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PG
[레오츠카] 하이웨이 패스파인더
라꾸르트
2019. 12. 30. 23:08
(세션카드는 려해님이 제작해 주셨습니다!)
앙툴루 레오츠카 기반으로 <하이웨이 패스파인더> 다녀왔습니다!
W. 헤르츠
KPC 츠키나가 레오 (라꾸)
PC 스오우 츠카사 (오드)
해당 시나리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PC로 시나리오를 플레이하실 분들께는 열람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날씨가 유난히 화창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분다는 소소한 점을 제외하면 어제와 다를 것 하나 없는 날입니다.
오늘도 츠카사는 평소처럼 등교했습니다.
그런데 교실로 들어서니 뭔가 이상한 게 보입니다.
원래 자리배정상 츠카사의 옆자리는 비어 있었는데, 난데없이 책상 하나가 생긴 게 아닌가요?
게다가 누군가 앉아 있습니다.
의아해진 츠카사는 자리로 다가갑니다.
이떄 갑자기 여러 일이 동시에 벌어졌습니다.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위쪽 창문이 츠카사의 머리를 향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반 친구들이 비명을 지르고, 우당탕 소리가 들립니다.
그 순간, 누군가 츠카사를 잡아채 뒤로 확 끌어당겼습니다.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유독 그 목소리만이 아주 명징하게 츠카사에게 들렸습니다.
정신을 차리자 바로 조금 전까지 츠카사가 서 있던 자리에 떨어진 유리창이 완전히 박살 나 있었습니다.
놀란 반 아이들이 몰려듭니다.
츠카사는 자신을 잡아챈 누군가를 돌아봅니다.
명찰에는 [츠키나가 레오] 라고 적혀 있네요.
난생 처음 보는 얼굴. 그러나 그는 츠카사를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짓습니다.
몹시도 부시도록......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츠카사는 아찔한 두통,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저림을 겪었습니다.
차라리 눈을 감고만 싶어질 만큼 가슴을 할퀴고 가는 그리움.
찬란해서 아픈 순간입니다.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츠카사, 이성치 판정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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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와중 조례와 수업들이 차례차례 지나갑니다.
도통 누구인지 모르겠는 옆자리 학생은 아주 태연하게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누구도 레오의 존재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굉장히 의아하네요.
이제 쉬는 시간입니다. 레오에게 말이라도 걸어보는 게 좋겠습니다.
대체 이 사람은 누굴까요?


우리 사이에 뭘 그런 걸 묻고 그래~.



그리고, 아까는 구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인사가 너무 늦었네요.

앗, 고맙긴 뭘. 우리 사이에 이 정도는 당연하지~.
...아앗, 스오 잠시만.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별다른 소득 없이 대화가 끝나고, 레오는 화장실에 간다며 자리를 비웁니다.
차라리 본인보단 주변 친구들에게 질문을 해 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마침 근처에 모여 잡담 중인 반 친구 A, B가 보입니다.
친구들에게 ‘레오가 누구냐’고 질문해 볼까요?

친구 A:아, 츠카사 군이구나. 죄송하긴~ 좀 더 편하게 끼어들어와도 된다고. 근데 질문이 좀 이상하네, 레오는 레오잖아?
친구 B:그래, 츠카사. 너랑 제일 친한 친구가 누군지를 우리한테 물어보면 어떡해. (가볍게 웃었고.)

친구 A:친구끼리는 닮아간다더니. 너 오늘 레오 군이랑 닮은 소릴 하네~ 그래, 제일 친한 친구. 둘이 초등학교부터 같은 학교 나왔다며.
친구 B:맞아, 게다가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잖아!

친구 B:오늘따라 이상하다 츠카사 너? 무슨 농담을 하는 거야, 너희 1학기에는 수학여행도 옆자리에 앉아서 갔잖아. (싱겁다는 듯 웃으며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친구 A:그래그래. 참, 그러고 보니 너희 지금 부활동도 같이 하지? 궁도부였나?

A, B 모두 츠카사가 굉장히 이상한 질문을 한다는 듯 의아한 반응을 보입니다. 당황스럽네요.
여러 가지 질문을 해 보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레오와 츠카사 두 사람이 대단히 절친한 친구였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츠카사는 의문 속에서 남은 수업을 듣습니다.
빠르게 하루가 지나고 어느덧 하교할 시간,
레오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츠카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면서 엷게 웃는 레오의 모습은, 좀 지나치리만큼 츠카사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절친한 사이라더니 등하교도 같이 하는 걸까요?
츠카사는 여전히 레오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는데요…….
그런데도 어쩐지 그의 말을 들어 주고 싶다는 기분이 듭니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학교를 나섰습니다.
아침부터 맑았던 날씨는 여전합니다.
하늘은 아주 푸르고, 공기 중에선 바삭바삭한 햇볕 냄새가 납니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같은 교복 차림의 학생들은 저마다 기분 좋게 웃습니다.
이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나쁜 사건 같은 건 도무지 벌어지기 어려운 일로만 느껴집니다.
곁에서 걷는 레오는 희미한 미소를 건 채 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묘하게 감상적인 기분이네요.
레오에게 흰 교복 와이셔츠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간식 같은 거, 좋아하잖아?


달콤한 아이스크림 같은 디저트는 좋아해도, 벌레는 싫어하고 말이야.

...방금은 못 본 걸로 해주세요.






...레오 씨. 괜찮으시다면, 당신에 대해 알려주실 수는 없나요?

응? 나에 대해 알고 싶어~? 이제까지 많이 알아온 거 아니었어? ...뭐, 그 마음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제까지 친구였다 해도, 나도 스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은걸.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쓰다듬던 손을 내리고 짐짓 앞만을 바라보았다.) ...앞으로도 같이 지내면서, 알아가면 되지. 그치?
...자, 그럼 어서 갈까. 이러다 집에도 못 가고 길에서 노을을 보겠어~. (가볍게 그렇게 말하고는 앞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레오는 어떻게 당신에 대한 걸 다 알고 있는 걸까요?
정말 츠카사 자신이 잊었을 뿐 두 사람은 오래도록 함께해 온 절친한 친구일까요?
여러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츠카사의 집 앞입니다.
레오는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춥니다.
이곳이 츠카사의 집 근처라는 사실도 아는 모양입니다.
멈춰선 레오는 츠카사를 배웅하며 평범한 인사를 건네다, 불쑥 이런 말을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조금 떨린 것도 같았습니다.
가늘게 동요하는 양손이 꽉 맞잡혀 있었습니다.
웃으려 애쓰는 듯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아닌가 자연스레 추측하게 됩니다.
사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다지 표정이 바뀐 것 같지도 않은데요.
츠카사 자신은 왜 처음 만난 것만 같은 레오의 변화에 이렇게 익숙한 거죠?
그 말을 들은 순간 츠카사는 레오를 처음 만난 순간처럼 아찔한 통증을 느낍니다.
참을 수 없어 눈을 감으니, 눈꺼풀 안에서 빛이 부풀어 터지는 듯한 잔상이 아프도록 거세게 동공을 핥습니다.
비틀거리면서, 츠카사는 자신의 기억에 없던 어떤 장면을 스치듯 떠올립니다.
이상한 사람, 신비한 사람... 항상 짓궂고 잘난 척 하는, 열받는 사람.
하지만, 우리가 모시는 왕. 당신을 좀 더, 좀 더 잘 알고 싶습니다.
깊이 이해하고, 그 상처까지 파악한 뒤에... 그 때 반드시 말씀드리죠.
여기는 당신이 숨을 거둘 곳이 아니라고, 당신이 살아갈 곳이라고.
함께 살아갑시다.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전장으로 나아갑시다.
기다리다 지쳐 당신이 멀어져 버리기 전에, 저도 열심히 쫓아가서... 제 목소리가 닿을 수 있을 때까지 당신께 가까이 가겠습니다.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던가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앞이 이지러집니다.
츠카사, 이성치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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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정신을 차려 보니 츠카사는 이미 집 안으로 들어와 있었습니다.
분명 잠시 정신을 잃은 것 같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오늘은 내내 혼란스럽기만 한 하루입니다.
그날 밤, 츠카사는 꿈을 꾸었습니다.
전체적으로 형상이 어릿하고 시점조차 흐려 어떤 내용인지 쉽게 떠올릴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레오가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꿈을 꾸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가, 때론 환희에 찼다가,
또 어떤 순간에는 비통한 전율에 사로잡히기도 했습니다.
공기로 자은 실처럼 연약한 슬픔이 거기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츠카사는 몹시도 뒤숭숭한 상태로 일어나야만 했습니다.
재난에 매몰된 듯한 기분이 츠카사를 훑고 지나갔습니다.
츠카사, 정신력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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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카사는 희미한 기억 중 잔재 하나를 건져 올렸습니다.
아주 괴로워 보이는 레오가 지친 결의를 띠며 말합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이제 쉬어.
...그리고 그런 날이 열흘 정도 계속되었습니다.
2주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츠카사는 이상한 꿈에 시달리면서도 의도치 않게 계속해서 레오와 붙어 다녔습니다.
당연하게 두 사람을 절친이라고 여기는 주변 친구들 때문에 분위기에 휩쓸렸을 수도 있고,
자신이 이상한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티내기 싫었을지도 모르고,
어쩐지 내내 곁을 맴도는 레오를 츠카사가 거절하지 못해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함께 다니는 내내 츠카사가 레오에게 기묘한 끌림을 느꼈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이렇게 쉽게 마음을 여는 사람이었나 생각해 보아도 감은 잘 오지 않습니다.
정말 어떤 사고라도 겪는 바람에, 본래 가까운 사이였던 레오를 츠카사가 잊어버리기라도 한 걸까요?
그야, 그렇지 않고서야…….
-
이윽고 찾아온 주말 아침, 츠카사에게 메시지가 한 통 도착했습니다.



[번화가 지하철역 앞에서 만날까?]


레오는 츠카사의 제안을 따르기로 합니다.
그럼, 나갈 준비를 시작해 볼까요?
츠카사, 행운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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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카사는 순조롭게 준비를 해 나갑니다.
오늘따라 머리 정리도 잘 되고, 스타일이 아주 멋지네요!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서 약속 장소를 향했습니다.
약속 장소는 번화가 지하철역 앞.
우여곡절 끝에 도착하자 레오는 미리 나와 있었는지 다가오는 츠카사에게 인사합니다.








어디로 갈 거예요?

거리를 둘러보니 눈에 들어오는 장소가 몇 군데 있습니다.
서점, 노천 카페, 길거리입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휴일을 만끽하도록 합시다.






두 사람은 서점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음반이나 문구까지 취급하는 대형 서점입니다.
베스트 셀러 코너, 신간 코너 등에 다양한 서적이 있네요.
가볍게 한 바퀴 둘러봅시다.
근처에 있는 코너에는 소설 서가, 역사 서가, 수험 문제집 서가 등이 보입니다.

<소설 서가>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유명작 <어쩌면 그 육회비빔밥도 사실은>이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기세로 팔려 나간다더니 그 인기가 사실인가봐요.

(꽤 오랫동안 고민하다 한 권을 집어들고 역사 서가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역사 서가>
동아시아의 나라 한국의 역사서 특별 코너가 마련되었습니다.
자료 조사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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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 시대 한반도에서 출발해 유라시아 대륙 전역을 재패했다는 ‘수밀이국’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목이… <환단고기>? 흥미로운 서적입니다.
하지만 어쩐지 그다지 다시 읽고 싶지는 않군요…….

츠카사, 관찰력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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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츠카사는 특별 코너 뒤쪽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책장 하나를 발견합니다.
다가가니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지 약간 그늘져 먼지가 쌓인 책이 있습니다.

<세계야담집>
세계 각지의 각종 야사, 구전 등을 모은 책입니다.
총 열두 챕터가 있는데, 특히 눈길을 끄는 챕터는 2챕터네요.
그런데, 챕터 제목이 의미심장합니다.
<녹색 눈의 남자>.
그러고 보면 레오도 녹색 눈을 가진 남성이 아니었던가요?
대단한 우연은 아니겠지만 괜스레 관심이 갑니다.
마침 레오는 근처에서 다른 서가를 구경하고 있는 것 같네요.
책을 펼쳐 봅시다.


(단번에 당신을 떠올린다. 우연에 우연이 겹친 결과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혼란스럽다.)
츠카사, 역사학 판정.

기준치: | |
굴림: | |
판정결과: |
츠카사는 다음 장에 실려 있는 삽화를 발견합니다.
기록을 토대로 삽화에 그려진 남성의 옷차림이, 당시의 유행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챕니다.
남성의 옷차림 쪽이 100여년 정도 뒤처져 있네요.









네, 가요.
두 사람은 책을 계산하고 서점을 나왔습니다.
<세계야담집> 은 서점에서도 처음 보는 책이라며 구매가 불가능할 것 같다고 하여, 베스트셀러 한 권만 구매해서 나온 것은 조금 아쉬웠지만요.

츠키나가 레오:이제 어디 갈까, 스오?


테이블이 모두 야외에 설치된 간이 카페입니다.
도심 한복판이지만 인테리어를 앤티크 풍으로 잘 해두어 운치가 있네요.
음료의 종류도 아주 많습니다.
잠시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먹고 싶은 거 다 사줄 테니까, 편하게 고르라구?

네? 아니, 사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두 사람은 주문한 음료와 파르페를 받아들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음식이 생각보다 빠르게 준비되네요.

츠카사, 행운 판정.

기준치: | |
굴림: | |
판정결과: |
파르페를 먹어 보니, 어딘가 미묘한 맛이 납니다...


기준치: | 55/27/11 |
굴림: | 91 |
판정결과: | 실패 |
스무디도 똑같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묘한 맛이 납니다. 대체 뭘까요......?



내 커피는 괜찮았는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휘적휘적...)


더 돌아다니다 보면 더 맛있는 간식을 파는 집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때 또 사 줄 테니까? (옅게 미소지으며 네 머리를 쓰담아 주었다.)


(다 마신 커피 컵과, 애석하게도 많이 남아버린 파르페와 스무디를 트레이에 올린다.) 그럼 슬슬 나갈까? 더 맛있는 걸 찾으러~.


역시 맛있는 건 길거리에 많겠지?



레오와 츠카사는 카페를 나와 길거리로 향합니다.
여러 노점과 가게가 줄지어 선 번화가입니다.
가끔은 화려한 거리를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되죠.
수많은 이들이 두 사람 주변을 흘러갑니다.
레오는 말없이 그저 걸음을 옮기고만 있을 뿐입니다.
곁에서 걷는 레오와 손등이 스칩니다.
세상은 이토록 소란스러운데, 레오와 츠카사만이 고요 위를 걷는 것만 같습니다.
왠지 말을 쉬이 꺼내기 어려운 침묵이 감돕니다.
바짝 마른 초여름 공기. 도심 속인데도 녹음 냄새가 나는 것만 같이…….
그러다가, 레오가 츠카사의 손을 잡아 왔습니다.
놀라 돌아보니 얌전하게 오르내리는 속눈썹이 먼저 보입니다.
츠카사는 마주친 시선에 서린 수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날카로운 고독에 사로잡힌 듯한 레오,
츠카사를 바라볼 때마다 가장 부신 것을 관찰하는 사람처럼 눈을 깜빡이는…….
이 어색한 순간, 츠카사는 붙잡힌 손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 것을 느낍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죠?
어쩐지 안절부절 못하겠습니다!
그때, 눈을 굴리던 츠카사의 시야에 뭔가가 들어왔습니다.
공연 중인 버스커,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그리고 그 옆에 거리 화가가 한 명 있습니다.
캔버스를 앞에 두고 뭔가를 열심히 그리다가, 츠카사와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으며 다가오라는 손짓을 합니다.
호객 행위인 게 분명하긴 한데, 묘하게 초조해지는 이 분위기를 깨기에는 적격의 타이밍인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다가가면, 중년 여성으로 보이는 화가는 그들에게 간이 의자를 권합니다.
얼결에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지만,
붙임성이 아주 좋은 화가의 화술 덕인지 이것도 재미있는 경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화가:(스케치를 하다 말고, 캔버스 너머의 두 사람을 바라본다.) 예쁜 청년들이 왔네~. 근데, 둘은 무슨 사이야? 아까도 손을 꼭 잡고 이리로 오던데. 그냥 친구야~?

화가:어머, 왜 의문형이야~ (네 당황한 얼굴을 보고 귀엽다는 듯 웃었고.) 혹시 친구보다 더 깊은... 뭐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거야? 응~?



화가:헤에, 그래? 아줌마 이래뵈도 이 일 오래 해서 촉은 좋은 편인데. 아니야? 아깝네~. (장난기 섞은 어조로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너에게 종이를 내민다.) 자, 귀여운 도련님 거 다 됐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츠카사의 스케치가 먼저 완성되어 종이를 건네받았습니다.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특징을 잡아 아주 잘 그린 그림이네요.
레오에게도 보여줍시다.


... ...
그림을 받아든 레오는 말을 잃고 뚫어져라 종이만을 내려다보았습니다.
헉, 하고 숨을 삼킨 것 같기도,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 것 같기도 했습니다.

츠카사가 의아하게 바라보거나, 왜 그러는지 말을 걸어도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종이를 쥔 채 들끓는 애수를 목 안으로 삼키며 가늘게 떨고 있을 뿐입니다.
급기야 초상화에 얼굴을 묻더니 한참이나 어깨를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황급히 종이를 떨어트립니다.
울기라도 한 모양일까요…….


츠카사가 다시 레오를 부르면, 레오는 그제야 퍼뜩 고개를 들어 츠카사를 마주 봅니다.
몹시 오랜 세월 동안 공들여 깎은 듯한 결의가 젖은 동공 안에서 불처럼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이던 레오는 아주 힘들게 말을 꺼내 놓습니다.



그 그림, 잘 챙기고.

그 약속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듯이, 레오는 몇 번이고 확답을 듣고서도 안심하지 못해 츠카사가 아무리 다짐을 해도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이 그림의 무엇이 레오를 이렇게까지 흔든 것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일어나 장소를 옮겼습니다.
다시 걸음을 옮기던 그때,
레오가 갑자기 츠카사의 손목을 잡아챘습니다.
레오는 몇 발짝 뒷걸음질을 치며 츠카사를 잡아끄는가 싶더니 자리에 멈춰 섭니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는 시선은 어딘가 단단히 고정되었고,
침착을 유지하려 애쓰는 표정 너머로 공포가 어려 있었습니다.
츠카사는 자연스럽게 레오의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려 봅니다.
아니, 저게 뭐죠?
레오의 뒤쪽 방향, 한 블록 너머 거리 구석에서 검은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화재라도 발생한 걸까요?
다시 츠카사를 향해 몸을 돌린 레오는 코너에 몰린 듯한 태도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러는 동안 연기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어떤 형체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이글거리는 눈, 박동하는 푸른 피부를 가진 이계의 공포,
불쾌한 역관절, 미끈거리는 표면,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지나치게 선명한, 뒤틀려 굽은 등뼈…….
원시적인 공포가 전신을 훑고 말초를 통과해 흘러나갑니다.
기괴하게 번쩍이는 안광이 무엇인지, 누구의 것인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야 들리기 시작한 숨소리는 당신이 전혀 겪어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기능하는지, 되삼키고 뱉는 기척이 메스껍기 그지없습니다.
도저히 지구에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생물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외형입니다.
저 끔찍한 것을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걸까요?
연기는 계속해서 뭉치며 머리부터 몸통, 징그러운 꼬리까지 하나의 외형을 다듬습니다.
역겨울 정도로 괴롭습니다!
이성치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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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카사는 비틀거립니다.
저 생물이 지금 레오를 또렷하게 겨냥하고 다가오고 있는 것이 맞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레오가 츠카사의 양 뺨을 감싸 쥡니다.
충격에 빠진 츠카사의 시선을 자신 쪽으로 돌려놓더니,
어…….
레오가, 츠카사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흔히들 키스를 하면 귓가에 종이 울린다거나 시간이 멈춘 것 같다고들 하지만,
포옹은 그냥 포옹이고 입맞춤은 그저 입맞춤입니다.
여전히 세상은 바쁘게 흐르고 설령 두 사람에게 행인들의 눈길이 머무른다 한들 잠시일 뿐입니다.
그러나… 레오가 츠카사를 껴안은 채 입술을 맞물린 동안,
금방이라도 이곳으로 튀어오를 듯했던 저 역겨운 생물들은 주변을 마구 두리번거리다 도로 연기로 녹아 사라졌습니다.
어째서?
또렷한 시선이 마주칩니다.
분명 레오는 울지도 웃지도 않지만,
둥글게 솟은 뺨에 고였다 흘러 떨어지는 눈물 같은 회한을 츠카사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레오는 물러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짓이냐거나, 방금 뭐였냐고 아무리 캐물어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습니다.
방금 전의 입맞춤이 어떤 의미였는지, 전혀 말하지 않으려 듭니다.
대체 그 짐승들은 무엇이었을까요?
레오 역시도 그 생물들을 목격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것을 처음 본다는 기색도 아니었습니다.
그때 레오가 나타낸 반응은 미지의 무언가를 최초로 목격하고 놀란 이의 난색이 아니라,
이미 아는 공포를 다시 맞닥뜨린 사람의 공포였으니까요.
...
어느덧 점차 날이 어두워지며 하루가 마무리됩니다.
함께 돌아가는 길 내내 레오는 어딘가 생각에 잠긴 듯한 태도를 보입니다.
츠카사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면서도,
신경 한쪽은 자꾸 다른 곳에 쏠려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머리가 복잡합니다.
지능 판정.

기준치: | |
굴림: | |
판정결과: |
문득 학교 선생님 중, 오컬트나 외계생물 등에 관심이 있는 교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떠오릅니다.
혹시 그 선생님이라면 오늘 목격한 기이한 현상이 무엇인지 조언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츠카사는 문득 자신의 휴대전화가 없어졌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정신이 없는 와중 무심코 놓고 왔던 걸까요.
하루를 되짚어 보니 아무래도 서점에 놓고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귀찮게 되었네요.



내일 다시 가지러 가야 될 것 같은데... 웬일로 그런 걸 잃어버린 거야, 스오~. (어쩔 수 없단 듯 웃어보였다.)



스오우 츠카사: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림... 잘 가지고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어찌 됐든, 복잡한 일들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쉬는 게 좋겠습니다.
피곤한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
다음날 등교한 츠카사는 어제 떠올린 선생님께 조언을 구하러 갑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선 조금 바쁘신 모양이네요.
그래도 평소 친절하셨던 분이니 믿고 말을 걸어 볼까요?

선생님:응? 스오우 군이구나. 물어보고 싶은 게 뭔데 그러니?

선생님:(네 말에 퍽 놀란 기색을 했지만, 이내 아까와 같이 침착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물론이지, 얘기해 보렴.

선생님:(다듬어지지 않은 문장을 차분한 표정으로 듣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랬구나, 괜찮으니까 진정하렴. 스오우 군. 네가 말하려는 게 대충 어떤 건지 알 것 같아.
그런 괴물의 이야기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보다시피 지금은 처리할 일이 많아서 길게 이야기하기 어렵구나.
대신, 네가 관심이 있다면 빌려줄 테니 이걸 읽어 보는 게 어떻겠니? (어딘가에서 오래 된 책 한 권을 꺼내, 너에게 내밀었다.) 아마 도움이 될 거야.

오래되어 보이는 책의 겉표지에는, <괴물들과 그 일족들>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괴물들과 그 일족들>
츠카사, 크툴루 신화 기능 +1, 오컬트 기능 +3
자료 조사 판정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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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카사는 책을 넘기던 중, 눈에 띄는 페이지를 발견합니다.

츠카사, 지능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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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카사는 이런 의문을 건져 올립니다.
‘어제 자신이 목격한 그것이 이 정체 모를 생물이라면, 그것들이 쫓는 레오는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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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레오와 츠카사가 따로 하교했습니다.
며칠 내내 같이 가자고 달라붙더니,
갑작스럽게 ‘오늘은 일정이 있다’며 먼저 훌쩍 사라져 버려 조금 의아했죠.
하지만 레오에게도 스케줄이란 게 있을 테니, 뭐 이상한 일은 아닐 겁니다.
한편 츠카사는 어제 휴대폰을 놓고 온 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거리를 지나다 보니 어제 으스스한 무언가를 목격했던 장소도 지나게 되었네요.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정말 헛것을 본 게 아닌 걸까요?
게다가, 그 직후에 레오와…………
...심란하니까 이 생각은 떨쳐 버립시다.
어, 그런데……
저기 앞에서 바쁘게 걷는 사람은 레오가 아닌가요?


눈이 마주친 레오는 놀라는가 싶더니 츠카사에게 인사를 합니다.
츠카사를 쫓아온 건 아닌 듯하고, 정말 우연히 만난 기색이네요.





두 사람은 적당히 인사를 나누고 헤어집니다.
...그런데 각자 갈 길을 가는 줄로만 알았던 레오가 자꾸 츠카사를 따라오지 않겠어요?






행선지가 겹친다는 것을 알면 레오는 조금 난처해하지만, 어쨌든 방향이 같으니 별수 없이 동행하게 됩니다.
레오, 어제도 그랬지만 오늘도 좀 이상합니다.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고,
휴대폰에 뭔가 장치 같은 것을 끼워 몇 걸음 옮길 때마다 액정을 뚫어져라 살펴봅니다.
뭘 하는 거냐고 물어도 얼버무리거나 웃어넘길 뿐 대답을 해 주지 않습니다.
다만 대단히 중요한 일중이라는 태도라 차마 방해할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우선 츠카사는 휴대폰이 더 중요하니 의문은 잠시 미뤄 두고, 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게 좋겠군요.
잠시 후, 어제의 그 서점에 도착했습니다.
안내데스크에 문의하면 휴대폰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안내데스크의 직원은 츠카사의 말을 듣고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츠카사의 휴대폰을 들고 돌아옵니다.
다행히 분실물로 들어와 있었다고 하네요.
직원이 건네주는 휴대폰을 받아 돌아서자,
용건에 집중하느라 둘러보지 않았던 서점 내부가 그제야 눈에 들어옵니다.
어제 방문했을 때와 대단히 달라진 건 없지만,
평소 작가 사인회나 토크 콘서트 따위를 열던 중앙 무대에 오늘은 공개 라디오 팟캐스트 코너가 설치된 모양입니다.
그런데 코너 옆에서 레오가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초조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시계를 보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고…….
뭘 하는 걸까요?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이젠 흡사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 안절부절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휴대폰을 보고, 시계를 보고,

같은 이상한 말도 중얼거립니다.
아무래도 뭔가를 기다리는 듯한데, 대체 뭘 저렇게 간절하게 기다리는 거죠?
한편 오픈형 라디오 부스에서는 진행자들이 서점 이용객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시도하는 중입니다.
주제가 영 시덥지 않네요.
이 순간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 같은 것을 묻고 있습니다.
캠페인이라도 하는 건지…
딱히 흥미가 생기는 화두는 아닙니다.
그런데 그때,


뒤늦게 다시 츠카사를 발견한 레오가 말을 걸어옵니다.
그리고 다시 휴대폰을 보고,
두 사람이 서 있는 위치를 보고,
시계를 보고,
츠카사를 봅니다.
레오는 마치 불을 붙이자 순식간에 타오르는 휴짓조각처럼 안색이 변합니다.
낯빛이 새하얘졌다가 시퍼레졌다가,
낭떠러지 바로 앞에 서서 바람을 맞는 사람인 양 숨을 크게 들이켰습니다.
대단히 큰 충격을 받은 듯하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사랑에 빠진 듯도 하고,
어둡게 빛을 발하는 깨달음에 빠진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평범한 이로서는 도저히 다 헤아리지 못할, 거대한 시간이 쌓여 만든 고독 같은 것이 거기 있었습니다.
그는 떨리는 입술을 엽니다.
그리고 몹시도 사무치는 어조로 애원합니다.

정말 간절한 부탁이야.
지금 저기에 가서, '나를 만나러 와' 라고 말해 줘.
그리고 그는 떨리는 손으로, 라디오 팟캐스트 코너를 가리켰습니다.
인터뷰에 응하라는 건가요?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일까요?
하지만 레오는 절대 장난 같은 것을 치는 눈빛이 아닙니다.

다시 한 번 뜻모를 말로 절박하게 매달려 옵니다.
어떻게 할까요?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간절하게 부탁하는데, 우선 시키는 대로 하고 볼까요?
아니면 라디오 방송 따위에는 관심이 없으니 이 뜬금없는 요청을 거절하고 돌아설까요?

저, 인터뷰를 하고 싶어서 왔는데요...
라디오 진행자:아아, 네~ 어서 오세요! (네 몫의 마이크를 하나 들려주며) 잘 오셨습니다. 이름이랑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라디오 진행자:열일곱살이면, 아직 학생이신 거네요? 네, 감사합니다. 스오우 군은 이 순간, 소중한 사람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으신가요? 자유롭게 발언하시면 됩니다!
영문을 모르겠지만, 지금이 그때인가 봅니다.

스오우 츠카사:저를... 만나러 와요.
저를 만나러 와요, 라고, 츠카사가 말합니다.
근처에 선 레오는 이 순간 어떤 어휘로도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저항하지 못할 재해에 휩쓸린 부표처럼 떨면서도,
이 세계에 단 하나뿐인 소실점이 있다면 그것은 츠카사라는 양 당신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희열이 뒤범벅된 어떤 감정에 새롭게 이름을 붙여야 할 때 그 명명에는 단숨에 츠카사의 이름을 가져와야 마땅하다는 듯이…….
그러나 그 까닭 모를 환희 너머로,
츠카사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습니다.
검게 뭉쳐 거꾸로 흐르는 듯한 연기가 책장과 바닥이 이루는 90도의 모서리 각에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잊지 못할 바로 그 형체를 서서히 갖추기 시작합니다.
오로지 츠카사만을 바라보고 있던 레오는 아직 자신의 등 바로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죠?
이제 뚜렷하게 머리 형태를 만들어낸 그 생물이 레오를 잡아 삼킬 듯 노려봅니다!
그러고 보니 츠카사는, 아까 선생님께 이 끔찍한 생물에 대한 정보가 적힌 책을 받아서 읽었던 적이 있죠.
그 책에 적힌 바에 따르면, 틴달로스의 사냥개들에게 몸을 숨기기 위해서는 분명......



(어쩌면... 당신을 잃고 싶지 않다는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일지도. 그래, 나는 당신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당신의 입술에 스스로의 입술을 겹쳤다.)

하지만 그랬기에, 그렇게나 강렬하게 시선을 너에게 뺏기고 있었기에. 돌연 입술을 겹쳐오는 너의 움직임에 놀란다. 가까워지는 너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어서, 눈가가 젖어 있어서, 다급하게 너의 숨결을 마셔버리고 만다.)
츠카사는 황급히 레오를 끌어당겨 입을 맞춥니다.
영원처럼 찰나가 흐르고,
너무 놀라 굳은 레오는 뒤늦게야 자신의 등 뒤에서 배어 나온 죽음 같은 연기를 발견합니다.

그 순간 레오가 츠카사를 거세게 밀쳤습니다.
그러나 이미 검은 연기는 도로 뭉그러져 사라진 후.
레오는 주저앉아 얼굴을 감싸고 맙니다.
츠카사가 이유를 물어도 답하지 못하고 ‘안 돼’, ‘이럴 수는’ 등의 말을 중얼거리던 그는,
문득 고개를 들어 공포 어린 눈으로 츠카사를 보았습니다.
시선이 얽히자, 츠카사가 별달리 진정시키지 않아도 레오는 서서히 떨림을 가라앉힙니다.
이윽고 두려움이 가신 자리에 새로 떠오른 감정은, 결의.
레오는 천천히 일어나 자신의 힘으로 바로 섰습니다.
그리고 츠카사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레오는 츠카사를 어떤 빌딩 옥상으로 이끌었습니다.
이미 날은 어두워져 어느덧 밤,
달조차 뜨지 않은 날 가로등과 헤드라이트 조명이 세상을 비춥니다.
도시 야경이 단번에 눈에 들어오는 꼭대기 층입니다.
시리게 아름다운 풍경이 눈물처럼 번지고 있었습니다.
난간을 짚은 레오는 오랜 기간 쌓인 이야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스오, 그런 시대에도 늘 부의 차이는 존재하고, 그것이 권력이 되어서 많은 것들을 결정지어.
나는 거기서 썩 좋지 않은 위치에 있었어.
가난하고, 하루하루를 그저 버티고 넘기기에 바빠서 다른 잡다한 것들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살았지.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박물관에 가게 되었다가 오랜 옛날에 그려졌다는 초상화 한 점을 보게 됐어.


종이는 오래 되어서 누렇게 빛바래 있고, 그림을 그린 재료는 그저 수수한 목탄 연필일 뿐이었는데...
내게는, 그 오래된 그림이 너무나도 따뜻해 보였거든.
사람이 이유 없이 설레기도 할 수 있구나, 하는 걸 그때 알았어.
한동안 그 그림에 정신을 빼앗겨서 잊지 못하고 지내다가, 며칠 후에 별 생각 없이 라디오를 틀었어.
신기하겠지만 그 시대에도 라디오는 명맥을 잇고 있거든.

백색소음 같은 게 지지직거리고, 거기서 드문드문 들려온 건... 분명한 옛 언어였지.
'저를 만나러 와요', 라고 하는.


그때부터 수없이 계산을 해서 알아냈어.
초상화가 그려진 연도와 같은 해인 2052년에, 그 라디오 전파가 쏘아 올려졌다는 걸.
그걸 알아냈을 때쯤에는, 조금 우스울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그 오랜 옛 시대에 마음을 뺏겨서 말이야.
우연히 신과 대담을 하게 됐고, 그래서 과거로 와서... 스오 너를 만났어.
(곤란한 듯 작게 웃었다.) 그런데 실수로 너무 오래 전의 과거로 가 버려서, 스오 네가 환생하는 걸 143번이나 지켜봤지 뭐야.

나는 계속해서 너의 환생과 만났고, 그때마다 널 사랑했어.
뭐어. 친해지고 나서 헤어지고,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아픈 적도 많았지만...
너와 사랑하며 보냈던 날들은 모두 무척 따뜻하고, 다정하고... 사랑스러웠어.
그리고, 네 144번째 생에서 맞이한 2052년 올해. 바로 어제에서야 겨우 깨달았어.
내가 과거이자 미래에 보았던 초상화는, 거리에서 우리가 함께 받았던 너의 초상화였다는 걸.

스오 네가 말해주었던 '저를 만나러 와요' 라는 말은, 결국 네가 미래의 나에게 미리 보내주는 인사였던 거야…….
이 믿기지 않는 말을 듣습니다.
받으려 한 적도 없던 그의 숨과 미래가 본래 츠카사 자신의 것이었다는 말을,
츠카사가 레오를 창조한 신이나 다름없다는 찬사를…….
너무나 길고 이제는 기억조차 흐려졌을 머나먼 과거와 미래의 이야기인데도 막힘이 없습니다.
장구한 역사를 설명하는데도 망설이지 않고 매끄러운 구조를 지닌 문장들.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 레오는 씁쓸하게 웃으며 덧붙입니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턴가 네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는 일을 그만두게 됐어. 네가 너무 슬퍼했거든…….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하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네.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뜨며, 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울지 마, 그렇게 슬퍼할 일이 아니야. (흐려지는 시야 사이로 너를 바라보며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그야, 덕분에 난 너를 만났는걸. 말했잖아, 내가 미래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 나를 그 괴로웠던 삶에서 꺼내준 건, 바로 스오 너야.


그래도, 넌 늘 내 앞에 나타나 줬어. 안 좋게 끝난 횟수보다 훨씬 많이,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줬거든. 그러니까, (마침내 한숨과도 같은 눈물이 새어나와, 곤란하단 듯 미소지으며.) 내가 2052년,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거야.
(눈을 감고 몇 초가 지났을까, 서서히 눈을 뜨며 너를 마주보았다.) ...그러니까 이제, 나는 너를 위해 움직일 거야. 스오.


지난 여러 번의 생에서, 이미 스오 너는 날 여러 번 그 녀석들에게서 구하려 하다 큰 위험에 빠질 뻔했었고.
그래서 이번 생에서는 틴달로스의 사냥개들에게 너를 연관시키지 않으려 했지만, 아까 서점에서 했던 그 입맞춤 때문에... 이제 너도 그들에게 추적당할 수 있게 됐어.


하지만… 생각해 봤어. 나는 그렇지만, 너에겐 이번 삶이 처음이고 마지막이잖아.
한 번 위험에 처하면 그 다음은 없는 거잖아…….
그리고… 살아오는 내내 그런 생각이 멈추질 않았어, 어쩌면 네가…… 나와 얽혀서 불행해지는 건 아닐까, 하고…….
난간 근처에 선 레오는, 그것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있는 줄도 몰랐던 괴로움을 어느 정도 덜어낸 듯이 후련한 얼굴로 츠카사를 돌아보았습니다.


츠카사는 레오가 무엇인가 저지르려 한다는 것을 직감합니다.
옥상 멀리 구석에서 올라오기 시작한 검은 연기가 건너편 건물의 조명을 어릿어릿하게 지워 가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를 사랑하였고,
그러는 데에 어떤 이해도 필요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이 미래인을 보세요.
한 세기를 겨우 살아가는 인간은 아마 절대 단번에 공감하지 못할 세월의 더께가 흩어져 나립니다.
레오는 천천히 뒷걸음질쳐 연기 방향으로 다가가기 시작합니다.

츠카사가 아무리 말려도, 소리쳐 불러도 그는 멈추지 않습니다.

말했잖아, 네겐 한 번뿐인 삶이라고. 이미 여러 번 겪은 내게 휘둘리기엔 너무 불공평하지…….




츠키나가 레오:(저를 향해 뻗어오는 손. 몇 번이나, 그렇게 내밀어오는 손을 잡았을까. 지금에 이르기까지 몇 번이나 그 손을 잡고 걸어온 걸까. ...하지만, 그래서야. 스오. 네 손목을 부드럽게 잡았다가 밀어낸다.) ... ...안 돼, 스오. 오지 마. 위험해.
그 동안 내 목적만을 생각한 채로 달려왔던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널 위해 할 수 있는 일이야. 나는 괜찮아... (마주보는 제 눈이 다시금 투명하게 일렁인다.)
지금까진 쭉 내가 너를 기다렸으니까… 이번엔 네가 그래 줬으면 좋겠어. 만나야 할 사람들은 반드시 다시 만난대, 스오. 아니, ...츠카사.
이윽고 연기 바로 앞에 서게 되자,
레오는 목에서 목걸이 하나를 벗어 츠카사에게 던졌습니다.
새것 같은 금색 로켓 회중시계인데, 열어 보면 안이 반쯤 부서져 있습니다.



너를 만나기 위해 살아왔던 지난 수 세기의 생은, 널 만나기 이전보다 훨씬 행복했으니까. ...그러니까 울지 마, 스오. (천천히 너에게서 등을 돌리고 선다.)


이번 생에서도 고마웠어.
사랑해, 내 소중한 사람.
어느덧 반쯤 형상화한 연기는 레오의 온몸을 가립니다.
가장 확실하기 짝이 없는 무존재로,
사라짐을 극복한 사라짐으로,
억겁의 세월을 뛰어넘어 온전히 자신만의 죽음이 될 수 있는 어둠으로 그가 녹아 없어지고 있습니다.
세계가 이토록 적막한데 높은 옥상에는 칼바람이 붑니다.
레오의 안에 들끓던 고독이 맑은 피의 온도로 흘러나가기 시작합니다.
검은 연기 나부낀 재 하늘로 흩어져
사람 손으로 빚어 역시 사람에게만은 아름다운 밤의 환함 속에
단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누구도 찾지 않는 유적에 가라앉은 먼지처럼.
그러나 FM은 하늘로 쏘아 올려졌고,
당신은 아까 ‘저를 만나러 와요’라고 분명하게 말했지요.
시간은 지금조차도 당연한 듯이 흐르니 앞으로 수천 년의 세월이 지나고 나면 머나먼 어떤 행성에서 누군가 반드시 그 전파를 받아 볼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하겠죠.

라디오 전파는 끝없이 우주를 돕니다.
END 1. TRUE
스오우 츠카사 생환.
츠키나가 레오 로스트...?
보상. 유물 획득 : 제자노스의 회중시계 (2부 시나리오에서 사용 가능)