 몇 번이고 볼 수 있었던 것도... 괴멸해 가는 미래에서 발버둥칠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전부 레오 씨 덕분이었으니까요.
스오우 츠카사:당신이 피아노를 다시 연주해 주셨던 건 어떠한 기적도, 우연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저 부탁을 드렸지만... 레오 씨가 그 부탁을 들어주시기로 선택했고, 또 오롯이 레오 씨의 손으로 당신만의 피아노를 연주했던 거예요.
그야 당신은 피아니스트니까. 단 한 사람이라도, 당신의 음악을 바라는 사람에게 음악으로 답할 수 있는 찬란한 연주가니까.
...저는 당신이 연주하는 그런 음악을, 꽤 많이 좋아하고 있습니다.
몸이 안 좋아 걱정 끼쳐 드려서 죄송했습니다. 제멋대로인 저의 부탁을 몇 번이고 들어 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그럼, 또 언젠가 어딘가에서.
스오우 츠카사:...당신을 사랑하는, 츠카사가.
... .. . .
츠키나가 레오:...이런건 반칙이잖아. (녹음기가 마치 너라도 되는 것처럼 하염없이 그 위를 손으로 훑는다. 지문이 달아 없어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한참을 쓸고 매만지다 가만히 그 위에 입술을 눌렀다 떼어낸다.) ...나도 사랑해, 츠카사. 내 첫사랑... 내 첫 번째 팬... 나만의 관객. 내, ...하나뿐인 뮤즈. (매끄럽게 호선을 그린 입술이 부드럽게 미소를 머금는다.) 이별만이 인생이야. 그래도 너를, 영원히 잊지 않고 기억할게. 사랑해.
음성 메시지가 종료되면 어디선가 비릿하고 싱그러운 풀냄새가 불어옵니다.
멍하니 녹음기를 든 채 망가져가는 피아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던 당신의 어깨를,
톡톡.
누군가 두드리겠죠.
불현듯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하면,
…츠카사입니다.
2023년, 두 번째 첫 만남.
저, 혹시 옆자리가 비어 있다면... 제가 앉아도 괜찮을까요?
알고 있나요? 두 사람은 괴멸해 가던 일전의 미래에서도 2023년에 이 피아노 앞에서 마주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