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유난히 화창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분다는 소소한 점을 제외하면 어제와 다를 것 하나 없는 날입니다.
오늘도 츠카사는 평소처럼 등교했습니다.
그런데 교실로 들어서니 뭔가 이상한 게 보입니다.
원래 자리배정상 츠카사의 옆자리는 비어 있었는데,
난데없이 책상 하나가 생긴 게 아닌가요?
게다가 누군가 앉아 있습니다.
의아해진 츠카사는 자리로 다가갑니다.
이때 갑자기 여러 일이 동시에 벌어졌습니다.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위쪽 창문이 츠카사의 머리를 향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반 친구들이 비명을 지르고, 우당탕 소리가 들립니다.
그 순간 누군가 츠카사를 잡아채 뒤로 확 끌어당겼습니다.
츠키나가 레오:...안 돼, 스오. 144번째는 안 돼.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유독 그 목소리만이 아주 명징하게 츠카사에게 들렸습니다.
정신을 차리자 바로 조금 전까지 츠카사가 서 있던 자리에 떨어진 유리창이 완전히 박살 나 있었습니다.
놀란 반 아이들이 몰려듭니다.
츠카사는 자신을 잡아챈 누군가를 돌아봅니다.
명찰에는 [츠키나가 레오] 라고 적혀 있네요.
난생 처음 보는 얼굴.
그러나 그는 츠카사를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짓습니다.
몹시도 부시도록…….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츠카사는 아찔한 두통,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저림을 겪었습니다.
차라리 눈을 감고만 싶어질 만큼 가슴을 할퀴고 가는 그리움.
찬란해서 아픈 순간입니다.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이성치 판정 0/1
스오우 츠카사: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이성 -1
혼란스러운 와중 조례와 수업들이 차례차례 지나갑니다.
도통 누구인지 모르겠는 옆자리 학생은 아주 태연하게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누구도 레오의 존재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굉장히 의아하네요.
이제 쉬는 시간입니다.
레오에게 말이라도 걸어 보는 게 좋겠습니다.
대체 이 사람은 누굴까요?
스오우 츠카사:아까 전엔 구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얼굴입니다만, 당신은 누구신가요?
츠키나가 레오:응? 아~ 인사 할 필요 없어. 구해주는 건 당연한 일이지! 나랑 스오 사이에! (이어지는 너의 말에 눈을 접어 웃었고.) 아하핫, 뭐야 스오. 장난치는 거야? 혹시 어제 내가 네 초콜릿 먹은 것 때문에 모른 척 하고 있는 거야?
스오우 츠카사:저랑 당신의 사이요....? 무슨 말이신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저는 당신을 오늘 처음 봤습니다만, 혹시 우리가 예전에 어디서 만난적이 있었던 걸까요...
츠키나가 레오:에엑, 스오 엄청 화나서 그런 거야...? 아니면 곧 시험이라 스트레스 받았어? (네 말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나랑 스오는 엄청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잖아! 그리고, 당신이라느니 새삼스럽게 딱딱하다구~, 평소처럼 레오 씨라고 불러!
스오우 츠카사:(눈을 동그랗게 뜨며) 엣, 레오 씨...? 제가 당신을 그렇게 불렀던 겁니까? 핫, 화난 건 아닙니다! 그저... 죄송합니다.. 당신에 관한 게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아요. 하지만 제가 그렇게 당신을 불렀다니... 앞으로 레오 씨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츠키나가 레오:(죄송하다는 너의 말에 살풋 웃으며 머리를 가볍게 쓰담는다.) 흐응~? 뭐, 원래 스트레스를 받으면 갑자기 기억이 안 나기도 한다는 모양이니까! 정말 새삼스러워서 좀 우습지만~ 옛날 생각나네. 응, 레오 씨라고 불러♪
앗, 잠시만 스오!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씩 웃고는 문 너머로 사라진다.)
별다른 소득 없이 대화가 끝나고, 레오는 화장실에 간다며 자리를 비웁니다.
차라리 본인보단 주변 친구들에게 질문을 해 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마침 근처에 모여 잡담 중인 반 친구 A, B가 보입니다.
친구들에게 ‘레오가 누구냐’고 질문해 봅시다.
스오우 츠카사:저, 뭐 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혹시 제 옆에 있던 분이..,그러니까 츠키나가 레오가 누군지 아십니까?
친구 A:엥? 스오우, 아침부터 그런 생뚱맞은 질문을 하다니 너답지 않네. 츠키나가가 츠키나가지 누구야.
친구 B:그래, 스오우 군의 10년지기 절친이잖아~ 왜 그래, 오늘 츠키나가 군이랑 싸우기라도 했어?
스오우 츠카사:네?? 제가 레오 씨와 10년 지기 절친이라고요? ...그런데, 어째서 전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 걸까요... 으으,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슬슬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친구 B:아하하, 스오우 군이 그런 농담하는 건 처음 들어봐. 정말 싸운 거야? 그렇지만, 둘이 초등학교부터 같이 나온 절친인 건 사실인걸.
친구 A:그래. 너네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고 말이야.
스오우 츠카사:싸운 건 아닙니다! 레오 씨에 관한 게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아서... 농담이 아니라구요~! 엣,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던 걸까요...!?
친구 A:나 참, 친하면 닮는다더니... 이제 스오우 너도 츠키나가처럼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건가. 너네 1학기엔 수학여행도 옆자리에 앉아 가 놓고 무슨 소리야?
친구 B:그래, 도시락도 맨날 같이 먹으면서~ 참, 그러고 보니 부활동도 같지? 궁도부랬나?
스오우 츠카사: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아서 오히려 제가 답답해지기 시작했어요... 제가 궁도부인건 맞습니다만, 레오 씨도 궁도부인가요?
친구 B:응, 둘 다 궁도부잖아? 전에 스오우 군이 부활동에서는 꼭 레오 씨가 보지 않을 때만 화살을 가운데에 맞춰서 분하다고, 그렇게 말해준 적도 있었는걸~
앗, 수업 종 쳤다. 그럼 또 나중에 얘기하자, 스오우 군~
A, B 모두 츠카사가 굉장히 이상한 질문을 한다는 듯 의아한 반응을 보입니다.
당황스럽네요.
여러 가지 질문을 해 보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레오와 츠카사 두 사람이 대단히 절친한 사이였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츠카사는 의문 속에서 남은 수업을 듣습니다.
빠르게 하루가 지나고 어느덧 하교할 시간,
레오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츠카사에게 다가옵니다.
츠키나가 레오:스오~, 집에 가자.
그러면서 환하게 웃는 레오의 모습은, 좀 지나치리만큼 츠카사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절친한 사이라더니 등하교도 같이 하는 걸까요?
츠카사는 여전히 레오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는데요…….
그런데도 어쩐지 그의 말을 들어 주고 싶다는 기분이 듭니다.
츠키나가 레오:(너보다 두 발짝쯤 앞서 가다가, 뒤를 돌아보며 생긋 웃는다.) 뭐 해, 스오~? 안 갈 거야?
스오우 츠카사:네? 아, 아니요! 지금 가고 있어요. (너의 웃는 모습에 잠시 넋이 나가 있다가 허둥지둥 레오를 따라 간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학교를 나섰습니다.
아침부터 맑았던 날씨는 여전합니다.
하늘은 아주 푸르고, 공기 중에선 바삭바삭한 햇볕 냄새가 납니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같은 교복 차림의 학생들은 저마다 기분 좋게 웃습니다.
이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나쁜 사건 같은 건 도무지 벌어지기 어려운 일로만 느껴집니다.
곁에서 걷는 레오는 희미한 미소를 건 채 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묘하게 감상적인 기분이네요.
레오에게 흰 교복 와이셔츠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츠키나가 레오:(쾌청한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켜듯 쭉 팔을 뻗다가) 으~음, 좋은 날씨에 파란 하늘! 놀러 가기 딱 좋은 날이네~, 와하핫!
스오우 츠카사:(기지개를 키는 너를 보다 하늘을 올려다 보며 웃는다.) 네. 오늘은 유독 날씨가 좋은 것 같아요. 정말 놀러 가고 싶은 기분이에요.
츠키나가 레오:(웃으며 까딱까딱, 고개를 끄덕이곤.) 그치그치? 스오는 늘 고지식하게 공부만 하니까~, 가끔은 놀러 가는 것도 좋다구. 스오가 좋아하는 달콤한 디저트라도 먹으러 간다든지 말이야. 파르페 같은 거, 좋아하잖아?
스오우 츠카사: 핫, 어떻게 아셨나요? 제가 파르페를 좋아한다는 거... (놀란 눈으로 너를 바라본다.)
츠키나가 레오:흐흥, 그야 당연하지~ 스오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다는 말씀! (허리에 양 손을 척 얹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웃어보인다.) 옛날 책 같은 거 읽는 것도 좋아하고~, 그렇지만 요즘 같은 여름에 벌레가 꼬이는 건 싫어하고!
스오우 츠카사:...!! 당신은... 아니, 레오 씨는 저에 대해 아는 게 많아 보이네요. 그런데 저는 레오 씨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서... 어쩐지 죄송한 느낌이 들어요.
츠키나가 레오:에, 스오는 욕심쟁이네~ 내가 스오에 대해 많이 아는 것처럼, 스오도 나에 대해 많이 알고 있잖아. (아까 교실에서처럼 살풋 웃으며, 너의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눈썹이 묘하게 부드럽게 내려가 있다.) 미안할 건 없다고~? 부족한 것 같으면, 지금부터 더 더 많이 알아가면 되잖아! 그치?
스오우 츠카사:(머리를 쓰다듬는 너를 보고 어색하게 웃으며) 네. 그렇겠죠... 그래요! 레오 씨에 대해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알아가야겠습니다! (각오했다는 듯이 주먹을 불끈 쥔다.)
츠키나가 레오:(불끈 쥐어지는 너의 주먹을 보곤, 사랑스럽다는 듯 웃음을 터뜨린다.) 아하핫, 그렇게나 각오하는 거야? 스오는 귀엽네~ 질 수 없닷, 나도 더 많이 알아갈 테니까 각오해?
레오는 어떻게 이런 걸 다 알고 있는 걸까요?
정말 츠카사 자신이 잊었을 뿐 두 사람은 오래도록 함께해 온 절친한 친구일까요?
여러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츠카사의 집 앞입니다.
레오는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춥니다.
이곳이 츠카사의 집 근처라는 사실도 아는 모양입니다.
츠키나가 레오:앗, 다 왔네. 그럼 스오, 잘 가. 내일 또 보자?
멈춰선 레오는 츠카사를 배웅하며 평범한 인사를 건네다, 불쑥 이런 말을 합니다.
츠키나가 레오: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모를 거야.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조금 떨린 것도 같았습니다.
가늘게 동요하는 양손이 꽉 맞잡혀 있었습니다.
웃으려 애쓰는 듯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아닌가 자연스레 추측하게 됩니다.
사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다지 표정이 바뀐 것 같지도 않은데요.
츠카사 자신은 왜 처음 만난 것만 같은 레오의 변화에 이렇게 익숙한 거죠?
그 말을 들은 순간 츠카사는 레오를 처음 만난 순간처럼 아찔한 통증을 느낍니다.
참을 수 없어 눈을 감으니, 눈꺼풀 안에서 빛이 부풀어 터지는 듯한 잔상이 아프도록 거세게 동공을 핥습니다.
비틀거리면서, 츠카사는 자신의 기억에 없던 어떤 장면을 스치듯 떠올립니다.
이상한 사람, 신비한 사람. 항상 짓궂고 잘난 척 하는, 열받는 사람.
하지만, 우리가 모시는 왕. 당신을 좀 더, 좀 더 잘 알고 싶습니다.
깊이 이해하고, 그 상처까지 파악한 뒤에... 그 때 반드시 말씀드리죠.
여기는 당신이 숨을 거둘 곳이 아니라고. 당신이 살아갈 곳이라고.
함께 살아갑시다.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전장으로 나아갑시다.
기다리다 지쳐 당신이 멀어져 버리기 전에, 저도 열심히 쫓아가서...
제 목소리가 닿을 수 있을 때까지 당신께 가까이 가겠습니다.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던가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앞이 이지러집니다.
이성치 판정 0/1
스오우 츠카사:
SAN Roll
기준치:
74/37/14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감소 없음
뒤늦게 정신을 차려 보니 츠카사는 이미 집 안으로 들어와 있었습니다.
분명 잠시 정신을 잃은 것 같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오늘은 내내 혼란스럽기만 한 하루입니다.
그날 밤, 츠카사는 꿈을 꾸었습니다.
전체적으로 형상이 어릿하고 시점조차 흐려 어떤 내용인지 쉽게 떠올릴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레오가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꿈을 꾸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가, 때론 환희에 찼다가,
또 어떤 순간에는 비통한 전율에 사로잡히기도 했습니다.
공기로 자은 실처럼 연약한 슬픔이 거기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츠카사는 몹시도 뒤숭숭한 상태로 일어나야만 했습니다.
재난에 매몰된 듯한 기분이 츠카사를 훑고 지나갔습니다.
정신력 판정
스오우 츠카사:
정신
기준치:
75/37/15
굴림:
44
판정결과:
보통 성공
희미한 기억 중 잔재 하나를 건져 올렸습니다.
아주 괴로워 보이는 레오가 지친 결의를 띠며 말합니다.
츠키나가 레오:다음이 마지막일 거야. 곧 그 해니까. 그때도 반드시 너를 찾아낼게, 이번보다 빨리......
그러니 안심하고, ...이제 쉬어.
그리고 그런 날이 열흘 정도 계속되었습니다.
2주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츠카사는 이상한 꿈에 시달리면서도 의도치 않게 계속해서 레오와 붙어 다녔습니다.
당연하게 두 사람을 절친이라고 여기는 주변 친구들 때문에 분위기에 휩쓸렸을 수도 있고,
자신이 이상한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티내기 싫었을지도 모르고,
어쩐지 내내 달라붙는 레오를 츠카사가 거절하지 못해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함께 다니는 내내 츠카사가 레오에게 기묘한 끌림을 느꼈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이렇게 쉽게 마음이 기우는 사람이었나 생각해 보아도 감은 잘 오지 않습니다.
정말 어떤 사고라도 겪는 바람에, 본래 가까운 사이였던 레오를 츠카사가 잊어버리기라도 한 걸까요?
스오우 츠카사:(예쁘다고 말하며 웃는 너에 볼을 살짝 붉히며) ...레오 씨는 낯간지러운 말도 아무렇지 않게 하시네요.
츠키나가 레오:으응? 그치만 예쁘니까 예쁘다고 말하는 것뿐인데! 낯간지러울 이유 없잖아~? (널 가만히 보다가 참을 수 없다는 듯, 네 머리를 두어 번 매만지고는 손을 떼었다.) 그럼 예쁜 스오랑 오늘 하루 신나게 놀아 볼까! 어디 가고 싶어, 스오?
거리를 둘러보니 눈에 들어오는 장소가 몇 군데 있습니다.
[서점] , [노천 카페] , [길거리] 입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휴일을 만끽하도록 합시다.
스오우 츠카사:(네가 매만진 머리를 한번 만지작 거리며) 으음, 레오 씨가 괜찮다면 저는 역시 카페일까요! 이 근처 카페에 디저트가 엄청 맛있다고 유명한 카페가 있어서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츠키나가 레오:오옷, 그래? 좋아, 그럼 가 볼까! (디저트를 먹을 생각에 신난 건지, 기합이 들어가 보이는 너를 보고 푸슬 웃었고.) 가자, 스오~ (잡으라는 듯, 네게 손을 불쑥 내밀었고.)
스오우 츠카사:(어쩐지 자연스럽게 네 손을 잡으며) 네! 가요, 레오 씨♪
노천 카페
테이블이 모두 야외에 설치된 간이 카페입니다.
도심 한복판이지만 인테리어를 앤티크 풍으로 잘 해두어 운치가 있네요.
잠시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메뉴를 정해 볼까요?
츠키나가 레오:스오~ 뭐 먹을래? 여기 파르페도 있고, 케이크도 많은 것 같은데!
스오우 츠카사:(메뉴판의 디저트를 보고 눈을 반짝이며) Marvelous! 하나같이 전부 다 맛있어 보입니다! 마음 같으면 전부 다 시키고 싶지만.... 으으, 레오 씨는 뭐가 가장 맛있어보이나요?
츠키나가 레오:(반짝거리는 네 눈을 보고 쿡쿡 웃으며 함께 메뉴판을 들여다 본다.) 와하핫, 결정 못하겠어? 어디 보자~. 오, 이 딸기 파르페 맛있어 보이는데. 어때 스오?
스오우 츠카사:좋습니다! 그럼 이걸로 하죠~♪
츠키나가 레오:응, 그럼 딸기 파르페랑~ 그거 하나면 돼? 이왕 디저트 맛있는 곳에 왔으니까 좀 더 시켜도 되는데~ 나는 커피 한 잔!
스오우 츠카사:정말 그래도 될까요!? (다시 눈을 반짝이고 메뉴판을 보며) 그, 그럼... 이 초코 무스 케이크랑 바닐라 푸딩이랑 딸기 쇼트 케이크...(정신없이 고르다가 정신 차리고 다시 메뉴판을 놓으며) 핫, 이렇게만 시켜도 될 것 같습니다!
츠키나가 레오:그럼그럼, 상관 없잖아~? 좋아하는 건 많이 먹는 게 기분도 좋고! (정신없이 메뉴를 고르던 너를 보고 풉 웃어버린다.) 스오, 사실 엄청 먹고 싶었구나! 그럼 그렇게 시키고 올 테니까 자리 잡고 기다려? (지갑을 들고, 카페의 구석을 힐끔 살피다가 이내 카운터로 향한다.)
주문을 끝낸 레오가 곧 자리로 돌아오고, 얼마 안 있어 주문한 디저트가 나옵니다.
파르페에 케이크 두 개, 푸딩, 그리고 커피 한 잔까지.
금세 테이블이 가득 찹니다.
하지만, 굉장히 맛있어 보이네요.
츠키나가 레오:(디저트들을 굉장하다는 듯 휘 둘러보곤) 우오, 진짜 맛있게 생겼는데! 자자, 어서 먹어 스오~
스오우 츠카사:(참을 수 없다는 듯이 디저트들을 바라보며) Marvelous! 잘먹겠습니다, 레오 씨. 다음엔 제가 살테니까요!
츠키나가 레오:엑, 그거 신경쓰고 있었던 거야? 괜찮아, 이번에는 내가 사 주고 싶어서 산 거니까~, 그럼 다음에는 스오한테 좀 부탁할게? (씩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스오우 츠카사:물론이죠! 레오 씨라면 뭐든 사주고 싶은 기분이니까요... (딸기 파르페를 입에 넣으려고 한다.)
츠카사는 파르페를 한 입 가득 밀어넣습니다.
행운 판정
스오우 츠카사:
행운
기준치:
75/37/15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맛은... 맛있습니다!
디저트가 맛있기로 유명하다고 소문난 카페답네요.
츠키나가 레오:어때? 맛있어?
스오우 츠카사:(딸기 파르페를 입안 가득 넣고 음미하며) ~♪ Yes, 신선하고 달콤한 딸기랑 부드럽고 포근한 크림이 어울려져서 정말 맛있습니다! 레오 씨도 한 입 드셔보시지 않겠어요? (숟가락으로 파르페를 한가득 떠서 레오에게 내민다.)
츠키나가 레오:(맛있게 감상을 이야기하는 너를 보고 생글 웃다가, 갑자기 눈앞으로 다가온 파르페를 바라본다.) 오옷, 맛있다니 다행이야♪ 앗, 나도? 먹어도 돼? 그럼 사양 않고, 아~ (파르페를 맛있게 받아먹는다!) ...! 진짜다, 맛있어!
스오우 츠카사:후후, 역시 이 카페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맛있다는 너를 보며 웃는다.) 디저트 맛집답게 다른 디저트들도 정말 맛있어요! 레오 씨도 함께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츠키나가 레오:그러게, 소문난 카페답게 맛있는걸~ 스오도 맛있게 먹는 것 같고. 다행이야 다행! (함께 먹으면 좋을 것 같다는 네 말에 생긋 미소지으며) 그런 거야? 고마워~. 스오는 혼자서도 많이 먹으니까, 이 정도는 혼자 다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냥 보고만 있었지만? (디저트를 오물거리는 네 뺨을 장난스레 살짝 찔러보고는.)
스오우 츠카사:웃, 먹는데 그렇게 뺨을 찌르면 어떡합니까...! (그래도 좋다는 듯 웃으며) 레오 씨와 함께 먹어서 더 맛있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같이 먹고 싶어서 많이 시킨 거니까요? 레오 씨도 사양말고 드셔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츠키나가 레오:아하핫, 그래도 살살 찔렀다 뭐~? (너를 따라 푸스스 웃다가, 너의 말에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는다. 가슴 한 켠이 간질거리는 기분.) 어, 정말? 그럼... (저도 포크를 들고, 이번에는 딸기 쇼트 케이크를 떠서 너에게 불쑥 내밀었다.) 자, 스오. 아~
스오우 츠카사:앗, 저도 주시는 걸까요? 그럼 사양않고... (네가 주는 쇼트 케이크를 받아먹는다.) 으음~! 역시 이 딸기 쇼트 케이크도 엄청 맛있습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생크림이 일품이에요.
츠키나가 레오:(귀엽게 케이크를 받아먹는 널 보고 있자면, 도저히 웃음이 입가를 떠날 줄을 모르게 되어서. 저도 케이크를 한입 떠서 냠, 먹는다.) 음, 맛있다. 스오는 디저트 먹고 감상 얘기하는 거 잘하는구나? 앗, 스오의 말을 들으니 방금 인스피레이션이...♪
스오우 츠카사:Inspiration...?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저도 모르게 감상을 얘기하게 된달까요. (남은 디저트들을 마저 먹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츠키나가 레오:응, 방금 달콤한 악상이 떠올라서! 여기서는 쓸 수 없으니까 집까지 가져가야겠지만! (씩 웃으며 디저트를 같이 먹는다.) 아, 맛있었다! 배불러졌어~ 다 먹었으면 슬슬 다른 데 가 볼까, 스오?
스오우 츠카사:네! 저도 마침 다 먹은 참이니까요. 디저트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레오 씨. 그럼 다음은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요? 레오 씨는 가고 싶은 장소라든가... 없나요?
츠키나가 레오:응응, 나도 스오 덕분에 맛있게 먹었어~. (만족스러운 네 표정을 보고 슬 웃고, 주변의 그늘진 곳을 힐끔 보다가 다시 네게 시선을 돌렸다.) 므으, 글쎄다...? 스오가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 좋은데!
스오우 츠카사:(주변의 그늘진 곳을 힐끔 보는 널 보곤 물음표를 띄우며) 네, 그럼 다음은 서점에 가요!
츠키나가 레오:서점... 좋아! 스오는 책 읽는 것도 좋아했지? (고개를 끄덕이곤 빈 그릇이 담긴 트레이를 갖다 놓고 온다.) 자, 갈까~ (아까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레 네 손을 잡고 걸음을 옮긴다.)
서점
음반이나 문구까지 취급하는 대형 서점입니다.
베스트 셀러 코너, 신간 코너 등에 다양한 서적이 있네요.
가볍게 한 바퀴 둘러봅시다.
근처에 있는 코너에는 소설 서가, 역사 서가, 수험 문제집 서가 등이 보입니다.
스오우 츠카사:으음~ 역사 서가 쪽이 끌리네요.
츠키나가 레오:오, 뭔가 스오다운 선택...~ 응, 그럼 가 보자! (역사 서가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동아시아의 나라 한국의 역사서 특별 코너가 마련되었습니다.
자료조사 판정
스오우 츠카사: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상고 시대 한반도에서 출발해 유라시아 대륙 전역을 재패했다는 ‘수밀이국’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목이… <환단고기>?
흥미로운 서적입니다.
하지만 어쩐지 그다지 다시 읽고 싶지는 않군요…….
관찰력 판정
스오우 츠카사: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7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츠카사는 특별 코너 뒤쪽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책장 하나를 발견합니다.
다가가니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지 약간 그늘져 먼지가 쌓인 책이 있습니다.
스오우 츠카사:먼지가 많이 쌓여있는 책이네요. 이쪽은 사람들이 잘 찾지않는 곳이라 그런 걸까요... (책을 집어들어 펼친다.)
<세계야담집>
세계 각지의 각종 야사, 구전 등을 모은 책입니다.
총 열두 챕터가 있는데, 특히 눈길을 끄는 챕터는 2챕터입니다.
챕터 제목이 의미심장하네요.
<녹색 눈의 남자>.
그러고 보면 레오도 녹색 눈을 가진 남성이 아니었던가요?
대단한 우연은 아니겠지만 괜스레 관심이 갑니다.
마침 레오는 근처에서 다른 서가를 구경하고 있는 것 같네요.
스오우 츠카사:레오 씨도 녹색을 갖고 계셨죠. 어딘가 수상하긴 하지만... 궁금하니 한 번 읽어 볼까요. (2챕터를 읽기 시작한다.)
<녹색 눈의 남자>
스오우 츠카사:매혹적인 주황빛 머리에 밝은색 피부, 옅은 녹빛 눈동자, 날카로운 인상을 지닌 키가 다소 작은 남성... (딱 레오랑 일치하는 구문이었기 때문에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역사학 판정
스오우 츠카사:
역사
기준치:
70/35/14
굴림:
2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츠카사는 다음 장의 삽화에 주목합니다.
기록을 토대로 삽화에 그려진 남성의 옷차림이 당시의 유행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챕니다.
남성의 옷차림 쪽이 100여년 정도 뒤처져 있네요.
츠키나가 레오:스오~ 아직 여기 있었구나. 뭐 보고 있었어? (서가의 귀퉁이를 슬 살피다가 이내 네게 웃으며 다가온다.)
스오우 츠카사:으앗! 아무것도 아닙니다! (네가 다가오자 서둘러 책을 덮는다.)
츠키나가 레오:엑, 뭔데 그래? 그러면 더 궁금해지는데~? (네가 덮어버린 책을 힐끗 보다가 웃어버리곤.) 어느 정도 둘러봤으면, 슬슬 다른 데로 갈까?
스오우 츠카사:네! 다른 곳으로 가요. (책을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꽂아두고 자연스럽게 네 손을 잡는다. 이 책의 내용은 잊어버리는게 좋을까.. 고민하면서)
츠키나가 레오:(자연스레 제 손을 잡아오는 너의 손에, 적당히 힘을 실어 잡는다.) 좋아. 모처럼 휴일이니까, 길거리라도 둘러보러 갈까?
스오우 츠카사:좋습니다, 오늘은 날씨도 좋으니 밖에서 돌아다니고 싶네요♪
츠키나가 레오:응응, 그러자! 재밌는 게 있을지도 모르고~. 그럼 출발~ (잡은 손을 붕붕 흔들고, 서점 구석을 슬 살피다가 이내 너를 데리고 서점 밖으로 나간다.)
길거리
여러 노점과 가게가 줄지어 선 번화가입니다.
가끔은 화려한 거리를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되죠.
수많은 이들이 두 사람 주변을 흘러갑니다.
레오는 말없이 그저 걸음을 옮기고만 있을 뿐입니다.
곁에서 걷는 레오와 손등이 스칩니다.
세상은 이토록 소란스러운데, 레오와 츠카사만이 고요 위를 걷는 것만 같습니다.
왠지 말을 쉬이 꺼내기 어려운 침묵이 감돕니다.
바짝 마른 초여름 공기.
도심 속인데도 녹음 냄새가 나는 것만 같이…….
그러다가, 레오가 츠카사의 손을 잡아 왔습니다.
손가락끼리 얽혀 깍지를 낍니다.
놀라 돌아보니 얌전하게 오르내리는 속눈썹이 먼저 보입니다.
츠카사는 마주친 시선에 서린 수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날카로운 고독에 사로잡힌 듯한 레오,
츠카사를 바라볼 때마다 가장 부신 것을 관찰하는 사람처럼 눈을 깜빡이는…….
이 어색한 순간, 츠카사는 호흡과 맥박이 동시에 빨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죠?
어쩐지 안절부절 못하겠습니다!
그때, 눈을 굴리던 츠카사의 시야에 뭔가가 들어왔습니다.
공연 중인 버스커,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그리고 그 옆에 거리 화가가 한 명 있습니다.
캔버스를 앞에 두고 뭔가를 열심히 그리다가,
츠카사와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으며 다가오라는 손짓을 합니다.
호객 행위인 게 분명하긴 한데, 묘하게 초조해지는 이 분위기를 깨기에는 적격의 타이밍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스오우 츠카사:(조심스럽게 화가를 향해 걸어간다.)
츠키나가 레오:응? 스오, 어디 가? (아직 맞잡고 있던 네 손이 잡아당겨지는 걸 느끼곤 네 쪽을 돌아본다.)
스오우 츠카사:(네가 돌아보자 멈칫하며) 앗, 저기... 저 화가 분께서 오라고 손짓하고 계시길래...
츠키나가 레오:화가? (순간적으로 네 시선을 따라 화가에게 눈길을 돌렸고.) ...아아, 그런 거구나! 말도 없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서 놀랐다구? 응, 그럼 가 볼까? 재밌을 것 같네!
스오우 츠카사:아! 말도 없이 멋대로 행동해서 죄송해요, 레오 씨. 네! (화가를 향해 다시 걸어간다.)
츠키나가 레오:흐흥, 괜찮아~. (손을 맞잡은 채 함께 화가에게로 향한다.)
중년 여성으로 보이는 화가는 두 사람에게 간이 의자를 권합니다.
얼결에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지만,
붙임성이 아주 좋은 화가의 화술 덕인지 이것도 재미있는 경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화가:(종이에 빠르게 스케치를 하다가, 츠카사를 바라보았다.) 예쁜 청년들이 왔네~ 근데 둘은 무슨 사이야? 아까도 손을 꼭 잡고 이리로 오던데. 그냥 친구야~?
스오우 츠카사:(친구... 그러고보니 레오 씨랑 나는 10년지기 절친이라고 했었지...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화가:어, 그래? (의외의 대답이라는 듯한 눈빛으로.) 그냥 친구라기엔 엄청 사이 좋아 보이길래, 사귀는 사인가 했는데. 아니야~?
츠키나가 레오:(화가의 질문에 작게 웃으며, 넌지시 너에게 시선을 돌렸고.) 아하핫, 으음. 글쎄요~?
(To GM): (...그냥 친구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어 조금 애매한 웃음을 띄웠고.)
스오우 츠카사:(화가의 질문과 네 시선을 받곤 곤란해하며) 그러게요... 우리는 어떤 사이인 걸까요, 레오씨. 10년지기 친구... 라고 하기엔 묘한 이질감이 들기도 합니다.
츠키나가 레오:(네 말을 듣고 잠시 눈을 깜빡이다, 작게 웃어보였다. 그저, 말갛게 미소만을 띄운다.) ...응, 그렇네. 10년지기 친구지, 우리는~.
화가:어머, 10년? 엄청 오래 됐네. 그래서 그렇게 친해 보였나?
적당히 앉은 두 사람을 스케치하며 화가는 여러 곤란한 질문을 농담과 섞어 던지곤 합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츠카사 쪽의 스케치가 먼저 완성되어 종이를 건네받았습니다.
화가:자, 빨간 머리 친구 거 다 됐어~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특징을 잡아 아주 잘 그린 그림이네요.
레오에게도 보여줍시다.
스오우 츠카사:Excellent! 훌륭한 그림이에요! 정말 저랑 똑같이 그려주셨습니다. 레오 씨도 보시지 않겠어요? (화가에게서 건네받은 스케치 종이를 너에게도 건네어 보여준다.)
스오우 츠카사:레오씨...? (울었단 듯이 눈가가 빨개진 너를 가만히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감정에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괜찮으신 건가요?
츠키나가 레오:...스오, (그제야 너와 시선을 마주하고, 잘게 떨리는 손을 몇 번 쥐었다 펴기를 반복한다.) ...아니야, 괜찮아. 가자, 스오. 이 그림... 잘 간직해 줘. 절대 잃어버리지 말고, 찢어지거나 그림이 상하지도 않게... ...알았지?
스오우 츠카사:물론입니다! 정성스럽게 그려주신 그림인걸요. 앗, 화가분 감사인사가 늦었네요, 멋진 그림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떨어진 그림을 황급히 주워들고 어쩐지 이상한 상태인 너에게 다가간다.)
츠키나가 레오:... (너를 따라 화가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곤, 애써 떨리는 기색을 지우고 다가온 너의 손을 잡았다.) ...응, 꼭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잘 가지고 있어야 해...?
스오우 츠카사:걱정하지 마세요, 레오 씨.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잘 갖고 있을 테니까요. (너의 손을 맞잡으며 걱정 말라는 듯이 살풋이 웃는다.)
츠키나가 레오:...응. 스오라면 잘 관리할 수 있을 테니까.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약속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듯이,
레오는 몇 번이고 확답을 듣고서도 안심하지 못해 츠카사가 아무리 다짐을 해도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이 그림의 무엇이 레오를 이렇게까지 흔든 것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일어나 장소를 옮겼습니다.
다시 걸음을 옮기던 그때, 레오가 갑자기 츠카사의 손목을 잡아챘습니다.
레오는 몇 발짝 뒷걸음질을 치며 츠카사를 잡아끄는가 싶더니 자리에 멈춰 섭니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는 시선은 어딘가 단단히 고정되었고,
침착을 유지하려 애쓰는 표정 너머로 공포가 어려 있었습니다.
츠카사는 자연스럽게 레오의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려 봅니다.
아니, 저게 뭐죠?
레오의 뒤쪽 방향, 한 블록 너머 거리 구석에서 검은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화재라도 발생한 걸까요?
다시 츠카사를 향해 몸을 돌린 레오는 코너에 몰린 듯한 태도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러는 동안 연기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어떤 형체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이글거리는 눈, 박동하는 푸른 피부를 가진 이계의 공포,
불쾌한 역관절, 미끈거리는 표면,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지나치게 선명한, 뒤틀려 굽은 등뼈…….
원시적인 공포가 전신을 훑고 말초를 통과해 흘러나갑니다.
기괴하게 번쩍이는 안광이 무엇인지, 누구의 것인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야 들리기 시작한 숨소리는 당신이 전혀 겪어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기능하는지 되삼키고 뱉는 기척이 메스껍기 그지없습니다.
도저히 지구에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생물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외형입니다.
저 끔찍한 것을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걸까요?
연기는 계속해서 뭉치며 머리부터 몸통, 징그러운 꼬리까지 하나의 외형을 다듬습니다.
역겨울 정도로 괴롭습니다!
이성치 판정 1/1D3
스오우 츠카사:
SAN Roll
기준치:
74/37/14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1
츠카사는 비틀거립니다.
저 생물이 지금 레오를 또렷하게 겨냥하고 다가오고 있는 것이 맞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레오가 츠카사의 양 뺨을 감싸 쥡니다.
충격에 빠진 츠카사의 시선을 자신 쪽으로 돌려놓더니,
어…….
레오가, 츠카사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흔히들 키스를 하면 귓가에 종이 울린다거나 시간이 멈춘 것 같다고들 하지만,
포옹은 그냥 포옹이고 입맞춤은 그저 입맞춤입니다.
여전히 세상은 바쁘게 흐르고 설령 두 사람에게 행인들의 눈길이 머무른다 한들 잠시일 뿐입니다.
그러나…
레오가 츠카사를 껴안은 채 입술을 맞물린 동안,
금방이라도 이곳으로 튀어오를 듯했던 저 역겨운 생물들은 주변을 마구 두리번거리다 도로 연기로 녹아 사라졌습니다.
어째서?
또렷한 시선이 마주칩니다.
분명 레오는 울지도 웃지도 않지만,
둥글게 솟은 뺨에 고였다 흘러 떨어지는 눈물 같은 회한을 츠카사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키스에 응할지, 밀쳐 떨어트릴지는 온전히 츠카사의 몫입니다.
스오우 츠카사:.... (방금 있었던 일에 정신이 혼미했지만 내게 입맞춰 오는 너를 차마 밀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더 꼬옥 껴안는다.)
츠키나가 레오:... (당황스러웠을 텐데, 이게 뭐냐고 밀쳐내며 화낼 법도 한데. 오히려 저를 더 깊게 끌어당기는 네게 껴안기며, 겹쳤던 입술을 조금 더 짙게 누른다. 너에게 응하는 듯, 아니. 어쩌면 기다렸다는 듯, 짐짓 애타는 움직임으로 너를 마주 끌어안은 채 열기 어린 숨결을 섞었다.)
스오우 츠카사:.... (이 상황이 이해하기 어렵고 당황스러웠지만 제 품에 안겨있는 이 사람이 굉장히 불안정해 보여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서... 힘 주어 너를 안아버렸다. 그러자 조금 더 짙게 입술을 겹쳐오는 너였기에 머릿속은 금세 텅 비어버렸고 오로지 너로만 가득 찼다.)
츠키나가 레오:(머리로는 안 된다고 알고 있는데, 힘을 실어 저를 안아오는 네 손길이 그저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저를 붙들어주는 것만 같아서. 맞닿은 입술 사이의 열기로, 하려던 말이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녹아간다. 있지, 스오. 나는. ...얼마나 그렇게 숨을 섞고 있었을까. 겹쳐진 입술을 떼고 살며시 끌어안은 팔을 풀었다. 바스라질 것 같은 눈빛이 이상하리만치 깊다. 그런 눈으로 너를 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려버린다.) ...미안, 스오. 멋대로. ...가자.
잠시 후 레오는 물러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짓이냐거나, 방금 뭐였냐고 아무리 캐물어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습니다.
이 입맞춤이 어떤 의미였는지는 전혀 말하지 않으려 듭니다.
대체 그 짐승들은 무엇이었을까요?
레오 역시도 그 생물들을 목격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것을 처음 본다는 기색도 아니었습니다.
그때 레오가 나타낸 반응은 미지의 무언가를 최초로 목격하고 놀란 이의 난색이 아니라,
이미 아는 공포를 다시 맞닥뜨린 사람의 공포였으니까요.
어느덧 점차 날이 어두워지며 하루가 마무리됩니다.
함께 돌아가는 길 내내 레오는 어딘가 생각에 잠긴 듯한 태도를 보입니다.
츠카사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면서도,
신경 한쪽은 자꾸 다른 곳에 쏠려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머리가 복잡합니다.
지능 판정
스오우 츠카사: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3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학교 선생님 중, 오컬트나 외계생물 등에 관심이 있는 교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떠오릅니다.
혹시 그 선생님이라면 오늘 목격한 기이한 현상이 무엇인지 조언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어라?
문득, 츠카사는 자신의 휴대폰이 없어졌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정신이 없는 와중 무심코 놓고 온 걸까요.
스오우 츠카사:앗, phone이 사라졌습니다! 하아, 하필 이런 timing에...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젓는다.)
스오우 츠카사:으음, 아무래도 저번에 저희가 갔던 서점에서 놓고 온 것 같습니다. 다시 가서 가져와야 할 것 같네요. (시무룩한 표정을 하며) 누가 이미 가져간 건 아니겠지요...?
츠키나가 레오:서점인가~. 지금은 시간이 늦어서 이미 문을 닫았을 것 같은데. 걱정 마, 내일 바로 가 보면 있을 테니까! 응? (시무룩해진 너의 머리를 살살 쓸어준다.)
스오우 츠카사:네. 그럼 좋겠네요. 내일 바로 가보도록 하죠! (머리를 쓸어주는 널 보며 웃는다.)
츠키나가 레오:응응, 착하지. (머리를 몇번 더 쓰담다가, 문득 아까의 일을 떠올려 버린다. 뒷맛이 쓴 느낌에, 천천히 손을 내렸고.) ...아, 스오네 집 다 왔다. 오늘 재밌었어, 내일 학교에서 봐? (살풋 웃으며 네게 손을 흔들었고.)
스오우 츠카사:내일 봬요, 레오 씨. 저도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너를 마주보고 웃으며 손을 흔든다.)
어찌 됐든, 복잡한 일들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쉬는 게 좋겠습니다.
피곤한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
다음날 등교한 츠카사는 어제 떠올린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러 갑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선 조금 바쁘신 모양이네요.
그래도 평소 친절하셨던 분이니 믿고 말을 걸어 볼까요?
스오우 츠카사:선생님, 저 여쭤볼게 있는데 지금 시간 괜찮으실까요?
선생님:응? 아, 스오우 군이구나. 잠깐이라면 괜찮을 거야. 무슨 일이니?
스오우 츠카사:그게... 어제 제가 이상한 걸 봤는데... 음,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뭔가 연기같기도 하고 되게 역겹게 생긴.... 혹시 그런 생물체 알고 계신가요?
선생님께선 흥미를 보이며 츠카사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십니다.
선생님:그랬구나... 그런 괴물의 이야기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보다시피 지금은 처리할 일이 많아서 길게 이야기하기가 어렵네.
대신, 관심이 있다면 빌려줄 테니까 이걸 읽어보는 게 어떻겠니? 아마 도움이 될 거야.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오래된 책 한권을 츠카사에게 건네주셨습니다.
책의 겉표지에는, <괴물들과 그 일족들 : 축약 번역본>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스오우 츠카사:...! 감사합니다! 열심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책을 받아들고 선생님께 인사하며 복도로 나와서, 아무도 없는 교실로 들어가 책을 펼쳐본다.)
책을 펼쳐봅니다.
열람시 크툴루 신화 기능 +1, 오컬트 기능 +3
자료조사 판정
스오우 츠카사: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2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책장을 넘기던 도중, 눈에 띄는 페이지를 찾아냅니다.
틴달로스의 사냥개들
스오우 츠카사:그렇군요! 제가 어제 봤던 생명체는 아마 이 생명체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지능 판정
스오우 츠카사: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2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불현듯 이런 의문을 건져 올립니다.
어제 자신이 목격한 그것이 이 정체 모를 생물이라면,
그것들이 쫓는 레오는 혹시……
-
그날은 레오와 츠카사가 따로 하교했습니다.
며칠 내내 같이 가자고 달라붙더니,
갑작스럽게 ‘오늘은 일정이 있다’며 먼저 훌쩍 사라져 버려 조금 의아했죠.
하지만 레오에게도 스케줄이란 게 있을 테니, 뭐 이상한 일은 아닐 겁니다.
한편 츠카사는 어제 휴대폰을 놓고 온 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거리를 지나다 보니 어제 으스스한 무언가를 목격했던 장소도 지나게 되었네요.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정말 헛것을 본 게 아닌 걸까요?
게다가, 그 직후에 레오와……
……심란하니까 이 생각은 떨쳐 버립시다.
어, 그런데…
저기 앞에서 바쁘게 걷는 사람은 레오가 아닌가요?
스오우 츠카사:핫, 레오 씨! (큰 소리로 너를 부르며 네게 달려간다.)
츠키나가 레오:...우왓?! 스, 스오? (큰 소리로 저를 부르며 달려오는 너의 모습에 화들짝 놀란다.) 무슨 일이야, 그렇게 크게 소리치고...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눈이 마주친 레오는 놀라는가 싶더니 츠카사에게 인사를 합니다.
츠카사를 쫓아온 건 아닌 듯하고, 정말 우연히 만난 기색이네요.
스오우 츠카사:반가워서 그렇죠. 부르지도 못합니까! 레오 씨야말로 어디를 그렇게 바쁘게 걸어가고 있는 건가요? 오늘 있다는 일정이랑 관련 된 걸까요? (곰곰히 생각한다.)
츠키나가 레오:그, 그런 건 아니지만... 갑자기 부르니까 놀라서 그렇지! 므므~. (어깨에 힘을 빼고 널 향해 가만히 웃어보인다. 어제의 입맞춤 때문에 어색할까 걱정했는데, 그런 것은 신경쓰지 않는 너의 모양새에 자연스레 웃음이 지어지고.) ...응, 맞아. 볼일이 좀 있어서... 스오는 어디 가?
스오우 츠카사:(웃는 너를 보고 마주 웃으며) 저는 저번에 레오 씨에게 말했던 서점에 놓고 온 phone을 가지러 가고 있습니다.
츠키나가 레오:...어? (너의 말을 듣고 눈을 도륵 굴리다가, 조금 붕 뜬 듯한 투로 대답한다.) 아, 맞아. 스오 휴대폰 서점에 두고 왔었지~. ...우연이네. 나도 서점 가는 길인데.
스오우 츠카사:정말입니까!? 그럼 같이 가죠. (너와 행선지가 같아 들뜨며 말했다.) 마침 혼자라 심심했던 참입니다.
츠키나가 레오:아하하, 심심했어? 응, 그럼... 같이 가자. (네 말에 풋 웃어보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행선지가 겹친다는 것을 알면 레오는 조금 난처해하지만,
어쨌든 방향이 같으니 별수 없이 동행하게 됩니다.
레오, 어제도 그랬지만 오늘도 좀 이상합니다.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고,
휴대폰에 뭔가 장치 같은 것을 끼워 몇 걸음 옮길 때마다 액정을 뚫어져라 살펴봅니다.
뭘 하는 거냐고 물어도 얼버무리거나 웃어넘길 뿐 대답을 해 주지 않습니다.
다만 대단히 중요한 일중이라는 태도라 차마 방해할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우선 츠카사는 휴대폰이 더 중요하니 의문은 잠시 미뤄 두고, 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게 좋겠군요.
잠시 후 두 사람은 서점에 도착합니다.
안내데스크, 계산대 등에 문의해 휴대폰을 찾을 수 있습니다.
스오우 츠카사:(안내데스크로 간다.) 저, 어제 여기서 제 phone을 놓고갔습니다만, 제 phone을 찾을 수 있을까요?
츠카사의 말을 들은 안내데스크 직원은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곧 츠카사의 휴대폰을 들고 돌아옵니다.
다행히 분실물로 들어와 있었다고 하네요.
직원이 건네주는 휴대폰을 받아 돌아서자, 용건에 집중하느라 둘러보지 않았던 서점 내부가 그제야 눈에 들어옵니다.
어제 방문했을 때와 대단히 달라진 건 없지만,
평소 작가 사인회나 토크 콘서트 따위를 열던 중앙 무대에 오늘은 공개 라디오 팟캐스트 코너가 설치된 모양입니다.
그런데 코너 옆에서 레오가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초조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시계를 보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고…….
뭘 하는 걸까요?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이젠 흡사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 안절부절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휴대폰을 보고, 시계를 보고,
츠키나가 레오:이제 4분......
...같은, 이상한 말도 중얼거립니다.
아무래도 뭔가를 기다리는 듯한데, 대체 뭘 저렇게 간절하게 기다리는 거죠?
한편 오픈형 라디오 부스에서는 진행자들이 서점 이용객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시도하는 중입니다.
주제가 영 시덥지 않네요.
이 순간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 같은 것을 묻고 있습니다.
캠페인이라도 하는 건지… 딱히 흥미가 생기는 화두는 아닙니다.
그런데 그때,
츠키나가 레오:......스오?
뒤늦게 다시 츠카사를 발견한 레오가 말을 걸어옵니다.
그리고 다시 휴대폰을 보고,
두 사람이 서 있는 위치를 보고,
시계를 보고,
츠카사를 봅니다.
레오는 마치 불을 붙이자 순식간에 타오르는 휴짓조각처럼 안색이 변합니다.
낯빛이 새하얘졌다가 시퍼레졌다가,
낭떠러지 바로 앞에 서서 바람을 맞는 사람인 양 숨을 크게 들이켰습니다.
대단히 큰 충격을 받은 듯하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사랑에 빠진 듯도 하고,
어둡게 빛을 발하는 깨달음에 빠진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평범한 이로서는 도저히 다 헤아리지 못할,
거대한 시간이 쌓여 만든 고독 같은 것이 거기 있었습니다.
그는 떨리는 입술을 엽니다.
그리고 몹시도 사무치는 어조로 애원합니다.
츠키나가 레오:...스오,
정말 간절한 부탁이야.
지금 저기에 가서, '나를 만나러 와' 라고 말해 줘.
그리고 그는 떨리는 손으로, 라디오 팟캐스트 코너를 가리켰습니다.
인터뷰에 응하라는 건가요?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일까요?
하지만 레오는 절대 장난 같은 것을 치는 눈빛이 아닙니다.
츠키나가 레오:이제 2분밖에 안 남았어, 제발......
다시 한 번 뜻모를 말로 절박하게 매달려 옵니다.
어떻게 할까요?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간절하게 부탁하는데, 우선 시키는 대로 하고 볼까요?
아니면 라디오 방송 따위에는 관심이 없으니 이 뜬금없는 요청을 거절하고 돌아설까요?
스오우 츠카사:.... (간절히 부탁하는 너를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이미 라디오 팟캐스트 코너에 있었다.)
츠카사는 레오의 부탁을 들어 주기로 결정합니다.
인터뷰를 하려면 진행자에게 다가가 참여 의사를 밝혀야 합니다.
스오우 츠카사:저, 이 라디오 캐스트 인터뷰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떨리는 목소리 대신 주먹을 꾸욱 쥐곤 진행자에게 말했다.)
라디오 진행자:오, 네네! 어서 오세요~ (마이크를 내밀고는) 여기다 대고 말해 주시면 됩니다. 새로운 참가자 분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스오우 츠카사:제 이름은 스오우 츠카사입니다.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라디오 진행자:그렇군요~ 스오우 씨, 나이랑 직업은 어떻게 되시죠?
스오우 츠카사:나이는 17살이고 직업은 학생입니다!
라디오 진행자:오, 학생 분이시군요. 네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자유롭게 발언하셔도 됩니다! 스오우 씨는 지금 이 순간, 소중한 사람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으신가요?
영문을 모르겠지만, 지금이 그때인가 봅니다.
스오우 츠카사:저는... 츠키나가 레오 씨에게... (마이크를 잡은 손이 떨렸다. 손에서 땀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앞에서 날 보고 있는 너를 위해...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었다.) 레오씨, 나를 만나러 와주세요.
나를 만나러 와 주세요, 라고, 츠카사가 말합니다.
근처에 선 레오는 이 순간 어떤 어휘로도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저항하지 못할 재해에 휩쓸린 부표처럼 떨면서도,
이 세계에 단 하나뿐인 소실점이 있다면 그것은 츠카사라는 양 당신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희열이 뒤범벅된 어떤 감정에 새롭게 이름을 붙여야 할 때 그 명명에는 단숨에 츠카사의 이름을 가져와야 마땅하다는 듯이…….
그러나 그 까닭 모를 환희 너머로,
츠카사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습니다.
검게 뭉쳐 거꾸로 흐르는 듯한 연기가 책장과 바닥이 이루는 90도의 모서리 각에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잊지 못할 바로 그 형체를 서서히 갖추기 시작합니다.
오로지 츠카사만을 바라보고 있는 레오는 아직 자신의 등 바로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죠?
이제 뚜렷하게 머리 형태를 만들어낸 그 생물이 레오를 잡아 삼킬 듯 노려봅니다!
스오우 츠카사:레오씨...!! (그 생물이 너에게 다가오기 전에 너를 향해 서둘러 뛰어갔다. 그리고 너를 품에 안았다. 따스한 너의 온기가 전해져왔다. 그리고, 저 생물이 너를 삼켜버리지 않도록... 너를 데려가지 못하도록 네게 입을 맟췄다.)
츠키나가 레오:... ...!
츠카사는 황급히 레오를 끌어당겨 입을 맞춥니다.
영원처럼 찰나가 흐르고,
너무 놀라 굳은 레오는 뒤늦게야 자신의 등 뒤에서 배어 나온 죽음 같은 연기를 발견합니다.
츠키나가 레오:...아, 안 돼!
그 순간 레오가 츠카사를 거세게 밀쳤습니다.
그러나 이미 검은 연기는 도로 뭉그러져 사라진 후.
레오는 주저앉아 얼굴을 감싸고 맙니다.
츠카사가 이유를 물어도 답하지 못하고 ‘안 돼’, ‘이럴 수는’ 등의 말을 중얼거리던 그는,
문득 고개를 들어 공포 어린 눈으로 츠카사를 보았습니다.
시선이 얽히자, 츠카사가 별달리 진정시키지 않아도 레오는 서서히 떨림을 가라앉힙니다.
이윽고 두려움이 가신 자리에 새로 떠오른 감정은, 결의.
레오는 천천히 일어나 자신의 힘으로 바로 섰습니다.
그리고 츠카사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츠키나가 레오:그래, 어쩌면 시작부터 이렇게 될 거였나봐. ...스오, 내게 잠깐만 시간을 내 줄래? (조금 씁쓸한 기색이 어린 표정으로, 너에게 살풋 미소지었다.)
츠키나가 레오:...응, 스오는 모르는 게 당연해. 괜찮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두 설명해 줄게. 그러니까. (어제 함께 시내를 돌아다닐 떄처럼, 너에게 다시금 손을 내밀었고.)
스오우 츠카사:...? (복잡한 표정으로 너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고 레오는 츠카사를 어떤 빌딩 옥상으로 이끌었습니다.
-
이미 날은 어두워져 어느덧 밤,
달조차 뜨지 않은 날 가로등과 헤드라이트 조명이 세상을 비춥니다.
도시 야경이 단번에 눈에 들어오는 꼭대기 층입니다.
시리게 아름다운 풍경이 눈물처럼 번지고 있었습니다.
난간을 짚은 레오는 오랜 기간 쌓인 이야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츠키나가 레오:(수북한 기억의 더께에서, 아주 작은 보물 하나를 꺼내듯이. 소중하면서도 회한이 어린 그것을, 그 기억을 조심스레 입에 담는다.) 있지, 스오. 실은 나... 아주 먼 미래에서 왔어.
스오우 츠카사:...네. (조용히 너의 이야기를 듣는다.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드디어 너에 대해 알 수 있게 될 지도 모르겠다.)
츠키나가 레오:(덤덤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너를 보곤 살며시 미소짓고선, 말을 이었다.) 정말 먼 미래야. 기술도 무척 발전하고, 생명이 수백 수천 년 단위로 연장되어 있는 그런 미래 말이야. 상상할 수 있겠어?
...그렇지만 스오, 그런 시대에도 늘 부의 차이는 존재하고, 그것이 권력이 되어서 많은 것들을 결정지어.
나는 거기서 썩 좋지 않은 위치에 있었어.
가난하고, 하루하루를 그저 버티고 넘기기에 바빠서 다른 잡다한 것들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살았지. 그러다가.. 어느 날에, 우연히 박물관에 가게 되었다가 오랜 옛날에 그려졌다는 초상화 한 점을 보게 됐어.
스오우 츠카사:초상화요?
츠키나가 레오:...응. (짐짓 고개를 끄덕이고.) 그걸 보는 순간에, 뭐라고 할까. 처음으로 가슴이 뛰는 걸 느꼈어. 종이는 오래 되어서 누렇게 빛바래 있고, 그림을 그린 재료는 그저 수수한 목탄 연필일 뿐이었는데...
내게는, 그 오래된 그림이 너무나도 따뜻해 보였거든.
사람이 이유 없이 설레기도 할 수 있구나, 하는 걸 그때 알았어.
한동안 그 그림에 정신을 빼앗겨서 잊지 못하고 지내다가, 며칠 후에 별 생각 없이 라디오를 틀었어. 신기하겠지만 그 시대에도 라디오는 명맥을 잇고 있거든.
그런데 그 라디오가 갑자기 발신 불명의 전파 하나를 잡아냈어. 백색소음 같은 게 지지직거리고, 거기서 드문드문 들려온 건... 분명한 옛 언어였지.
'나를 만나러 와 주세요', 라고 하는.
스오우 츠카사:엣! 그건, 제가 라디오 캐스트 인터뷰에서 했던 말....
츠키나가 레오:(살풋 웃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문득 생각하게 된 거야. 그 라디오 전파와 내가 봤던 초상화는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하고.
그때부터 수없이 계산을 해서 알아냈어. 초상화가 그려진 연도와 같은 해인 2052년에, 그 라디오 전파가 쏘아 올려졌다는 걸.
그걸 알아냈을 때쯤에는, 조금 우스울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그 오랜 옛 시대에 마음을 뺏겨서 말이야. 우연히 신과 대담을 하게 됐고, 그래서 과거로 와서... 스오 너를 만났어.
스오우 츠카사:....정말 놀랍네요.
츠키나가 레오:(곤란한 듯 작게 웃었다.) 그런데 실수로 너무 오래 전의 과거로 가 버려서, 스오 네가 환생하는 걸 143번이나 지켜봤지 뭐야. 방금 내가 만났다고 한 너는, 까마득한 옛 전생의 너.
나는 계속해서 너의 환생과 만났고, 그때마다 널 사랑했어. 뭐어. 친해지고 나서 헤어지고,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아픈 적도 많았지만... 스오 너와 사랑하며 보냈던 날들은 모두 무척 따뜻하고, 다정하고... 사랑스러웠어.
그리고, 네 144번째 생에서 맞이한 2052년 올해. ...그러니까 바로 어제에서야 겨우 깨달았어.
내가 과거이자 미래에 보았던 초상화는, 거리에서 우리가 함께 받았던 너의 초상화였다는 걸.
아까 그 라디오 메시지도 마찬가지였어. 스오 네가 말해주었던 '나를 만나러 와 주세요' 라는 말은... 결국 네가 미래의 나에게 미리 보내주는 인사였던 거야.
이 믿기지 않는 말을 듣습니다.
받으려 한 적도 없던 그의 숨과 미래가 본래 츠카사 자신의 것이었다는 말을,
츠카사가 레오를 창조한 신이나 다름없다는 찬사를…….
너무나 길고 이제는 기억조차 흐려졌을 머나먼 과거와 미래의 이야기인데도 막힘이 없습니다.
장구한 역사를 설명하는데도 망설이지 않고 매끄러운 구조를 지닌 문장들.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 레오는 씁쓸하게 웃으며 덧붙입니다.
츠키나가 레오:이런 설명을 아주 예전에는 자주 했었지. 그런데 나는 언제부턴가 네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는 일을 그만두게 됐어. 듣고 나서 네가 너무 슬퍼했거든…….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하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네. (겨우 말을 마친 끝에, 후련하면서도 쓸쓸한 표정을 하고 너를 바라보았다. 맑은 녹안이 시리게 빛나고 있다.)
스오우 츠카사:꺼내기 쉽지 않은 말이었을텐데, 제게 이렇게 자세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오 씨. 저는 이제서야 제대로 레오 씨를 알게 된 느낌이네요. (너의 맑은 녹색 눈동자를 가만히 내려다 보다 깜깜한 밤하늘을 보았다.) 레오씨가 있던 머나먼 미래는 어떤 곳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츠키나가 레오:나야말로, 늦게 말해서 미안. ...별로, 신기하기야 하겠지만 썩 좋은 미래는 아니야. (씁쓸히 웃고는 너를 바라본다. 애정이 듬뿍 서린 시선이 너를 향하고,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너의 뺨을 쓰다듬는다.) 내가 계속 그 미래에 머물러 있었다면, 스오 너도 만나지 못했을 거고... 여러 가지 행복도 알지 못했을 거야.
그 미래에서는 차마 느끼지 못했던 기쁨이나 슬픔, 행복, 사랑, ...그런 걸, 과거로 와서. 너를 만나면서 느꼈으니까. 그러니까, 고마워. 스오.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묘하게 떨리고 있었고.)
스오우 츠카사:(뺨을 쓰다듬는 너의 손을 겹쳐잡으며) 아니요. 저야말로 레오 씨를 만나서,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분명 레오씨는 저의 143번쨰 전생을 모두 지켜보았다고 했죠. 143번째 전생에서도, 그리고 이젠 저의 144번쨰 전생에서도 그랬듯이 츠카사에게... 스오우 츠카사에게 행복과 사랑 뿐만 아니라 모든 감정들을 알려주었을 거예요.
레오 씨가 미래에만 있었다면 저도 이런 감정들을 알지 못했겠죠. 제가 찾으러 와달라고 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레오 씨.
츠키나가 레오:(제 손을 잡아오는 온기와 너의 상냥한 말에 어쩐지 울컥, 날것의 감정이 치밀어 올라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너이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겠지만, 반대로. 이렇게나 다정한 너이기에. 겹쳐진 너의 손을 꼭 마주잡았다.) ...그랬을까. 먼 과거부터 지금까지 거슬러 오면서... 너는, 나 때문에 힘들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었는데.
스오우 츠카사:저는 레오 씨가 있었기에 모든 생을 외롭지 않고 행복하게 보냈다고 장담할수 있습니다. 레오 씨 때문에 힘들기도, 아프기도, 울기도 많이 울었을지도 모르지만요. 그래도 츠카사는 레오 씨를.... 사랑하고 있어요. (벅차오르는 담정에 눈물을 살짝 머금고 너를 껴안았다.) 우리가 함께 보낸 모든 날들은 레오 씨의 말대로 무척 따스하고, 다정하고, 사랑스러웠겠죠. 전부 레오씨가 절 만나러 와줬기 때문입니다. 그 역겹고 끔찍한 생물에게 잡혀 먹힐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말이예요. 저는 그런 당신이 정말...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좋아해요, 레오 씨. 사랑합니다....
츠키나가 레오:...아, (얼빠진 목소리로, 감탄인지 신음인지 모를 것을 흘려내고. 그러고 나서야 자신에게 와닿은 이 사랑스러운 온기를 절절히 받아들인다. 데일 것처럼 뜨겁지만, 목구멍을 가득 채우고 한없이 울음이 올라와서 너무나 아프지만. 그럼에도 미소가 지어지는 까닭은, 이것이 저를 향한 너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 먼 시간을 돌고 돌아 드디어 닿은, 내가 사랑한 과거이자 미래의 너. 그런 네가 속삭여주는 사랑이 이렇게나 달고 따스하다는 걸 알았으니까, 응. 이젠 이걸로 된 거라고. 저를 껴안는 너의 등을 힘껏 마주안았다. 저와 비슷한 체구의, 조금 단 체향이 나는 적당히 마른 몸. 내가 사랑한 너를 온 힘을 다해 느끼고, 벅차오른 울음이 끝내 새어나오고 만다.) ...너는 정말, 이상한 아이야. 그 오랜 옛날부터,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몇 번을 다시 사랑한다고 말해오고. 나한테 그렇게 웃어주고, 지금처럼... 모든 사실을 다 알고 나서도, 나를 안아줬어. 오히려, 그래서야 스오. 네가 그런 사람이니까, 그렇게 이상하고 또 그렇게나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으니까, 위험을 무릅쓰고 너에게 올 수 있었던 거야. 나도, 정말 사랑해 스오. 고마워. ...정말로.
(어느새 눈물로 얼룩져 버린 얼굴을 슬 닦아내곤, 천천히 팔을 풀었다.) ...그러니까, 난 이제 너를 위해 움직일 거야.
츠키나가 레오:(아까까지 울고 있었던 탓에, 호흡을 잠시 정리하고 너를 마주했다.) ...아까 봤던 괴물, 그러니까... 틴달로스의 사냥개들은, 시간 여행자를 도우려 하는 동료마저도 추적해 와.
지난 여러 번의 생에서, 이미 스오 너는 날 여러 번 그 녀석들에게서 구하려 하다 큰 위험에 빠질 뻔했었고.
그래서 이번 생에서는 틴달로스의 사냥개들에게 너를 연관시키지 않으려 했지만, 아까 서점에서 했던 그 입맞춤 때문에... 이제 너도 그들에게 추적당할 수 있게 됐어.
네가 다치거나 죽으면… 나는 다음 생의 너를 만날 때까지 또 기다리면 돼, 스오. 괴롭고 지루해도 익숙하니까, 그리고 애초부터 내가 선택한 거니까... 이번에도 견딜 수 있어.
하지만… 너에겐 이번 삶이 처음이고 마지막이잖아. 한 번 위험에 처하면 그 다음은 없는 거잖아… 그리고, 살아오는 내내 그런 생각이 멈추질 않았어, 어쩌면 네가... 나와 얽혀서 불행해지는 건 아닐까, 하고… (옥상의 난간 근처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난간 근처에 선 레오는,
그것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있는 줄도 몰랐던 괴로움을 어느 정도 덜어낸 듯이 후련한 얼굴로 츠카사를 돌아보았습니다.
츠키나가 레오:(아직 촉촉히 젖은 눈으로 너를 돌아보았다.) 그 초상화, 꼭 잘 간직해 줘야 해. 그래야 먼 나중에 내가 또 너를 만나러 오잖아. …그게 싫다면, 뭐, 버린대도 어쩔 수 없고.
스오우 츠카사:네...? 아, 당연합니다! 레오 씨가 절 만나러 올 수 있게 해 준 이 소중한 초상화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제가 지켜낼 겁니다! 레오 씨가 언제든지 절 만나러 올 수 있게... (틴달로스의 사냥개가 자신이 레오에게 입을 맞췄기 때문에 자신을 노리러 올거라고 말하며 나를 지키기 위해 옥상 난간으로 향하는 너를 멍하니 바라보다 정신차리고 말했다.)
츠키나가 레오:...응, 그러면 돼. 스오. 난 그거면 충분해. (희미하게 웃었고.)
츠카사는 레오가 무엇인가 저지르려 한다는 것을 직감합니다.
옥상 멀리 구석에서 올라오기 시작한 검은 연기가 건너편 건물의 조명을 어릿어릿하게 지워 가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를 사랑하였고,
그러는 데에 어떤 이해도 필요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 미래인을 보세요.
한 세기를 겨우 살아가는 인간은 아마 절대 단번에 공감하지 못할 세월의 더께가 흩어져 나립니다.
레오는 천천히 뒷걸음질쳐 연기 방향으로 다가가기 시작합니다.
츠카사가 아무리 말려도, 소리쳐 불러도 그는 멈추지 않습니다.
츠키나가 레오:...이 방법뿐이야, 스오. 저들은 사냥감을 먹고 나면 만족해 사라지니까. 말했잖아, 네겐 한 번뿐인 삶이라고. 이미 여러 번 겪은 내게 휘둘리기엔 너무 불공평하지...
스오우 츠카사:...!! 그, 그치만... 그래도 저는... 레오 씨가 사라지는 걸 보고만 있고 싶진 않습니다!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네가 눈물에 일렁여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하지만 너의 마지막 모습은 꼭 지켜보고 싶었기에 소매로 눈가를 박박 문질렀다. 그리고 네게 다가갔다. 언제나 그랬듯....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이었기에 자신의 무력함에 화가 났지만 그보다도 네가 이런 결정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이... 내가 위험에 처해있던 걸 보았던 것일까.. 너를 지키기 위해... 이런 생각을 했더니 더는 제게 너를 막을 무엇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레오 씨... 저는 단 한번도 레오 씨가 절 불행하게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더 욕심 부려주세요. 저는 당신과 만나 행복했고 당신과 사랑해서 행복했고... 아아, 당신과 만난 나의 모든 생은 필히 벚꽃이 휘날리는 봄날과 같이 아름다웠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저는, 꼭 이 초상화를 간직해서 레오 씨가 저를 다시 만나러 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레오는 츠카사에게서 조금 더 떨어지며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츠키나가 레오:...울지 마, 스오. 울게 만들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렇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이야. 지금은 이게 내게 있어서,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 (다시금 차오르려는 눈물을 애써 삼키고, 웃어보인다.) ...스오가 그랬듯이 나도, 너를 만나고 사랑한 덕분에 행복했으니까. 그 행복을 느끼려고 몇 번이고 너의 생을 쫓아왔으니까. ...이젠, 내가 네 행복을 쫓을 수 있게 해줘. 스오. 나는 네가 그 그림을 간직해 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것만으로, 과분한 욕심이야.
지금까진 쭉 내가 너를 기다렸으니까... 이번엔 네가 그래 줬으면 좋겠어. 만나야 할 사람들은 반드시 다시 만난대, 스오...
이윽고 연기 바로 앞에 서게 되자, 레오는 목에서 목걸이 하나를 벗어 츠카사에게 던졌습니다.
새것 같은 금색 로켓 회중시계인데, 열어 보면 안이 반쯤 부서져 있습니다.
츠키나가 레오:...그거, 가지고 있어줘. 어차피 나에게는 이제 필요없는 물건이고... 너에게밖에 줄 수 없어.
나는 내 선택에 대해 조금의 후회도 없어. 지금도 말이야. 너를 만나기 위해 살아왔던 지난 수 세기의 생은, 널 만나기 이전보다 훨씬 행복했으니까.
그러니까, 울지 마 스오. 아니, 츠카사. 그 동안 정말 고마웠어.
사랑해. 내 소중한 사람.
스오우 츠카사:(네가 준 로켓 회중시계를 손에 꼬옥 쥐었다.) 물론입니다. 이것도 잘 간직하고 있을게요, 레오 씨. 울지 않아요! 저는, 강하니까요. 이번에도 레오 씨를 몇 십, 몇 백, 몇 천억이 지나간다 해도 기다릴 겁니다.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요.
사랑합니다. 내 소중한 사람.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사랑해요, 레오 씨....
츠키나가 레오:(너의 말에 답하듯, 하지만 입은 열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흐릿한 미소를 보낸다.)
어느덧 반쯤 형상화한 연기는 레오의 온몸을 가립니다.
가장 확실하기 짝이 없는 무존재로,
사라짐을 극복한 사라짐으로,
억겁의 세월을 뛰어넘어 온전히 자신만의 죽음이 될 수 있는 어둠으로 그가 녹아 없어지고 있습니다.
세계가 이토록 적막한데 높은 옥상에는 칼바람이 붑니다.
레오의 안에 들끓던 고독이 맑은 피의 온도로 흘러나가기 시작합니다.
검은 연기 나부낀 재 하늘로 흩어져
사람 손으로 빚어 역시 사람에게만은 아름다운 밤의 환함 속에
단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누구도 찾지 않는 유적에 가라앉은 먼지처럼.
그러나 FM은 하늘로 쏘아 올려졌고,
당신은 아까 '나를 만나러 와 주세요' 라고 분명하게 말했지요.
시간은 지금조차도 당연한 듯이 흐르니,
앞으로 수천 년의 세월이 지나고 나면 머나먼 어떤 행성에서 누군가 반드시 그 전파를 받아 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